경남 진주 출신 이성자 화백의 화실 '은화수', 프랑스 정부 지정 문화유산 됐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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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22:47 | 최종 수정 2024.05.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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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이성자(1918~2009년) 화백이 1992년 프랑스 남부의 낭뜨 근처인 뚜헤뜨 슈흐 루(투레트 쉬르 루)에 지은 아뜰리에(작업실) ‘은하수’가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됐다.
한국 작가가 해외에 만든 아뜰리에가 그 나라 정부가 공식 관리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처음이다. 특히 예술의 나라 프랑스여서 더 뜻깊다.
이 화백의 장남인 신용석 투레트화실보존협회장은 28일(현지 시각) “어머니가 직접 설계해 지은 작업실 ‘은하수’가 프랑스 정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주목할만한 현대 건축물’에 지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주목할만한 현대 건축물’은 프랑스 정부가 심사해 100년 미만의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지정해 관리하는 건물이다.
이 화백은 어린 시절 진주에서 수학(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현 진주여고)했고 경남 하동과 창녕 군수를 지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신여성이었다.
그는 일본 도쿄 짓센여자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외과의사와 결혼했으나 12년 만에 이혼하고 이듬해인 1951년 아들 셋을 두고 혼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로 가기 직전엔 인천에서 살았다.
무명으로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빠르게 파리 화단에 적응했다.
그는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한 적이 없었지만 1953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한 지 3년 만에 국립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당시 파리 최고 갤러리였던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전에 쟁쟁한 화가들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 ‘내가 아는 어머니’가 출품됐다.
1964년엔 같은 갤러리에서 이성자 개인전을 열었다.
이 화백은 “내가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의 밥 한 술 떠먹이는 것이고,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며 애틋한 모정을 보였다. 그는 당시 세 아들을 키웠다.
은하수는 그가 지난 1992년 투레트에 ‘음양’의 모티브를 형상화해 지은 아틀리에다.
낮엔 양기가 듬뿍 흐르는 한쪽 건물에서는 그림을 음기가 깃든 건물에서는 밤에 판화 작업을 했다. 음양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상징적인 ‘은하수’를 만드는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 화백은 2009년 이곳에서 91세의 생을 마감했다.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테노바에서는 작가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가 열리고 있다.
동양의 철학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서양 기법을 녹여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화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던 바르토메우 마리가 기획을 맡아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작가의 작업실의 프랑스 문화유산 지정은 유럽은 물론 국내에서도 이 화백에 대한 관심을 더 뜨겁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