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국무회의를 통해 새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발표했습니다. 오는 23일 국회에 넘겨 최종 결정됩니다. 정부는 장기 경기 침체와 국제 정세 악화 등으로 인한 민생 어려움 타개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추경안 중 15만~50만 원(농어촌은 52만 원)을 주는 '소비쿠폰' 지급을 뺀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3개 분야를 뽑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정부는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장기 연체채권 매입·소각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 확대 ▲성실상환자 회복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를 내놓았습니다.
먼저 '장기 연체채권 매입·소각', 즉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안)'을 살펴봅니다.
이 중 핵심은 정부가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의 채무 가운데 '7년 이상 연체에 5000만 원 이하'이면 채무를 전액 탕감해주는 내용입니다. 개인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합니다.
채무 변제 기준은 금융사 등에서 연체 정보를 7년까지 보존하고,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조정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평균 채무액이 4456만 원인 점을 감안해 정했습니다. 도박·사행성 오락기구 제조업도 포함되는 등 대상자가 과거 어떤 직종의 사업을 했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이를 실행하는데 약 8000억 원이 들 전망입니다. 절반이 4000억 원은 이번 추경을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4000억 원은 이전에 했던 것처럼 은행 등 금융사가 내놓는 자금으로 조달합니다.
빚 탕감 실무 작업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하는 주식회사인 배드뱅크를 통해서 합니다.
배드뱅크(bad bank)는 은행 등에서 대출 등 부실자산을 싼값에 인수해 정리하는 전문기관입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부실 저축대부조합, 은행 등을 정리할 때 처음 도입됐는데 국내에서는 2003~2004년 신용카드 대란 때 '한마음 금융'이 설립된 적이 있습니다.
상환능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해당 채권이 완전히 소각됩니다. 대상자는 1인당 월 소득이 중위소득(약 143만 원) 60% 이하이거나 회생·파산 인정 재산 외 처분가능한 재산이 없는 경우입니다.
또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개인의 빚은 원금의 최대 80%까지 깎아주고, 남은 채무를 10년간 나눠 갚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113만 4000명의 장기 연체채권 규모인 16조 4000억 원이 소각 또는 채무조정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금융위는 "4000억 원은 재정에서 반영했지만 나머지는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며 "금융권과 대체적인 공감대는 형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위는 올 3분기에 재원 조달 방식, 심사 기준 등 세부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마련합니다. 선정된 대상자의 채권 소각은 금융권과 논의를 거쳐야 하기에 최소 1년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빚 탕감 및 감면 규모에 비해 투입 비용이 적다는 것입니다. 총 8000억 원으로 16조 4000억 원이 소각 또는 채무조정 됩니다.
배드뱅크를 만들어 부실화된 대출을 인수하는 건데 배드뱅크가 금융권을 대상으로 전체 빚 규모의 5%만 주고 사들입니다. 은행 등 금융사는 이런 악성 대출을 떼일 것으로 보고 싼값에 매각한다고 하네요. 정부 돈은 4000억 원을 투입합니다.
이 말고도 윤석열 정부에서 시행한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 탕감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확대해 빚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줍니다. 기간 연장도 해줍니다.
'새출발기금'은 부실채권을 직접 인수해 원금을 감면해주는 '매입형 채무조정'과 원금 감면 없이 금리와 상환 기간을 조정해주는 '중개형 채무조정'으로 나뉩니다.
그동안 '새출발기금'을 통해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대출 원금의 60~80%를 감면받거나 최대 10년간 나눠 갚도록 했었습니다. 2022년 10월 시행 이후 지금까지 3만 4000여 명이 약 2조 원의 원금을 탕감 받았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번 '새출발기금' 대책에는 기존에 빠졌던 ▲부동산 임대업 ▲법무·회계·세무 업종 등 전문직 ▲도박·사행성 오락기구 제조업 등을 포함시켰습니다. 논란의 소지도 있어 보입니다.
총 채무가 1억 원 이하이며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 60% 이하인 소상공인의 채무(무담보)에 대해서는 원금 90%까지 깎아주거나 분할 상환 기간을 최대 20년으로 늘려줍니다.
90%의 원금 감면율은 지금까지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에만 적용됐는데 지원 대상을 '총채무 1억 원 이하, 중위소득 60% 이하'의 저소득 연체 차주까지 확대합니다.
혜택을 받는 사업 기간도 2020년 4월부터 2024년 1월까지에서 올해 6월까지로 연장합니다.
이를 위해 이번 추경에서 약 7000억 원을 책정했으며 소상공인 10만 1000여 명이 6조 2000억 원의 빚을 추가로 탕감 받는다고 합니다. 이는 저소득 연체 소상공인의 약 40%에 해당합니다.
정부는 또 정책자금을 성실하게 상환 중인 취약 소상공인 19만 명에게도 '성실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1%포인트의 이자 지원이나 우대 금리를 제공합니다.
또 불법 사금융 피해자에게는 채무자 대리인 선임 지원을 확대하고 개인회생·파산 관련 무료 소송 대리 등 개인회생지원센터 2곳도 추가 설치합니다.
일각에선 '내 세금으로 엉뚱한 사람 좋은 일 시킨다', '빚 안 갚고 버티면 국가가 다 갚아준다'며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성실 상환자들의 형평성 문제도 도출됩니다.
하지만 국민 투표로 당선된 정부에서 하는 일이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빚은 안 갚고 버티면 정부가 갚아준다는 풍조가 만연할 우려는 커졌습니다.
한편 정부에서 내놓은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1,2차 추경)로 자영업자·소상공인 무려 123만여 명이 22조 6000억 원 규모의 빚을 탕감 받는다고 합니다.
역대 정부의 개인 대상 빚 탕감 정책 가운데 최대입니다. 이전 최대는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대 초 내놓았던 17조 5500억 원 규모의 농가 부채 탕감 정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