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후 6개월간 원-달러 환율이 끊임없이 오르면서 물가에 큰 비상이 걸렸다. 23일 외환시장에서 대 달러 환율이 1483.6원을 넘어서 시장에서는 1500원대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이렇듯 한국 돈의 가치가 없어지다 보니 원화, 즉 우리돈으로 사들이는 수입품 가격이 지속 오르고 있다. 수입품 값이 지속해 오르니, 덩달아 국내산 다른 제품 값도 오르는 현상 조짐도 우려된다.
지난 8월 하순 한 대형 할인매장에 노르웨이산과 부산산 고등어가 진열돼 있다. 노르웨이산이 부산산보다 비싸다. 당시 매장 관계자는 "환율 등의 이유로 노르웨이산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최근 부산산 고등어 값도 많이 올랐다. 정기홍 기자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외환시장에서의 대 달러 환율은 1483.6원으로 올라섰다.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1365.15원 수준이었지만 하반기 내내 오름세를 이어오다 10월 평균 환율은 1400원대를 넘어섰다. 지난달에는 1460원 선을 넘기더니 1480선도 뚫었다. 외환 트레이더들은 조만간 1500선도 넘길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이제 고환율은 안착돼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1998년 IMF 외환위기나 2000년대 초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두 달 사이에 환율이 치솟다가 안정세가 됐지만 이번은 다른 모습이다.
당정 수입 물가가 지속 오르고 있다.
지난달 수입 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2.6% 뛰면서 1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환율에 생산자 물가지수도 3개월째 올랐다.
이 여파로 소비자 물가도 1년 만에 2.4% 올랐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커피 수입물가지수는 2020년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달 307.12로 집계돼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커피 콩의 국제 시세가 최근 급등한 영향이다.
여기에 최근 고환율이 반영된 원화 기준 커피 물가지수는 379.71로, 70%포인트(p) 넘게 차이 났다.
원화로 커피를 산다면 5년 만에 4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소고기 수입가도 같은 기간에 달러 기준으로 30% 올랐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60% 넘게 상승했다.
수입 물가가 떨어졌는데도 고환율 영향으로 원화로 사면 비싸지는 경우도 많다.
신선 수산물의 경우 달러 기준 수입 물가는 5년 전보다 11% 낮아졌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10%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옥수수와 과일, 커피, 어육과 주스 원액 등의 달러 기준 물가지수도 1년 새 떨어졌지만 원화로 살 때는 더 비싸졌다.
문제는 정부가 연일 환율 대책을 내놓으며 금융기관·기업·국민연금을 압박하지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달러당 1500원을 향하고 있다.
반도체 등 수출 기업이 달러를 지속 벌어오고 있지만 기업이나 개인투자자 등 해외 투자 수요도 많다. 정부가 환율 방어용으로 내세우려는 국민연금도 해외 투자가 많은 건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는 미국에 매년 200억달러 정도 투자금을 보내야 하는 특수 상황도 발생해 있다.
여기에다 13조 원이란 '민생 회복 소비쿠폰'도 뿌려져 시중엔 돈(한화)이 넘쳐난다. 집값과 주식도 들썩하고 있다.
아무튼 시중에 달러는 모자라고 한화는 넘치는 시대다.
항간에선 "이런 추세가 오래 지속되면 가진 돈으로 주식 등에 투기 하지 않고, 은행 계좌에 돈 넣어두면 0원 가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오를 만큼 올라 위험도가 높은 상황이다.
이 말고도 주식시장에서 불린 돈이 궁극엔 부동산 시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란 예측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부의 극단적 부동산 투기 근절책에도 아파트 가격은 지속 오르고 있다. 최근엔 아파트 값이 폭등한 문재인 정부 때보다 상승폭이 더 높았다는 조사 자료도 나왔다.
여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민물가 시장에서는 3년여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원자재 가격 폭등이 재연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당시 폭등한 소비자 물가가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물가가 오를까 하는 걱정이다.
경남 진주시 하대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천 모(40대) 씨는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7000~8000원 하던 국밥 한 그릇 가격이 이제 1만~1만 1000원으로 고착화 됐다"며 "손님과 마찬가지로 음식점도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걱정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고환율 지속에도 애써 무관심해 하려는 듯 취임 직후인 지난 6월 26일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국회시정연설 이후 입을 닫고 있다.
그는 당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경제성장률은 4분기(2024년) 연속 0%대에 머물렀다”며 윤석옆 정부를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때인 지난 2월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넘어서자 "환율이 폭등해 이 나라 모든 국민의 재산이 7%씩 날아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가"라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은행 계좌에 돈을 넣어둔 사람들은 '0원'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23일 부산 해양수산부에서 열린 국무회의 시간에 원-달러 환율은 1484원을 돌파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인 지난 4월 8일 기록한 1487.07원에 육박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