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2일은 동지(冬至)입니다. 겨울 동, 이를 지, 즉 ‘겨울에 이른다’는 뜻으로 겨울다운 겨울이 왔다는 뜻입니다. 절기로는 24개 중 22번째이니 한해를 마무리 때입니다.
영하 15~20도 동장군 기세는 아니지만 전국에 추위가 닥쳐 춥습니다. 동짓날에 눈이 많고 한파가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날씨가 매서우면 해충이 얼어죽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겨울 날씨가 따뜻하면 이듬 해에 질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경남 진주시 중앙동 지역사회보장협의회 회원들이 팥죽에 넣을 새알심을 빚고 있다. 진주시
동짓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습니다. 날씨가 그중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동굴 등에서 나가지 않고 교미를 한다고 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합니다.
이날이 지나면 하루 약 1분씩 해가 길어집니다. 옛날 민간에서는 동지를 계기로 태양이 부활한다고 해 이날을 '작은설(亞歲)'이라고 해 절기식인 팥죽을 쑤어먹었습니다. 악귀도 쫓아낸다는 붉은 팥을 넣고 새알도 듬뿍 넣어 영양 보충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선조들은 밤이 1년 중 가장 긴 동지를 음귀(악귀)가 활동하기 좋은 때라 여겨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쫓는 양기를 주는 색깔로 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팥을 오곡(쌀, 보리, 콩, 조, 기장) 중에서 악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곡식으로 삼았습니다.
이날 쑨 팥죽을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 곳곳에 두면 나쁜 기운을 풀어내고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습니다. 또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데 이것도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입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앞두고 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적조암에서 스님과 마을 신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지 팥죽에 들어갈 새알심을 빚고 있다. 함양군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는데 나이만큼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짐작컨대 배고픈 시대였으니 어른들이 많이 드시도록 만든 말이 아닌가 합니다. 육순 어른이 60개 새알심을 드실 순 없겠지요.
아울러 일꾼(머슴)들은 팥죽을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많이 먹고 기운 내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새알심은 팥죽이나 호박죽과 같이 달콤한 맛이 나는 음식에 넣어 먹는데,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를 한자로 '동지첨치(冬至添齒)'라고 합니다. 겨울 동(冬), 이를 지(至), 더할 첨(添), 이 치나 나이 치(齒)입니다. 경상 지방에서는 미역국에도 넣어 먹습니다.
요즘엔 주로 사찰에서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끓여 전통의 맥을 잇고, 지역 봉사단체에서 팥죽을 정스들여 끓여 어르신들을 찾아 드립니다. 한겨울 온기 가득한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뜨끈뜨끈한 팥죽에다 겨울철 별미인 동치미를 곁들이면 입 속의 만족도는 극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의 열두 달 행사와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에는 "공공씨(共工氏)란 사람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은 뒤 역질귀신이 됐다. 하지만 이 귀신은 붉은 팥을 무서워해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고 적혀있습니다.
연관해 사람이 죽으면 악기를 쫓는다며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상을 치르는 집)에 부조하는 관습도 있다네요.
달리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상들은 경사나 재앙이 닥쳤을 때 팥죽, 팥밥, 팥떡을 먹었고 요즘도 고사 지낼 때 팥떡을 해 나눠먹는 풍습이 전해집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고, 공사가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고사떡이라고 하지요.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초순(1~10일)이면 애(兒)동지, 중순(11~20일)이면 중(中)동지, 하순(21~30일)이면 어른(老)동지로 부릅니다.
참고로 24절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나눈 게 아니라 양력이 기준입니다. 많은 분들이 전래 풍습이라며 음력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애동지는 보통 윤달이 낀 해에 찾아옵니다. 경북, 강원에서는 '아동지', 전남에선 '아그동지' 혹은 '소동지'라고 부릅니다.
애동지에 '아이가 많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팥죽 대신 시루떡을 해먹는 풍습도 있다고 전하네요.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돌보지 못해 병에 잘 걸리고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속설 때문이랍니다.
코로나19처럼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팥죽을 몸에 좋은 건강식으로 여깁니다.
단백질, 철분이 풍부하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골고루 들어있어 겨울철 영양 균형을 맞추는데 좋은 식품입니다. 또 소화 능력을 높이고 피로로 줄여 주고, 칼륨과 식이섬유도 많아 체내 노폐물 배출해주지요.
다만 팥에는 사포닌이 많아 장이나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이 과하게 먹으면 설사를 유발하기 쉽다고 하네요.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며 쑤시고 아픈 단독(丹毒·erysipelas)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단독은 피부가 연쇄상구균에 감염돼 피하조직과 피부에 병변이 나타나는 급성 접촉성 전염 질환입니다.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고 해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서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