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다.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려 날씨가 꽤 춥다. 다만 해가 조금씩 길어져 낮기온은 영상을 기록하고 햇살에는 봄기운이 깃든다.

입춘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고 양력으로는 2월 초순, 음력으로는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에는 섣달에 드는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재봉춘(再逢春·음력으로 1년에 입춘이 두 번 드는 일)'이라고 한다.

선조들은 이날을 기리고 일년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을 행했으나 근래에는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만 있을 뿐 절일(節日·절기 날)로서의 기능은 많이 상실된 상태다.

경남 진주시 진성면 한 가정의 방 입구에 붙인 입춘첩. 정기홍 기자

입춘은 음력 새해의 첫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 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다.

입춘날엔 가정에서는 기복적인 행사로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입춘축은 춘축(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방(立春榜) 춘방(春榜)이라고도 부른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춰 붙이면 좋다는 속설에 주로 밤중이나 새벽에 붙인다. 다만 상중(喪中)인 가정에서는 붙이지 않는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cm 내외, 세로 70cm 내외의 한지를 두 장 마련해 쓴다. 한지를 마름모 꼴로 세워 ‘용(龍)’자와 ‘호(虎)’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입춘축의 내용은 대개 정해져 있으며 두루 쓰는 것은 대구(對句), 대련(對聯), 단첩(單帖·단구로 된 첩자)으로 돼있다.

대구의 내용은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기주오복 화봉삼축(箕疇五福 華封三祝)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등이다.

대련으로는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 등이 있다.

단첩으로는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등을 붙인다.

입춘축은 붙이는 곳에 따라 내용을 달리한다.

큰방 문 위의 벽이나 마루의 양쪽 기둥, 부엌의 두 문짝, 곳간의 두 문짝, 외양간의 문짝에 붙인다.

옛날 대궐에서는 입춘날 내전(內殿)의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했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지은 풍습지인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입춘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 초계문신(抄啓文臣, 당하문관 중에서 문학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다달이 강독·제술 시험을 보게 하던 사람)과 시종신(侍從臣)에게 궁전의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을 불러 운(韻)자를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세시 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입춘날에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 붙인다'고 해 여기서 지금의 춘련이 비롯됐다"고 적고 있다.

이와 함께 입춘날 관상감(觀象監)에서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써서 대궐 안으로 올리면 이것을 대궐 안 건물의 문설주에 붙이는데 이를 입춘부(立春符)라 한다.

입춘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갑작은 흉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은 귀신을 잡아먹고,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제는 재앙을 잡아먹고, 백기는 꿈을 잡아먹고, 강양과 조명은 함께 책사와 기생을 잡아먹고, 위수는 관을 잡아먹고, 착단은 큰 것을 잡아먹고, 궁기와 등근은 함께 뱃속 벌레를 잡아먹는다. 대저 열두 신을 부려 흉악한 악귀들을 내쫓고, 너의 몸을 으르고, 너의 간과 뼈를 빼앗고, 너의 살을 도려내고, 너의 폐장을 꺼내게 할 것이니, 네가 빨리 달아나지 않으면 열두 신들의 밥이 되리라. 빨리 빨리 법대로 하렸다'

입춘은 새해에 드는 첫 절기여서 궁중과 지방에서 여러 의례를 베풀었다.

입춘하례(立春賀禮)의 경우 고려사(高麗史)의 '예지(禮志)' 입춘하의조(立春賀儀條)에는 '인일(人日)의 축하 예식과 같으나 다만 입춘에는 춘번자(春幡子)를 받는다'고 적고 있다. 입춘날에 백관이 대전에 가서 입춘절을 축하하면 임금이 그들에게 춘번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에게는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 유가경전인 '예기(禮記)'에는 "출토우사(出土牛事·토우를 내는 일)의 경우 대나의(大儺儀·궁중의 역귀를 쫓는 군례) 때 토우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出土牛以送寒氣)"라고 적었다.

고려시대에는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 시행됐다.

목우(木牛)의 경우 함경도에서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다니는 의례가 있었다.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겨울의 추운 기운을 내보내는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입춘굿은 입춘날 하는 굿놀이로, 농경 의례에 속한다.

제주에서는 해마다 입춘 전날 무당들이 주사(州司)에 모여 나무로 만든 소에게 제사를 지낸다.

입춘날 아침에는 머리에 월계수 꽃을 꽂고 흑단령 의복을 차려 입은 호장(戶長)이 나무소에 농기구를 갖추고 나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무격들과 함께 큰 징과 북을 치며 나무소를 호위해 대오를 인도한다.

행진이 관덕정 앞마당에 이르면 호장은 무격들에게 여염집에 쌓아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하고 이 보릿단으로 실(實)과 부실(不實)을 판단해 한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

이어 객사에 이르면 문 밖에 있던 호장은 쟁기를 잡고 밭을 갈고, 아주 크고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단 농부 차림의 사람이 등장해 오곡의 씨를 뿌린다.

이어 초라니 광대처럼 채색한 새 탈을 쓴 다른 사람이 등장해 곡식을 주워 쪼아먹는 시늉을 한다. 또 두 사람이 여자 배우의 가면을 쓰고 등장해 처첩이 투기해 서로 다투는 장면을 연출한다. 남편인 듯한 탈을 쓴 광대가 등장해 거짓으로 서로 말리는 양하면 관중은 모두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장면은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하다.

이어 무격들이 한 떼를 이뤄 어지럽게 춤을 추며 신을 놀리는 등 태평을 즐긴다. 동헌에 돌아와서도 이와 같이 한다. 이는 대개 탐라왕이 몸소 백성들 앞에서 밭을 갈아 풍년을 기원하던 유습이 전해 내려온 것이다.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해 입춘축이 벽사(辟邪), 즉 악귀를 쫓기 위해 붙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북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춘련(春聯) 붙인다'라고 하며 이를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붙이지 않아도 그냥 글귀를 외워도 좋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방악(防惡)한다’ 또는 ‘잡귀야 달아나라’라고 한다.

19세기 세시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맥근점(麥根占·보리뿌리점)이라 해 농가에서 입춘날 보리 뿌리를 캐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적고 있다.

서울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보고 뿌리가 많이 돋아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적게 돋아나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경기도 시흥·여주, 인천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캐어 보리의 중간뿌리(中根)가 다섯 뿌리 이상 내렸으면 풍년이 들고 다섯 뿌리에 차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뽑아 살강 뒤에 놓아두면 보리뿌리가 자라는데, 보리 뿌리가 많이 나면 길하고 적게 나면 그해 보리가 안 된다고 한다.

충남에서는 입춘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집안과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체를 엎어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들어보면 어떤 곡식이 한 알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온 곡식이 그해에 풍년들 곡식이라 한다.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병이 없으며 생활이 안정되나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쁘면 ‘입춘치’라 한다.

‘치’는 접미사로 보름·그믐·조금 또는 일진의 진사(辰巳)·술해(戌亥) 등에 붙여 그 날 무렵에 날씨의 나빠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첫날인 입춘에 이러한 입춘치가 있는 것을 농사에는 나쁘다고 생각했다.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날 눈이 오면 그해 며루(자방충)가 쓰인다”고 해 그해 여름 벼농사에 며루가 많이 생겨 농사에 해가 된다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바람이 불면 그해 내내 바람이 많고 밭농사도 나쁘다고 전한다. 또 입춘날 입춘축을 써서 사방에 붙이면 그해 만사가 대길하나, 이날 망치질을 하면 불운이 닥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 조심한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누구에게도 내주는 일이 없는데 만일 집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만 된다고 한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날 절에 가서 삼재(三災) 풀이를 하는데 삼재를 당한 사람의 속옷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라 쓰고 부처님 앞에 빌고 난 후 속옷을 가져다가 불에 태운다.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는 이날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안 곳곳에 뿌려 벽사(辟邪)를 한다.

충청도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좋다며 보리밥을 해 먹고,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이 일년에 두 번 들면 소금 시세가 좋다고 한다.

함남 북청에서는 이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해 먹고, 잡곡밥은 먹지 않고 흰쌀밥을 먹으며, 이날을 나이 먹는 날이라 해서 명태순대를 해 먹는다. 함남 홍원에서는 이날 남자들은 등심이 난다고 해서 명태를 통째로 쪄서 먹는다.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해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함경도에서는 민간에서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의 육읍(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에서는 총아(葱芽·움파)·산개(山芥·멧갓)·신감채(辛甘菜·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 임금께 진상한다.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해 수라상에 올렸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됐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고 해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이와 함께 대한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장독·김칫독) 깨진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라고 하고,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에는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고 말한다.

또 입춘 무렵에는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거나 격(格)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假家柱立春)'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