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라면업계의 올해 2분기 실적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모든 라면업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곡물가 급등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가속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업계 1위인 농심은 국내영업에서 첫 적자를 낸 반면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선전했다. 라면 업체들은 지난해 8월 가격을 인상했다.
농심은 지난 16일 올해 2분기에 매출(연결 기준) 7562억원, 영업이익 43억원을 각각 거뒀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6.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5.5% 급감했다. 원재료로 쓰이는 곡물가, 유류비, 포장재 비용 등의 급등이 큰 영향을 줬다.
증권가의 실적 발표 전 컨센서스(증권가 추정치 평균)는 영업이익이 118억원일 것으로 추정했지만 절반 아래인 어닝쇼크였다.
어닝쇼크는 국내 법인의 수익성 하락 영향이 컸다.
농심은 별도기준(해외법인 실적 제외)으로 2분기에 30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농심 국내법인이 분기에 적자를 낸 것은 지난 1998년 2분기 이후 24년 만이다.
다만 ‘K푸드 열풍’에 힘입어 해외법인에서 7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게 연결기준으로 영업 흑자를 내는데 도움을 줬다.
농심은 “국제 원자재 시세 상승, 높은 환율로 인해 원재료 구매 단가가 높아졌고 물류비 등 제반 경영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의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 5월의 인도의 밀 수출 중단 등으로 팜유와 밀가루 등 라면 원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게 경쟁사보다 더 큰 타격을 입혔다. 농심은 총매출의 78.9%가 라면류다.
증권업계에서는 농심이 올해 하반기에도 영업이익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곡물가가 정점에 달했던 3~6월 구입한 원재료가 3분기에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반면 오뚜기는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이 78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 증가했다. 영업이익이 4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307억원으로 13% 증가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유지류, 간편식 등 주요 제품의 매출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비용이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실적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오뚜기는 진라면 외에 유지, 소스류 등의 비중이 높다.
또 오뚜기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 5317억원으로 14% 늘었고, 영업이익은 1067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4% 증가했다.
오뚜기는 올해 상반기에 비(非)라면 제품가를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인상했다. 이를 통해 주력인 라면에서의 수익성 악화를 어느 정도 상쇄했다.
삼양식품은 원가 압박 속에도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삼양식품의 2분기 매출(연결 기준)은 2553억원, 영업이익은 27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3%, 92% 증가한 것이다.
삼양식품의 호실적은 해외 사업이 견인했다.
2분기 수출액은 전년 분기 대비 110% 증가한 1833억원이다. 수출국 확대와 불닭 브랜드 제품을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
‘불닭볶음면’의 해외 인기에 힘입어 수출 부문 매출(올해 상반기 3161억원)이 내수(1319억원)의 2.4배에 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에 비해 1.9배 불어났다.
삼양식품은 다른 라면 업체와 달리 현지생산 없이 수출 물량을 국내에서 전량 생산해 최근 환율 급등에 따른 반사이익도 톡톡히 봤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수출 대상국을 기존 중국·동남아 시장 중심에서 미주·중동·유럽 등으로 확대하고, ‘하바네로라임 불닭볶음면’ 등 현지 맞춤형 제품, 불닭소스 등으로 대표 상품인 ‘불닭’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했다.
‘불닭’의 또다른 인기 요인은 BTS의 지민의 역할이 컸다. 회사 측은 “지민이 불닭면을 즐겨 먹는 모습을 올려줘 광고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민은 전 세계 수백만명 팬들이 지켜보는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최애 간식인 불닭볶음면 먹방을 선보였는데,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끝까지 먹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이후 국내외 유튜버들 사이에서 불닭볶음면이 ‘매운맛 챌린지’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불닭의 매출이 상승했다. 이에 삼양식품은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면업계의 올해 하반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제 곡물가와 인플레 영향은 물론 정부가 물가 관리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 가격을 추가 인상하기가 어렵다. 라면은 스낵과자, 빵 등과 함께 소비자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농심의 경우 일단 수출 제품가를 올리고 제조원가 절감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라면 가격 인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농심의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보다 13%, 15%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