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는 31일 오후 5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과 함께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개막식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조각, 회화, 공예, 건축, 도자 등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오는 9월 1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된다.
문신(文信·1922~1995)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가로 이름을 얻은 작가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에서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추상조각의 맥락에서도 이례적인 작가이다.
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자유, 고독, 열정, 긴장이 동시대인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던진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현 창원시)에서 보내고 16세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촉망받는 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1961년 불혹 무렵에 프랑스로 건너갔고, 1980년 영구 귀국할 때는 조각가로 이름을 떨쳤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는 ‘살롱 드 메’(Salon de Mai, 5월 살롱), ‘살롱 그랑 에 죈느 도주르디’(Salons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동시대 대가와 청년작가 살롱),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éalité Nouvelle, 신사실주의 살롱) 등 당시 주요한 살롱에 초대 받아 활동했다.
귀국 후 마산에 정착해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하다가 직접 디자인,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이듬해 타계했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삶은 그가 감수해야만 했던 불운이 아니라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지리적, 민족적, 국가적 경계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회화에서 조각, 공예, 실내디자인, 건축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나아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깎아 들어감(彫)과 붙여나감(塑), 형식과 내용, 물질과 정신 등 여러 이분법적 경계를 횡단하고 이들 대립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찾아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신 조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대칭’은 단순한 형태적, 구조적 좌우대칭을 뛰어넘는다. 자연과 우주의 생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독창적인 추상 조각은 ‘시메트리(Symmetry·대칭)’가 바탕이 된 균제미, 정면성, 수직성, 고도의 장인정신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다양한 형태의 여러 조각 작품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했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던 작가에게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문신의 조각 작품은 단순한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 특정 형태를 집중해 제작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제작한 드로잉을 1980, 1990년대에 다양한 크기와 재료의 조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크게 회화, 조각, 건축(공공미술)으로 나누고 전시의 중심이 되는 조각 부분에서 형태의 다양한 변주를 감상하고 창작 과정을 살펴본다.
드로잉은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었던 문신의 예술 사상과 실천의 독특한 면모가 직관적으로 발현된 장르로서, 4개의 전시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전시는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된다.
1부 '파노라마 속으로'는 문신 예술의 시작인 회화를 다룬다.
‘지금 여기’의 삶을 성찰하는 구상회화에서 생명과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는 추상회화로의 변화가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50여 년에 걸쳐 제작된 문신의 회화는 작가를 대표하는 조각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조형미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2부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은 프랑스로 간 뒤 1960년대 말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조각에서 형태를 가장 중시했는데 문신의 조각은 크게 구 또는 반구가 구축적으로 배열되어 무한히 확산되거나 반복되는 기하학적 형태와 개미나 나비 등 곤충이나 새, 식물 등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문신 조각의 모든 형태는 ‘생명의 리듬’, 즉 창조적으로 진화하는‘생명’또는 약동하는 ‘생명력’을 내포한다.
2부에서는 다수의 나무 조각 작품들과 드로잉을 통해 문신의 조각이 지닌 상징, 의미를 찾기보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추상 형태 그 자체를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3부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은 브론즈 조각의 작품을 주로 소개한다.
작가는 같은 형태를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제작했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했다.
작가는 다양한 재료와 조각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했고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작품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 그리고 부단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개미(라 후루미)'(1985), '우주를 향하여3'(1989) 등 다수의 브론즈 작품들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4부 '도시와 조각'은 도시와 환경이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본 문신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소위 환경조각이라고도 불리는 야외조각과 체불 시절 작가가 시도했던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 ‘공원 조형물 모형’ 등 공공조형물을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현재 사진과 드로잉만 남아 있어,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은 VR로, ‘공원 조형물 모형’은 3D 프린팅으로 구현해 대중에게 최초로 선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지은 건축물로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자 작가의 50년 예술 경력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영상과 함께 미술관 건축을 위한 드로잉도 함께 소개된다.
한편 전시 기간 중 미술관교육과에서는 작품명이 '무제'인 3점의 작품을 감상하고 참여자가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을 직접 지어보는 '전시를 말하다: 무제 워크숍-제목 짓기'를 진행한다.
이 워크숍은 전시된 작품 옆의 QR코드를 통해서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워크숍이며, 참여자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제목을 선정해서 소정의 기념품을 증정할 예정이다.
2전시실 앞 교육공간에서는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드로잉, 그리고 조각' 워크숍을 운영한다. 연필과 스티커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조각 드로잉을 제작할 수 있으며 참여자들의 작품은 향후 SNS에 공유될 예정이다.
개막식에 참석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창원시가 공동주최하고 여러 기관과 연구자, 소장자의 적극적인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문신만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삶과 예술이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명래 창원시 제2부시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체계적 연구와 객관적 고증을 통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신의 국내외적 평가와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과 문신의 소중한 자산들을 간직한 창원특례시의 문화적 위상도 함께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전시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