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축구대표팀과 카메룬대표팀간의 평가전 후반 35분, 5만 9389명이 들어찬 관중석에서 갑자기 이강인(21·마요르카)을 연호했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한국 감독이 부상 당한 황의조(그리스 올림피아코스) 대신 백승호(전북) 교체 투입을 준비하는 와중이었다.
이어 후반 39분과 추가시간에도 관중들은 또다시 이강인을 외쳤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교체명단에 등록한 것 말고는 끝내 외면했다. 교체는 총 6명(전후반 교체 횟수 3번)으로 제한돼 있어 더이상 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스페인에서 날아온 이강인은 연이어 벌어진 9월 A매치 2경기(코스트리카, 카메룬)에서 단 1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벤투는 끝내 2경기 모두 이강인을 투입하지 않았다.
경기 전반전 전광판에 벤치에 앉은 이강인을 비출 때마다 관중들은 이강인을 외쳤다. 이강인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보고 싶은 팬들의 환호성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팬들은 진한 아쉬움에, 어린 선수의 상심을 위로 하는 “이강인”을 외쳤다.
권창훈(김천)과 나상호(서울), 황의조, 정우영(카타르 알 사드)이 차례로 교체됐지만 후반전 왼쪽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몸을 풀던 이강인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날 후반 경기는 전반과 달리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아 이강인이 교체로 들어갔다면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이날 전반 35분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의 헤딩골로 1.5군이라는 카메룬에 1-0으로 승리했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일 훈련 때 이강인을 섀도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측면 공격수에 배치해 실전 실험했다.
벤투는 카메룬 경기를 하루 앞둔 26일 이강인과 양현준(강원) 출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경기 중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린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경기력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대표팀에 오려면 구단에서 먼저 기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두 선수는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어 동문서답을 한 격이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은 경기 내내 특별한 변화를 원치 않는 듯 보였다. 교체도 원래 멤버들 위주로 했다. 이강인은 우리의 기존 선수들과는 틀림없이 다른 유형이기에 절박한 순간에 의외성을 추가해줄 수 있는 선수라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선수 선발과 투입은 감독의 전권이다. 하지만 책임도 감독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은 카메룬과의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축구팬 분들이 강인이를 보고 싶었을 거다. 나도 축구 팬으로서 강인이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걸 보면 좋겠지만, 감독님도 생각과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어 “모든 집중이 강인이한테만 가면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이강인을 따뜻하게 안고 격려했다.
한편 앞서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강인은 “다시 대표팀에 올 수 있어 좋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축구선수로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커 아쉽지만 제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소속팀에 돌아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팬들이 큰 관심에 대해선 “선수로서 감사했다. 많이 응원해주셨으니 소속팀에 돌아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