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입니다. 24절기 가운데 끝자락인 21번째 절기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재래 역법(曆法)의 발상지이자 기준점인 중국 화베이(華北)의 계절을 반영한 절기여서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대설은 음력 11월,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등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立冬)과 소설, 11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여깁니다.
서양에서는 추분(秋分) 이후 대설 때까지를 가을로 칩니다.
농가에서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하지요.
옛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해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여주)가 돋아난다고 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가 지은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 일년 열두 달 절기와 농사일, 풍속을 각각 7언 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설 관련 내용을 소개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時維仲冬爲暢月)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大雪冬至是二節)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하략)···
대설 절기는 한겨울에 해당하며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이고 가을 동안 수확한 곡식들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어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성한 때입니다.
대설이 지나면 곧바로 날씨가 추워집니다.
이 때쯤 생각나는 따뜻한 고구마죽은 겨울철에 맞는 음식이지요.
고구마죽은 씻어 말린 고구마에 물을 부어 푹 삷고 팥이나 콩을 넣어 푹 삶은 뒤 밀가루를 물에 개어 넣으면서 젓고 소금이나 설탕으로 간을 맞추어 먹습니다. 경상도 지방에선 '빼때기죽'이라고 한다네요.
빼때기는 날 고구마를 납작하게 썰어 말린 것인데 곶감처럼 하얀 당분(알라핀)이 배어나오고 씹을 때 구수하고 향긋한 단맛을 느낄 수 있어 겨울 간식용으로 많이 먹었지요. 빼때기는 소주 주정으로도 사용돼 농협에서 매상으로 구입했다고 합니다.
납작하게 썬 고구마는 가을 추수 끝나면 초가지붕이나 뒷동산 잔디 위에 펴 말려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한 때 지천에서 보았던 추억의 한 장면입니다.
농촌에서는 한가하지만 겨울나기 준비도 합니다.
깎아 말린 곶감은 서리를 맞히고 항아리에 넣어 보관합니다. 맛이 깊어진다고 하네요. 미처 뽑지 못한 배추나 무·당근도 마저 뽑아냅니다. 요즘은 비닐히우스 재배 등으로 사시사철 농사를 지으니 의미는 크게 없습니다.
이즈음에 또한 중요한 일은 메주쑤기입니다. 잘 씻은 노란 콩을 삶아 뭉그러질 때까지 절구로 찧고, 다음에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다듬으면 메주가 됩니다. 메주는 짝수로 만들면 불길하다 하여 홀수로 만든다는 말도 있네요.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날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대설이 지났는데도 눈이 내리지 않으면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네요. 이 제례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된 농경 의례의 하나입니다. 요즘이야 기우제나 기설제를 지낼 일은 없지요.
눈과 관련한 속담으로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가 있네요. 이는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뜻입니다.
중국에서는 ‘소설에 장아찌를 담그고, 대설에 고기를 절인다’는 속담이 있다네요.
대설 무렵에 집집마다 라로우(腊肉)를 절이고 말리기 시작하는데, 소금과 산초 등 양념을 살짝 볶은 후 생선이나 고기에 뿌리고 항아리에 담아 그늘 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둡니다. 보름 정도 지나 꺼내서 말려 먹는다고 합니다.
대설 절기는 얼어붙은 강가를 바라보는, 포근한 상념의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