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한달 앞(3월 8일)으로 다가섰습니다.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뽑는 선거입니다. 국회의원, 시장·군수, 자치의원 선거 뺨칠 정도로 물밑 경쟁이 치열합니다. 더경남뉴스가 창간 1주년(4일)을 맞아 참일꾼을 뽑는 조합장 선거를 4회에 걸쳐 선거운동 현장과 문제점, 해결책을 짚어봅니다.
[조합장 선거 기획 시리즈] 아직도 불법 무감각-은밀한 발길과 건네는 손(2)
최근 보름새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3월 8일)와 관련한 3건의 '웃픈' 선거 사례가 알려져 세간의 웃음을 샀다.
금품이 든 쇼핑백을 들고 조합원의 집에 들어가려다가 이를 거위가 먼저 알고 뒤쫓아와 날개짓을 하며 달려들고, 어느 지역의 선관위는 홍어를 금품으로 받은 조합원은 자수해 광명 찾자는 현수막을 거는가 하면, 또 다른 선관위에서는 불법 선물 의심 사례를 적발했지만 모두가 발뺌을 하자 산지에 가서 택배 사실을 찾아낸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사례 모두가 조합장 선거와 관련한 촌극(寸劇)이다.
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금품 등으로 표를 매수하려는 불법 선거운동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평소 조용하던 농어산촌에서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곳곳에서 '돈 선거'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대부분의 불법은 기부 행위나 금품 제공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6일 기준으로 이번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선관위가 수사 기관에 고발(62건) 및 수사의뢰(3건)를 하고, 경고 등(84건)을 한 사례는 전국에 총 149건이다. 이 중 기부 행위는 52건(84%)로 가장 많았다.
불법 기부 행위와 함께 현직 조합장 및 예비 출마자와 이들의 측근이 불법으로 조합원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현금 봉투를 건넸다가 적발된 것이다. 편법으로 현수막을 거는 사례도 등장한다.
다행히 불법 사례는 16일 기준으로 지난번 선거(2회) 때 같은 기간의 223건에 비해 33% 감소했다. 선관위와 경찰의 단속도 강화됐지만 신고 정신, CCTV 등 감시시스템 가동 등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농어산촌의 특수성을 활용한 은밀한 불법 선거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조합장 선거법(위탁선거법)에는 '조합장 임기 만료일 180일 전(지난해 9월 21일)부터 선거일(올해 3월 8일)까지 금품을 제공하면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선관위가 조합장 선거를 위탁 받아 관리하는 '위탁선거법'인데, 지난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경각심을 주는 특별한 사례를 중심을 불·편법 실태를 살펴본다.
#장면 하나-금품 건네려 하자 거위가 먼저 알고 달려들어
전남의 한 수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의 측근 남성 두 명은 지지 부탁용 선물을 들고 조합원의 집에 들렀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이 장면은 카메라 영상에 모두 찍혔는데, 마당에 있던 거위 한 마리가 쇼핑백을 들고 들어가던 남성에게 날개를 크게 펼치며 달려들었다.
이에 이 남성은 서둘러 현관으로 들어갔고 쇼핑백에는 빵(롤케이크) 2개와 현금 50만 원이 담겨있었다. 거위가 먼저 불법임을 알고 내쫓으려고 했다며 화제가 됐다.
이같이 조합원의 집을 찾는 경우는 일반적인 불법 선거 행태다.
전남의 한 조합장 출마 예정자는 조합원 집에 직접 찾아가 현금 20만 원을 주고 나왔는데 이 조합원은 곧바로 선관위에 신고했다. 이 조합원은 "이 사람이 몇 집 돌리고 왔다면서 5만 원짜리 4개를 딱 우리 (탁자에) 놔두고 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장면 둘-"홍어 받은 분, 자수하세요"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자수하여 과태료를 감경·면제 받기 바랍니다”
이 달초 전북 전주김제완주축협 지점 앞에는 평소 전혀 보기가 어려운 현수막이 걸렸다.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 명의의 ‘자수 권고’ 현수막이다.
도선관위는 지난 8일 설 명절을 맞아 의도치 않게 선물을 받은 조합원들의 과태료 부담을 막고자 해당 축협인 전주시 호성동 전주김제완주축협 지점과 사무소 등 9곳에 ‘자수 권고’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했다.
도선거관리위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 예비후보가 냉동 홍어를 조합원들에게 돌렸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고 밝혔다.
현수막에는 “오는 3월 8일 실시하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2월 15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수해 과태료를 감경·면제 받기를 바랍니다”고 적혀있었다.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 등을 불법으로 제공(넓은 의미에서 기부 행위)한 사람은 에누리 없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 이 금품을 받은 조합원도 받은 금액 10~50배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홍어 1마리 가격을 15만원으로 추산하면 홍어를 받은 조합원의 과태료는 최대 750만원 가량 부과될 수 있다. 김제시와 완주군에서 홍어를 받은 조합원은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파문이 확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금품을 받은 사람이 자수하면 과태료가 줄어들거나 든다.
한편, 전북선관위는 금품·음식물 등을 제공받은 사람은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자수한 사람에게는 과태료 부과 면제를 적극 적용해 신고·제보를 유도하고 신고자에게는 최고 3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장면 셋=조합장의 수상한 전복 선물, 생산 현지까지 가서 뒤져
지난해 추석을 앞둔 9월 대구 지역의 농협 조합장 A 씨는 조합의 직원 120여명의 집으로 1개당 4만 5000원인 전복 선물세트를 보냈다. 올해 3월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추석을 맞아 “잘 봐달라”는 부탁 차원이었다.
이를 제보 받은 대구시선거관리위는 조합의 직원에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준 것이냐”고 캐물었지만 이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선관위는 전복 양식이 활발한 전남 완도로 조사팀을 급파해 며칠간 수소문응 한 끝에 전북을 판 업자를 찾았다. 전복 주문자가 A 씨임을 확인한 선관위는 선물 수령자 중에 투표권이 있는 조합원 8명과 그 가족 18명을 확인했다. 선관위는 금품 제공 혐의(위탁선거법 위반)로 A 씨를 지난 1월 말 고발했다.
전남의 한 조합장 후보도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조합원 215명에게 3만원가량의 굴비 세트(총 650만원)를 보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는 한 조합원의 집을 방문해 “도와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넨 혐의도 있다.
부산의 한 농협 조합장 후보는 2021년 추석 때 선물 형식으로 어묵 선물세트(총 486만원)를 162명의 조합원 집으로 보냈다. 그는 지난 1월 설에도 288명의 조합원에게 유과세트(총 518만원)를 선물로 일일이 택배로 부쳤다.
그는 또 지난해 3~8월 조합원 60여명에게 ‘명품 구포 국수세트’(36만원)를 선물을 주는 등 모두 1040만원 어치의 선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대부분의 조합은 위의 사례처럼 명절을 앞두고 조합장 개인이 아닌 조합의 명의로 조합원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선물을 받은 조합원들은 "명절을 맞아 으레 조합 발전에 고마웠다고 주는 선물인 줄 안다"고 말한다. 주의를 해야 할 대목이지만 농어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이 구별하기란 힘들다.
현 조합장이 임기 4년간 합법적이지만 편법으로 선거 운동을 한다는 지적이 이런 경우다. 조합장에겐 임기 내 이같이 선을 명확히 긋기 어려운 편법 사전선거 행위가 많다.
#장면 넷-많이 활용하는 '기부', 적발수도 많아
전남의 한 수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는 지역 축제추진위원회에 후원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건네고, 축제위원장은 대형 전광판에 이 사람의 후원 내역을 공개했다가 함께 경찰에 고발됐다.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뿌리는 경우다.
조합장 선거가 지역의 이웃을 뽑는다는 특성을 지녀 조합장 예비후보와 옆에서 돕는 이들이 선거법에 무지해서 적발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반적인 사례이지만 조합장으로선 억울한 측면도 있다.
불법 기부 행위는 액수와 상관 없이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선관위는 기부행위 위반 사례가 줄지 않자 17일부터 특별단속에 들어간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에 따르면 '조합장 임기만료일 전 180일(지난해 9월 21일)부터 선거일(3월 8일)까지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 후보자의 배우자, 후보자가 속한 기관·단체·시설은 선거인이나 그 가족에게 기부 행위를 할 수 없으며, 누구든지 후보자를 위해 기부 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기부 행위 제한기간 중 후보자를 위해 기부 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 즉, 후보자 이름을 밝히고 기부 하거나 후보자 기부로 추정 가능한 방법으로 기부 하는 것은 후보자를 위한 기부 행위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장면 다섯-명절 인사 현수막 '꼼수 문구'로 사전 선거
경남 진주의 60대 B 씨는 이달 초 문산읍을 지나다가 중학교 동기의 이름이 적힌 '설 인사' 현수막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B 씨의 동기는 오래 전에 조합장을 역임했었고, 이번에 조합장 선거에 나올 것이란 소문이 나돈다.
또 다른 산림조합 대의원은 현수막에 자신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넣고서 정월대보름(2월 5일)을 잘 보내라며 1주일을 넘게 걸어놓았다. 14일 이내 철거를 하면 불법은 아니다.
이 같은 사례는 어느 지역에서나 허다하게 있다. 현직 조합장이나 예비 출마자인 대의원들이 내건 명절 현수막이 길게는 20일 넘게 거리에 걸려있다. 자신을 알리려는 꼼수 현수막이란 지적이다.
농협의 관계자는 "평소에는 그런 현수막을 달지 않다가 선거에 나오려니 저런 식으로 거는 것 아니냐. 사전선거 운동 같은데 합법이라니 다소 생소하다"고 말했다.
조합장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2주간이다. 이 기간 전에 선거 운동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명절인사 현수막은 오래 걸어 두어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지난해 12월 11일 시행된 옥외광고물법과 이에 따른 시행령이 개정돼 각 정당은 정책이나 현안, 일상 활동 등의 현수막에 정당의 연락처와 표시 기간을 명시해 걸 수 있다. 14일 이내에 한하며 조합장 선거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선관위는 명절 인사 현수막을 사전 선거운동으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울산시선거관리위 관계자는 "의례적인 명절 인사가 아니라 경력을 지나치게 많이 넣거나 본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현수막 내용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장면 여섯-점 조직, 뭐니 뭐니 해도 은밀한 만남
여느 선거에서도 금품과 기부 행위는 발견되지만 조합원 선거는 '마을 선거' '안면 선거'란 말처럼 지역 선거의 성격이 커 '점조직'으로 움직인다.
점조직은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얽힌 조합장 선거에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반 공직선거와 달리 조합장 선거는 후보자와 조합원 간의 친분이 두터워 은밀하게 돈과 현물이 오가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적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조합장 위탁선거법(선관위에 위탁)에 장외 연설이나 방송 토론회 등을 할 수 없어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식의 선거전이 주류다. 최근의 조합장 선거운동 흐름이다.
조합장 선거를 두고 금품 향응선거, 즉 '돈선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다. 토론 등이 제한돼 있으니 개별적으로 만나고,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매표 행위가 생긴다.
진주시의 60대 한 조합원은 "시골에는 나이가 드신 분이 많아 선거 봉투 등을 받아도 신고를 안 한다. 돈을 주고 받는 선거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한편으론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과의 친밀도와 화합성 중시 분위기다. 평소에 조합원들의 집안 대소사를 챙긴다. 가족이 나서 돕는 경우도 있다.
# 향응 등 기타 사례
향응 위반 사례로는 서울의 현직 조합장인 입후보 예정자가 조합 이사회가 끝난 뒤 임직원과 그 배우자에게 416만원 상당의 저녁 식사와 97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해 고발된 경우가 있다.
서울에서는 또 후보자로부터 12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 받은 조합원 5명에게 총 500만원(1인당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 후보자로부터 시가 7000원 상당의 콩기름 1세트를 받아 35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은 사례도 있다.
전북의 한 조합장은 조합원 경조사에 축·부의금을 내면서 조합 경비임을 밝히지 않거나 본인 명의로 제공하는 등 2600만원 상당(500여 건)의 축·부의금을 낸 혐의로 고발됐다.
경남도선거관리위는 최근 조합원 등에게 현금과 음료를 제공한 혐의로 조합장 입후보예정자 A씨와 조합원 B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두 사람은 공모해 이달 초순 조합원 13명의 집을 방문하면서 공약을 언급하거나 지지를 호소하고, 조합원과 그 가족 7명에게 총 210만원의 현금과 총 9만원 상당의 음료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경남도선관위 관계자는 "4년마다 하는 선거이지만 불·탈법 행위는 많이 줄어든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통적인 불법선거 방식이 적발된다"면서 "조합장 선거는 예비후보자는 물론 유권자인 조합원들도 선거법 상식을 더 인지해야만 불법 사례가 더 줄어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은밀하게 돈을 건네고 받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 조합장 선거법 위반과 처벌 상식
선관위는 이번 선거 때부터 신고 포상금도 최대 3억원(이전에는 1억원)으로 높였다.
또 조합장 선거가 임박해짐에 따라 위법 행위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단속 활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돈 선거' 발생이 우려되는 특별관리지역에 단속 인력을 상주시키고 휴일·야간 등 취약 시간에도 상시 신고 체계를 갖추었다.
선관위는 "후보 등록을 앞두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에게도 자진신고를 당부했다. 특히 돈 선거 근절을 위한 조합원의 적극적인 신고·제보(1390)를 당부했다.
하지만 현직 조합장의 판공비성 선물은 선관위 등에서 걸려도 대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물에 조합장 개인 이름만이 아닌 조합 명의에다가 조합장 이름을 기입하면 된다. 현직 조합장이 선거에서 훨씬 유리한 대목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탈법 행위가 비집고 들어 설 여지가 많다.
한편 3월 8일에는 전국 1346개 농축협·수협·산림조합의 조합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투표소만 3551개에 달하는 전국 선거다. 4년 임기의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전국 선거는 2015년과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조합장은 1억원 정도의 고액 연봉을 받고, 조합원의 정기적인 선물 등 많게는 1억원 정도까지 판공비성 업무 추진비를 쓸 수 있다. 또 운전 기사가 딸린 전용 차량도 제공받을뿐 아니라 조합 직원의 인사권까지 갖고 있는 막강 권한을 가졌다.
▶다음 세 번째 기사에서는 '왜 조합장에 목숨 거나'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