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지요.
기자는 종교를 갖지 않지만 중년을 넘기면서 한국 고유의 문화가 살갑게 와닿습니다. 여러 종교에도 각기 문화가 있지만 '천년 불교'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꽤 연관이 있습니다.
스님, 특히 큰스님을 생각하면 큼지막한 지팡이가 떠오르지요. 오늘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있은 부처님오신날 봉축기념식에서 방장스님이 큰 지팡이를 들고 바닥에 3번 내리치더군요. 어떤 의미를 지닌 지팡이일까요?
합천 해인사 방장스님인 원각스님이 법문에 앞서 주장자를 바닥으로 내리치고 있다. 해인사TV 캡처
이를 '주장자(住杖子)'라고 합니다. 큰 틀에서 석장(錫杖)이라고 하고요. 석장에는 실내용인 주장자와 외출용인 육환장(六環杖)이 있다고 합니다.
큰스님이 법당 중앙의 법좌 위에서 하는 '상당법어'나 일반 법회에서 '설법'을 할 때 주장자를 바닥에 치거나 높이 들어보입니다.
사찰, 즉 선가(禪家)에서는 깨우침을 독려하기 위해 주장자로 제자를 때리기도 하고 말없이 들어 보이기도 하는데 깨달음의 경지를 일깨우는 '말없는 경지의 표시'로 여깁니다. 해인사 방장스님은 이날 법문에 앞서 3번을, 끝내고선 또 한 번을 내리치더군요.
스님들이 참선 때 흐트러짐을 추스르기 위해 때리는 대나무로 만든 죽비(竹篦)와는 다릅니다.
법문(法門·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는 문, 즉 부처의 교법)을 할 때 법상(法床)에 올라가 주장자를 "꽝" 하고 내려치는 순간, 무명의 어두움이 걷히고 중생들은 한순간 어둠에서 벗어나는 빛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이 소리는 '지혜의 소리'이자 일체의 '삿됨을 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주장자의 일화도 있습니다.
유명한 고승인 경봉스님(1892~1982년)은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3번 치고서 이르기를 "주장자 머리에 눈이 있는데 밝기가 태양과 같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 필요없다'고 했으니 사부대중(스님과 신도)은 무엇으로 이 도인을 대하겠는가"라고 했답니다.
주장자는 이렇듯 대선사와는 '둘이 아닌 하나'요, '법문의 주요한 도구'였습니다.
한편 육환장(六環杖·승려가 짚는 고리가 6개 달린 지팡이)은 길을 걸을 때 몸을 의지하거나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지
팡이의 머리는 탑 모양으로 만들어 큰 고리를 끼웠고, 큰 고리에는 작은 고리 여러 개를 달아 길을 갈 때에 땅에 짚으면 고리가 부딪히는 소리를 냅니다.
짐승이나 벌레 등을 일깨우기 위함인데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