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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에 전국 최초 경찰승전기념관 건립됐다

전국 최초 6·25전쟁 당시 경찰의 활약상 조명
함안방어전투 당시 경찰 역할 및 유물 등 전시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6.23 21:07 | 최종 수정 2023.06.29 18:46 의견 0

경남도경찰청은 23일 오후 2시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에서 함안경찰승전기념관 준공식을 가졌다.

함안경찰승전기념관 준공은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했던 6·25전쟁 때 함안방어전투에서의 경찰 활약상과 호국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준공식에는 김병수 경남도경찰청장, 조근제 함안군수, 최종문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최만림 경남도 행정부지사, 김종술 경남동부보훈지청장 및 김용인 대한민국재향경우회장, 김을노 6·25참전경찰국가유공자회 고문 및 오정탁 회장, 한춘도 경남도재향경우회장, 조문규 함안경우회장 등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23일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에 준공된 함안경찰승전기념관 모습

함안경찰승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경찰의 활약상을 조명한 전국 최초의 기념관이다.

경찰은 전국 각지에서 열악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화랑부대'라는 이름으로 인천상륙작전 및 장진호 전투 참여 등 큰 활약을 했으며 함안 방어전투에서도 미 제25사단과 함께 함안 지역을 수호했었다.

6·25전쟁 당시 산청경찰서 소속으로 대산지구 전투(구혜고지)에 참전한 김을노 선생은 그동안 함안지구 전투에서 경찰관의 활약상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산지구전투(구혜고지)에 참전한 김을노 선생이 전투 공적으로 받은 표창장

이 승전기념관을 설립하기 위해 지난 2019년 7월 12일 함안군 및 함안경찰서, 경남도경찰청 가 TF를 구성해 예산 확보, 기념관 부지 매입, 전시 자료 수집을 했다.

승전기념관은 사업비 11억 6300만 원을 들여 연면적 99.39㎡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해 7월 13일 착공해 1년 정도의 공사 끝에 준공됐다. 바로 옆에는 지난 2011년 건립된 6·25전쟁 경찰승전탑이 있다.

승전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함안지구전투 경찰의 활약상 및 참전 경찰관의 수기, 인터뷰 영상을 전시한다. 특별전시 자료로 경남도경찰청에서 소장 중인 유엔종군기장 수여 대상자 조사 명부 및 참전 경찰관(고 김경덕 경감) 수기 등 9점을 전시한다.

유엔종군기장 수여 대상자 조사 명부는 1957년 유엔군 사령부에서 생산한 기록물이다. 6·25전쟁 기간에 유엔군에 배속돼 활동한 경찰관에게 준 유엔종군기장 수여자의 소속, 계급, 성명, 참전 지역, 배속 기간 등이 기재돼 있다.

고 김경덕 경감은 1950년 8~9월 함안경찰서 대산지서에서 근무하면서 구혜고지 전투 및 칠원 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축사에서 “함안경찰승전기념관이 구국 경찰의 고결한 삶과 기백이 일상에서 추모되는 기억의 공간이자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 할 것이며 선배들께서 보여준 구국 정신에 발맞춰 국민이 신뢰하는 안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함안경찰승전기념관 준공 이후 현재 운영 중인 경찰역사순례길 코스에 함안경찰승전기념관을 추가하고, 신임 경찰관 임용시 기념관을 참배토록 하는 등 참전 경찰의 활약상 및 희생 정신을 함양하도록 할 예정이다.

□ 6·25전쟁 당시 함안지구 전투 상황

함안지구 방어전투는 1950년 8월 북한군 제6사단이 경남 마산과 부산을 점령할 목적으로 호남을 우회해 함안을 공격하면서 발발했다.

1950년 8월 국군은 낙동강 중부 전선 및 영천·안강 일대의 방어에 집중해 있어 함안에는 미군 및 경찰 외에는 방어 병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북 상주에서 마산 방면으로 이동한 미 제25사단 및 전북·전남·경남 경찰국 소속 경찰관 6800여명이 서북산 일대와 대산 및 법수면 등 함안 전역에서 1950년 8월 초에서 9월 중순까지 북한군과 맞서 함안을 수호한 전투였다.

6·25전쟁 때 미군에 배속돼 참전한 경찰관 모습. 고 조영철 선생이 기증한 사진이다.

함안방어 전투의 주 전투지였던 서북산지구는 함안 십이당산~여항산~서북산~야반산~옥녀봉을 잇는 아군의 주 방어선을 중심으로, 1950년 8월부터 인천상륙작전 전후 때까지 미 제25사단 및 경찰부대가 북한군 제6사단의 공세에 맞서 교전을 한 곳이다.

1950년 8월 31일∼9월 1일 당시 함안 방어전투 상황도. 북한군 제6·7사단이 함안으로 총공세를 가해 아군이 이를 방어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소장한 '6·25전쟁사 5권-낙동강 방어작전'에 실려 있다. 이상 경남도경찰청 제공

전투 기간 중 고지의 주인이 19번씩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교전이 전개됐으며 전투 참상에 경악해 미군이 내뱉은 욕설이 변해 '갓데미산'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제24연대 병력과 함께 고지 사수에 참여했으며 특히 북한군 제6사단 제15연대장을 생포했다가 도주하자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대산지구에서는 정원조 경위 등 경찰관 58명과 미군 30여 명이 1950년 8월 31일 밤 의령 방면에서 남강을 도하해 대산 방면으로 진격을 기도한 북한군 제7사단 1000여명의 병력에 맞서 구혜고지에서 9시간 여의 방어전 끝에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적 200여 명을 사살하고 무기 370여 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이 전투의 승리를 가리켜 ”세계 전투사에 없는 경찰의 승리“고 격찬했었다.

이처럼 함안 방어 전투는 국군의 부재 속에서 경찰은 열악한 무기를 가지고 미군과 합동으로 목숨을 바쳐 함안을 수호한 전투였다.

그러나 전투의 주역이었던 미 제25사단이 본국으로 귀환한 후 전투에 참여한 경찰관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그 활약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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