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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 민심] '베르테르 효과'와 '하인리히 법칙' 그리고 '묻지마 흉기 난동'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8.04 19:01 | 최종 수정 2023.08.05 20:17 의견 0

사회가 참으로 어수선하다.

오랜 장마로 인한 폭우로 수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데 이어 폭염이 기를 다 빼놓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극한 폭염'에 모두가 스트레스를 한 짐씩 지고 사는 한여름이 돼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제(3일) 오후엔 경기 성남시 서현역사 AK플라자(백화점)에서 20대 초반 남성이 차량을 인도로 돌진한 뒤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중상자를 냈다. 여성 두 명은 중태다. 이 사건의 20대 초반 혐의자는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흉기 난동' 예고 글을 모아 주의를 요구하는 글. 불안 심리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란 게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 자살을 한 뒤 자살자가 늘어난다는 현상이다.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 죽으면 자신을 이들과 동일시해 동반 자살한다.

베르테르 효과는 1774년 출간된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됐다.

이 책의 내용은 당대의 인습과 귀족사회의 통념에 반대하는 젊은 지식인의 우울과 열정을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우울증 전염'을 시키고 자살을 유도한다는 오명을 얻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당시엔 이른바 '베르테르 열병' 현상을 낳았다. 많은 청년이 소설에 묘사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했고 심지어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도 이어졌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이를 두고 유명인이 자살한 뒤 그것을 모방한 자살이 확산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로 이름붙였다.

▶재해와 관련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있다.

큰 재해는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지속 일어난 이후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300대 29대 1, 이른바 300개의 작은 것이 이어지고 이어 좀 더 큰 29개가 발생하고, 드디어 엄청난 재해가 터진다는 통계 법칙이다.

말인즉슨 재해에서는 전조가 보인다는 말이다.

이 법칙은 미국 산업안전 선구자였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1885~1962년)가 1931년에 쓴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란 책에서 소개됐다.

기자는 이번 '성남 흉기 난동'을 접하면서 이 두가지의 이론과 법칙이 떠올랐다.

범죄 전문가들은 잇단 '흉기 살해' 협박의 글이 모방 범죄란 지적을 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의 '자살'과 내용은 다르지만 모방이란 면에선 지금의 흉기 살해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역(7월 21일) 흉기 난동으로 한 명이 목숨을 잃은데 불과 13일만에 경기 성남 서현역에서 비슷한 난동으로 14명이 피해를 입었다.

큰 재해 발생에서 사전에 전조가 보인다는 하인리히 법칙도 '흉기 난동 및 살해'에 충분히 원용 가능한 법칙이다.

이 두 이론을 그대로 이 흉기 사건에 대입하기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모방'과 '전조'란 점에서 생소한 것은 아니다.

기자가 하고픈 말은 '나쁜 것을 배운다'는 모방이다.

잇단 '흉기 난동'은 물론 '흉기 살해 글'을 써대는 이들은 지금까진 대체로 20대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기성 세대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배웠을까?

우리 사회는 그간 자유, 평등, 분배, 민주 등 공조직보다는 개인의 가치에 기반한 '공평'에 상당한 신경을 써왔다. 이로 인한 개인의 인권 신장은 괄목할만큼 신장됐다.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 사회도 서구 사회처럼 합리적인 분위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켜 고운 양탄자처럼 깔리는 느낌을 가진 지도 오래됐다.

지금의 20~30대보다 한 세대 위의 세대가 자랐던 권위주의 시대(1960~1970년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이런 인격의 보편화 과정에서도 "니(너)가 뭔데"라는 의식의 싹도 음지와 양지에서 커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불평불만을 자양분으로 몸집을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이는 '욱하는' 성질과 연결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몸이든 정신이든, 개인이든 사회든 건강해야 같이 사는 주위도 편안하고 건강해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면이 분명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이해 관계로 어떤 것이든 이분화 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골몰해 왔다.

정치인은 이를 '정치 이념'으로 악용했다. 국회는 대의 민주주의 꽃이라는 '합의'는 내팽개친 채 '극한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 지 잘난 맛의 '아편족'이 된 지 오래다. 견디기 힘든 '극한 폭우'와 '극한 폭염'보다 더하다.

어떤 초선 정치인은 초선 의원 때 국회에서 대통령의 나체 사진전을 열고서도 지금 버젓이 지상파 방송에서 연일 이 사회에 대해 지청구를 하고 있다. 그 정치인이 나타나는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참 뻔뻔스럽다는 생각을 맨날 한다. 어떤 방송인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연일 사실과 다른 것을 내놓고 '냄새 난다'거나 '의혹이 있다'며 선전선동을 해댄다. 이 말은 항시 하루도 안 돼 들통이 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몰염치 사회다.

생업에 바쁜 일반 국민들은 여기, 이 선동 분위기에 스멸스멸 물들어져 왔다.

히틀러의 나치 체제의 선전 장관이자 선동가 였던 괴벨스는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반박 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을 당해 있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실제 방송인 김어준 씨와 같은 이는 이를 수시로 써먹고 있다.

담임 선생에게 대놓고 야단을 치는 엄마를 눈 껌벅껌벅 하며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명문대 출신 수재였던 우리 엄마가 학교 담임 선생보다 몇 배가 나아보인다.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들은 이들 장면을 당연히 배운다. 이미 들으면서, 보면서 배워왔다.

이러다 보니 이 사회의 긍정면보다 부정적인 곳을 애써 찾아 불평불만을 토해 놓는다. 옆의 친구들도 맞장구를 친다.

전염과 부패는 사정이 나쁜 곳에서 강해진다.

쌍심지를 켜고 다투는 기성세대의 주의주장을 해보니 자신도 자존이 강해지는 듯하고, 자신의 영역도 보인다. 이렇게 극대 극의 사회 분위기가 독버섯처럼 자란 게 아닌가 싶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흉기 난동과 이를 조장하는 글이 잇따르자 오늘(4일) '뭇지마 범죄'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했다. '뭇지마 범죄'='모방 범죄'로 봐도 틀린 공식은 아니다.

윤 청장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극도로 높은 가운데 유사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매우 엄중하고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 누구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테러행위'와 같다"고 밝혔다.

2023년 한여름 대한민국에서 누구에게나 와닿는 말이다.

심히 불안하다.

길을 걷다 보면 뒤에서 누군가 내려칠 듯한 느낌까지도 든다. 누군가는 군대서 주로 쓰는 단어인 사주경계를 하기 위해 이어폰을 안 낀다고 했다.

세상이 이렇게 됐다.

윤 청장도 같은 말을 한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모방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이며 국민들은 길거리에 나오는 것 자체에 공포감을 가질 정도"라고 했다.

한 음식점에서 노년층은 "푹푹 찌는 폭염에 몸이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좋겠다. 정신이 맑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자는 당분간, 선선한 가을이 올 때까지 자주 가는 식당 마실을 줄일 생각이다. 정치 이야기라도 나오기라도 하면 주장이 부닥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범죄 전문가를 찾기보다 '기성세대의 행실'부터 고쳐야 하겠다. 곯을대로 곯은 우리 사회의 이런 환부들을 빨리 도려내야 한다.

성남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보고 기자는 지인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폭염에 몸이 주체가 안 되고, 뇌세포가 화를 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속되는 무더위 속에 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잦아졌다. 사회가 보다 건강하면 이런 범죄도 줄어들게 된다'

위험해진 사회에 자연 재해도 겹쳐졌다. 우선 내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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