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 붙이기 귀찮아 100엔으로 통일했지"···실속형 저가매장 일본 '다이소' 창업주 별세
천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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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 23:41 | 최종 수정 2024.02.2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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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저가 유통업체인 다이소(大創)를 창업한 야노 히로타케(矢野博才) 전 다이소산업 회장이 지난 12일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중국에서 99엔짜리 물건을 들여와 100엔에 팔면 1엔이 남는다'는 일념으로 저가 유통시장을 다잡았다.
19일 일본 공영방송 NHK 등 일본 언론매체에 따르면, 야노 전 회장은 12일 오전 히로시마현 자택에서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일본이 세계 2차대전에서 패하자 가족과 함께 고향 히로시마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결혼 후 처가의 방어 양식업을 물려받았으나 3년 만에 부도가 나 형제들에게 700만 엔의 빚을 지고 야반도주했다.
이어 1972년 트럭에 생활용품을 싣고 다니며 파는 ‘야노상점’을 차려 도산한 기업의 재고 상품을 헐값에 매입해 싸게 팔았다.
그런데 바쁘다 보니 물건마다 일일이 가격표를 붙이기가 어려워졌다. 궁리 끝에 일괄 100엔으로 맞춰 팔았다. 경기 불황기 때면 긱광을 받아온 '100엔숍(1000원 가게)'이 시작된 것이다.
이 박리다매 전략이 먹히면서 1970년대 석유파동 때 다른 업체들이 문을 닫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1977년 회사 이름을 ‘다이소산업’으로 바꾸고 법인화했다.
이어 야노 전 회장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일본 주부들의 불평을 반영해 품질을 공급하려고 했다. 제품 매입가를 98엔까지 올려 100엔으로 가능한 최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하고 마진은 최소화한 전략이었다.
애초 다이소는 행상인들끼리 특정 장소를 하루 정도 빌려 물건을 파는 형태였다.
직영 매장은 1991년 설립했다. 이때는 일본이 ‘버블 경제’로 극심한 불황 국면을 맞는 시기였으나 반대로 다이소에는 성장 기회였다. 손님들이 실속형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100엔숍으로 몰렸다.
이 분위기에 일본 전역에 다이소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19년엔 일본에 약 3300개, 해외 26개국에 2000개 점포를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야노 전 회장은 2017년까지 다이소를 직접 경영했다. 1년 후인 2018년 3월 부사장이었던 차남에게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노 전 회장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업계 관계자 등을 초청하는 추모 행사는 따로 열 예정이다.
한편 지금 한국 유통시장에서 가장 핫한 매장 다이소는 2001년 상호에 ‘다이소’를 붙이고 일본 다이소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았다. 아성산업에 지분 34%를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아성다이소의 최대주주인 아성HMP는 지난해 12월 일본 본사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며 지금은 100% 한국 기업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요즘 한국에서는 다이소 제품 붐이 일고 있다. 상품들도 품질 좋은 실속형으로 채워 '젊은층의 쇼핑 성지'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