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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골목을 걷다] 경남 진주시 경전선 옛 진성역~옛 반성역 간의 '장곡터널'···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함이 매력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3.29 15:58 | 최종 수정 2024.04.22 03:39 의견 0

더경남뉴스가 '길, 골목을 걷다'를 연재합니다. 부울경의 곳곳에서 후미져 있거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길을 찾아나섭니다. 길이 쌓아온 세월을 반추 하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엔 경남 진주시 진성면 상촌리에서 진성면 천곡리 간에 있는 장곡터널을 찾았습니다. 장곡터널은 경전선 복선화사업으로 이곳을 지나던 철도가 폐선되면서 개설한 자전거도로에 위치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천곡터널로 통칭돼 장곡터널이라면 모르는 주민이 많았습니다.

지난 2022년 7월 진성면 구천리~문산면 삼곡리 간의 와구터널을 소개했는데 와구터널보다 터널 안의 조명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 분위기는 한층 은은했습니다.

경전선 폐선 자전거도로 현황. 진주시

▶와구터널~구천마을~구천사~장곡터널

진주~옛 진성간이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옛 반성역 10여 분을 달리면 장곡터널이 나옵니다. 그 이전에 폐선된 경전선의 옛 진성간이역 이 나오고 간이역 왼쪽 안으로 산자락 끝에 자리한 구천마을이 다소곳이 자리합니다. 30가구 정도 삽니다.

자전거길에서 본 구천마을 앞 들녘. 왼쪽에 자전거길과 차량이 오가는 지방도로가 지난다.

이 마을에는 수 십년 전 철도교통이 교통 중심축 역할을 할 땐 200가구 정도가 살아 진성면에서 최고 번잡한 마을이었고 부자마을로 이야기 됐습니다. 도가(양조장)와 작은 농협이 있었는데 지금도 폐가 형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을 어르신에 따르면 마을 입구에 있는 진성역 근처는 열차를 타러 오는 주민들로 제법 번잡했답니다. 지금은 폐가와 공터로 변했지만 양복점도 있었고, 선로보선소도 있어 제법 도회지 분위기가 났었던 곳이었고요.

막걸리 도가(양조장)와 단위농협으로 쓰였던 구천마을 입구 건물. 지금은 이 마을에 2층집이 더러 있지만 한동안 이 2층집이 유일했다. 건물 아래는 이발관을 했다. 양철로 만든 2층 창문을 들어올려 나무 등으로 받치고 했다고 전한다.

이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 1~2분 달리면 왼쪽으론 진성초교가 조금 멀리 보입니다. 이곳도 진성면사무소, 진성지소가 초교와 함께 있어 북적북적 했었답니다.

자전거길에서 본 교동마을 전경. 오른쪽에 진성학교가 보인다. 학교 정문 옆엔 진성면사무소가 있었고, 사진 맨 왼쪽엔 진성지소가 있었다. 지금은 학교만 남고 진성삼거리로 모두 옮겨졌다.

오른쪽엔 10여 가구가 살던 망날이란 마을 터가 있었는데 모두 이사를 가 마을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거북이 모양의 산 목을 잘라 기찻길을 만들었습니다. 일설에는 일제가 산세의 기를 잘라 바로 아래 마울이 망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망날로 불립니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샛길로 나가면 구천사가 나옵니다. 절이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답니다. 사찰 입구에 삼성각(三聖閣) 불사(佛事·불가에서 행하는 일) 중이란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삼성각은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봉안하는 불교 건축물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 비슷합니다. 규모는 대웅전보다 훨씬 작습니다.

구천사 전경. 대웅전만 덩그렇게 있지만 건물은 하나씩 지어가는 듯하다.

삼성각 불사(佛事·불가에서 행하는 일)을 한다는 현수막인데 곧 건물을 지울 참인 모양이다.

사찰 초입엔 작은 소류지가 있는데 바로 아래에 김해 김수로왕 후손들의 공동묘원이 있어 특이합니다. 김해 김씨의 삼현파 시조인 득수공 종중(宗中) 묘원입니다.

마을의 한 주민은 "초등학교가 있는 교동마을에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고, 조상들을 한곳으로 모았다"고 전했습니다.

김해 김씨의 삼현파 시조인 득수공 종중(宗中) 묘원 표지석

김해 김씨의 삼현파 시조인 득수공 종중(宗中) 묘원

▶진성에서 들어서는 장곡터널

구천사를 나와 다시 자전거길을 나섰습니다. 인기척 하나 없는 아주 호젓한 분위기인데 아직 늦봄이라 도로변엔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산골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벌써 장곡터널이 보입니다.

자전거길 저 멀리 장곡터널 입구가 보인다. 옛 진성간이역이 있던 구천마을 앞을 지나 이곳까지 호젓한 분위기다.

터널 입구가 드러난다.

여느 기찻길 터널처럼 터널을 낼 때 파고 깬 흔적이 다가선다. 돌언덕엔 칡넝쿨 등지난 여름 내 자란 잡초들이 말라 회색을 띠고 있다. 애들이나 여성들은 어두운 터널을 들어가기전 오싹함을 더 느껴질만하다.

터널 입구가 다가오면 터널 양면엔 터널공사의 켜가 스며있는 바위가 드러난다. 터널을 만든 자국, 즉 흔적이다. 일제강점기에 동원주민둘의 고된 노동이 다가서 애절하다.

바짝 다가선 장곡터널 입구다.

터널 입구 절벽 옆으론 물길을 내놓았다. 터널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서 흘러내리도록 시멘트 절벽을 만들었다.

장곡터널 정면 모습. 터널이 사진상으론 직선으로 보이지만 곡선 터널이다.

한 라이너가 반성 쪽에서 진성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나오고 있다. 이 구간엔 라이너가 많지 않다.

▶터널 안

구운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간 터널은 곡선이고 길지는 않다. 터널 안의 조명은 은은하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화려하지 않다. 여느 기찻길 터널이 그렇듯 안쪽엔 선로작업을 하는 작업 인부 등이 피하도록 벽을 파서 공간을 만들었다. 100년 전에 이런 배려를 했다는 게 꽤 의미있게 와닿는다.

터널 입구를 조금 들어서니 곡선 형태가 드러난다. 터널이 길지 않아 터널 끝이 환하다.

터널 안의 피신처. 선로 반원이나 터널을 지나던 사람이 기차 소리가 나면 피할 수 있다. 이 터널엔 한쪽으로 3개가 설치돼 있었다.

짐을 든 사람이 서 있어도 지나는 기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넓다.

형광 이정표

붉은 벽돌을 아주 섬세하게 쌓은 모습. 참으로 야무지게 쌓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천장 조명. 터널 안의 거무튀튀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린 느낌으로 은은해 보인다.

터널 전체 모습. 터널 자체 분이기를 잘 살려 외려 오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터널 길이가 128m인 듯하다. 비상구란 터널 입구를 뜻한다.

두 번째 피신처

터널 출구가 멀지 않은데 세 번째 피신처를 만들어놓았다.

터널을 빠져나왔다. 진성면을 지난 반성면으로 들어선다.

▶반성쪽에서 본 터널 모습

터널을 나와 옛 반성역 쪽으로 달리면 오른쪽에 또 하나의 소류지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자전거 기수를 돌려 장곡터널을 다시 살펴봤다.

반성쪽에서 터널을 되돌아본 모습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흘려내리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물길. 오랜 세월에 무너지고 있다. 자전거길이 만들어졌으니 빨리 고쳐야 하겠다.

연노랑색 터널 안과 곡괭이 등으로 쪼갠 바위 흔적. 이 터널을 뚫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라이딩을 하다가도 고마움을 표해야 하겠다.

터널에서 반성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나오는 소류지. 자전거길은 비탈지다.

소류지에서 되돌아 반성쪽에서 진성쪽으로 가는 자전거길. 터널이 보인다.

은색빛 터널 안. 화려하진 않은데 참으로 은은하다.

다시 진성쪽 터널 앞이다.

간간이 라이너를 만난다.

이 라이너의 뒷모습을 찍으며 이날 취재 일정을 마쳤다. 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잊으려면 이 자전거길을 권한다. 이상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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