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은 더위가 멈춘다는 처서입니다. 24절기 중 14번째 절기인데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있고 보통 8월 22~23일 전후에 듭니다.
처서 절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최악의 폭염 해로 기록됐던 지난 2018년보다 훨씬 더 덥습니다.
부산의 열대야가 지난 21일 밤 최장 26일만에 끝났습니다. 이는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연속 열대야 일수'로 역대 최장 기록입니다. 앞서 부산의 역대 최장 열대야 지속일수는 21일(1994년·2018년)이었지요.
한여름 내내 울어대 짐짓 서럽게도 느껴지던 매미 소리도 뜸해지고 그 자리를 가을 전령사인 귀뚜라미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엔 공기가 선선해져 모기와 파리가 사라졌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부터 처서는 땅에선 귀뚜라미의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선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사(高麗史)는 '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삼분하는데 첫 5일 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고 적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논두렁 풀을 베거나 산소에 벌초를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윤달이 추석이 한달 이상 남아 벌초는 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옛날엔 이 무렵 선비들이 여름 장마철에 눅눅해진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란 풍습이 있었고, 부인들이 여름 장마에 젖은 옷을 음지에서 말리는 '음건(陰乾·그늘 말림)'도 비슷한 풍습도 있었습니다.
선비들은 책을, 여인들은 집안 살림살이를 챙기는 풍습입니다.
농업사회 땐 비교적 한가한 시기입니다.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세벌 김매기 후 쉬는 날)의 호미씻이(洗鋤宴·세서연) 행사가 있는데 호미씻이란 '농가에서 농사일, 특히 논매기를 끝낸 음력 7월쯤 날을 받아 하루를 즐겁게 노는 일'입니다.
이 시기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데 무척 중요해 처서에는 농산물 소출과 관련한 속담과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농사로 점을 치는 농점(農占)도 다양했습니다.
햇살은 좋아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벼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 벼가 잘 익기 때문입니다.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란 속담은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씁니다. 처서 무렵에 벼가 많이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맑은 바람과 쨍쨍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리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쉽기 때문입니다.
처서 절기엔 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늘 진주에는 폭염 속에 간간이 스콜성 소나기가 퍼붓습니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곡식이 익는데는 썩 좋지 않습니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안에 천석이 감해지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안에 백석을 감한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익어가는 처서를 전후해 비가 내리면 혼사를 앞둔 자식들의 혼수 장만 걱정이 앞선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사 기법이 현대화 된 요즘은 맞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