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 경사가 아이건노. 경사란 말은 이럴 때 써야제"
지난 4일 오전, 경남 함양군 지리산 등산길 가는 길목인 마천초등학교(교장 이영애)에서는 오랜 만에 화사한 입학식이 열렸다. ‘2025학년도 시업식과 입학식’으로 명명한 이날 행사에는 근래 보기 어려웠던, 무려 7명의 입학 및 전입생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입학식장에는 유치원·초교 입학생과 전입생, 학부모, 축하 하려고 찾은 손님들이 행사 내내 흡족한 표정으로 학교 생활을 막 시작하는 꼬마들을 지켜보았다.
아직 줄을 서는 것도 어색한 어린 입학생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고 있다.
함양군 마천초교 위치도. 네이버 지도
이날 마천초교엔 초교 1학년 신입생 2명과 병설유치원 신입생 3명이 입학했다. 여기에 초교 3학년 2명도 전입했다. 모두 합해 7명의 학생이 이른바 마천초교생이 됐다.
학령 인구 감소가 우리 사회 최고의 해결 과제로 자리하고 있어 마천초교에서는 '붐빈' 이날의 입학식이 더없이 뜻깊은 행사가 됐다. 마천면의 현재 인구는 1984명으로, 여느 농촌학교와 다름없는 전형적인 산골이다. 함양읍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야만 도착하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다.
이런 여건으로 마천초교는 올해 입학생이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입학할 학령인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의 어느 학교나 겪는 일이지만 지역이나 학교나 말 그대로 절박했다.
한때 마천면에는 3개 초교(마천·등구·의탄 초교)가 있었지만 곳곳에 빈집이 늘면서 두 학교가 마천초교로 통합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해 입학생은 최고 5명에 그치는 등 학년별 학생 채우기가 어려웠다. 이날 어렵사리 두 명이 전입했지만 그동안 3학년생은 단 한 명도 없어 학년이 단절됐었다.
현재 마천초교는 올해 입학한 1학년 2명을 비롯해 2학년 5명, 3학년 2명, 4학년 2명, 5학년 4명, 6학년 4명이다. 전교생은 19명이다.
이날 입학식에는 오랜만의 '대규모 입학' 때문이어선지 많은 축하객이 참석해 마천초교를 함께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어린 학생을 정성껏 축하했다.
마천면 기관장과 이장들을 비롯한 30여 명의 내빈과 20여 명의 학부모 등 근래 보기 드물게 100여 명이 참석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동네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외국 속담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마천면사무소 김종화 민원담당(팀장)은 더경남뉴스에 "정부가 진행하는 '작은학교살리기사업' 덕분에 이 같은 성과를 얻었다"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예상 입학생이 하나도 없어 걱정을 하다가 협회 등 지역 단체와 면사무소가 학교와 합심해 이런 성과를 거둬 더 보람되고 기쁘다"고 했다.
마천면사무소 등은 이들을 모으는 방안으로 임대가 가능한 빈집을 찾기로 하고 마천향우회 모임 '밴드'에 이를 공지해 6곳의 빈집을 확보했다. 이어 교육 목적이나 귀촌 의향 등이 있는 외지인 수소문에 나섰다.
김 팀장은 "이번에 전입한 가정들은 귀농·귀촌과 달리 오로지 자연 환경과 주거 조건이 좋은 지리산 근처에서 살고 싶은 분들로, 아이 교육만 생각한 분들"이라며 "다음 달에 한 가구가 더 들어와 올해 마천초교에 전입하는 학생은 총 9명이 된다"고 전했다. 마천면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전국에 잘 알려져 있다.
마천초교 입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 축하 내빈들이 큰 목소리로 입학을 축하하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입학식 순서는 여느 학교와 다름 없었지만, 행사 내내 이어지는 장면마다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입학식은 꼬마 신입생들의 입장식으로 시작됐다. 어린 주인공들의 입장을 손꼽아 기다리던 참석자들은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큰 박수로 환호했다. 도시 입학생과 달리 엄청난 귀인 대접을 받으면서 입장했다.
이어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입학 허가를 선언했다. 드디어 산 좋고 물 좋은 마천에서의 학창 생활이 시작된 순간이다. 이어 아이들을 하루종일 보살필 교직원과 담임교사의 자기 소개도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은 각자 학교 생활 계획 등을 제법 의젓하게 소개했다.
곧바로 2학년 선배(?)들의 입학 축하 격려사가 이어졌다.
격려사를 한 학생은 “유치원 때보다는 공부할 게 많지만, 그럴 땐 쉬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기도하면 된다”는 지루할 수 있는 학교 수업의 '맞춤 꿀팁'도 소개해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입학식에서는 입학을 축하하고 꿈과 희망을 키우며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라는 마음을 담은 장학금과 활동복, 학용품, 꽃화분이 선물로 전달됐다.
특히 각 초교 입학생에게는 마천면 원방장학회에서 300만 원과 마천초교에서 100만 원을 지원해 총 400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유치원 입학생에게도 원방장학회에서 100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김 팀장은 "마천 출신 독지가 한 분이 지역의 장학사업으로 10억 원을 희사해 장학재단을 만들었고, 여기에서 나오는 3천만 원 안팎의 이자액으로 초중등생과 대학생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은 입학생들이 장학금 금액을 쓴 손팻말을 들고 입학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영애 마천초교 교장(가운데)과 심평주 원방장학회 이사장이 함께 축하를 하고 있다.
입학식의 마지막 순서는 재학생 언니 오빠들의 축하무대로 장식됐다.
재학생들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우쿨렐레 연주와 함께 축하 노래를 부르며 어린 신입생들을 환영했다.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던 이날 입학식은 참석자 모두가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마무리됐다.
마천초교 입학생과 재학생 등이 함께 입학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상 함양군
김복수 함양군 마천면장은 “작은학교살리기사업을 통해 올해 초에만 12명이 전입하는 등 마천면의 인구 증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작은학교살리기사업을 더 적극 추진해 마천면의 활성화와 함양군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되겠다”고 밝혔다.
■ 이영애 마천초교 교장과의 통화 및 추가 사진
기사를 마무리한 뒤 마천초교 이영애 교장과 통화가 됐다.
내용을 따로 적시한 것은 그의 이력 또한 독특해서다. 이 교장의 말을 듣다보니 그의 마천초교와의 인연은 '운명'이란 단어를 차용해도 될 듯했다.
그는 경북 청도에서 자란 뒤 경남 진주교대를 졸업했다. 교대의 주가가 최고 수준을 달릴 때 학교를 다녔다. 올해로 아이들의 교육에 몸담은 지 34년째.
오지 마천행을 마음먹은 것은 경남 동부에 있는 김해의 한 초교 교장으로 있을 때였다.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로 온 이후 마천초교로 자원했다.
그는 지리산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엔 멀리 김해에서의 '흠모'가 지근 마천에서의 '사랑'으로 자리를 잡은 듯했다. 그는 지리산을 바라만 봐도 그냥 기분 좋단다. 가족과 같이 왔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김해에서 교사로 있고, 툴툴 털고서 홀로 왔다고 했다.
10년 전에 '궁금해 함양산'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을 이끌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지리산 산길과 둘레길 등을 트레킹 하고 있다.
이 교장은 학교 운영과 관련해선 "지역 주민 중심의 장학회가 활성화돼 외곽 지원의 장점이 있고, 학교에서도 이곳만의 특별한 환경을 접목해 방과후 학습을 짜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리산이란 둘도 없는,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절기(節氣) 교육'을 도입했다. 사시사철 자연의 변화를 오롯이 교육에 접목한 24절기 계절 교육으로 자연에서 배우는 감각예술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감히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모든 교육과정은 유럽 상류층 교육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발도르프 교육'을 접목시키고 있다. 이 교육법은 인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9년 독일에서 시작한 교육 방법으로, 아이들의 개인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교장은 "교육 결과를 예술로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과 과정 외에도 체육과 악기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정신과 몸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전인교육이다.
승마와 피아노는 물론 우쿨렐레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교육을 한다. 이날 재학생들이 후배 입학생들을 위해 연주한 우쿨렐레도 이 교육의 결과물이다.
마천초교는 현재 정규 교사는 물론 특수학급교사, 보건 및 영양교사 등 모두 26명의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돌보고 있다.
이 교장은 "도시 학생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완전한 1대 1 교육을 하고 있다"며 "올바른 지성과 감성을 기르고, 착한 인성을 갖추는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마천은 지리산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지리산처럼 맑고 순수하게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이 찾은 곳"이라며 "천혜의 자연을 최대한 접목한 교육에 힘쏟겠다"고 했다. 모든 교육을 '어머니의 산' 지리산처럼 온기 있는 정(情)으로 품고 아이들을 돌보겠다고도 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뜻이 자리를 하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나는 법이다.
산을 좋아하는 한 중년 교사의 특별한 '산사랑 교육'이 마천초교에서 화사한 봄꽃처럼 완성되기를 박수로 응원한다.
약식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영애 교장선생이 이날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이를 반갑게 맞으며 안면을 트고 있다.
함양 마천초교 학교운영위원장과 학부모 대표가 이날 1학년에 입학한 두 학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학생은 부모를 따라 강원 강릉에서, 남학생은 경기 오산에서 왔다.
이영애 마천초교 교장(한옥 입은 이)과 심평주 마천 원방장학회 이사장이 어린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입학을 축하하고 있다. 이상 이영애 마천초교 교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