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이를 유출한 것으로 특정된 전직 직원이 약 3000개 계정의 정보만 저장했다는 자체 발표를 하며 국가정보원 접촉을 언급하자 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부처와 기관들은 "쿠팡과 협의가 없었다"며 "사태 파장을 벗어나려는 물타기"라고 반박했다.
앞서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셀프 조사' 결과 발표 논란이 증폭되자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자백을 받아내고 기기를 회수했다고 해명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지금으로선 진위를 알 수 없어 진실 공방은 지속될 전망이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미국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가 지난 12월 17일 국회의 대규모 개인정보 사태 청문회에 나와 답변하고 있다. 국회방송
쿠팡은 지난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 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고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디지털 지문(digital fingerprints) 등 포렌식 증거를 활용해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특정했고 유출자는 행위 일체를 자백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어떤 기관과 공조를 논의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사태 진상 조사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쿠팡 사태 대응 범부처 태스크포스(TF)’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일방적 주장"이며 “국민들에게 혼란을 끼치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쿠팡은 정부와의 공조 진행 과정을 담은 약 2000자 분량의 입장문을 새로 내놓았다.
쿠팡은 이 입장문에서 “정부가 지난 9일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유출자를 처음 만났으며 16일에는 정보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 드라이브를 1차 회수해 정부에 제공했다”며 “정부의 감독 없이 독자적으로 조사했다는 건 잘못된 주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18일엔 포렌식 팀을 투입, 유출 고객 정보에 대한 중요한 사실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는 21일 쿠팡이 하드 드라이브, 노트북, 그리고 세 건의 진술서(지문 날인 포함)를 경찰에 제출하도록 허가했다. 수사 과정의 기밀을 유지하고 세부 조사사항에 대해 공개하지 말라는 정부의 지시를 철저히 준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쿠팡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재반박 했다. 경찰은 "노트북 등 증거를 임의 제출한 21일 이전에 피의자 접촉이나 증거 제출과 관련해 쿠팡과 사전에 연락하거나 협의한 적 없다"고 했다.
이에 쿠팡은 접촉한 기관은 경찰이 아닌 국정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도 전혀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은 "쿠팡이 수사 주체인 경찰을 패싱하고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며 "쿠팡의 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양측의 공방에 전문가들은 조사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 쪽에 1차 자료에 해당하는 자체 조사 결과를 요청하는 것과 이를 정부의 검증 없이 기업이 일방 발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쿠팡의 발표와 해명이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국정원은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쿠팡과 공조한 정부 기관으로 지목되자 언론 공지를 통해 “국정원은 어떠한 지시를 할 위치에 있지 않고 어떠한 지시를 한 바도 없다”면서도 “외국인에 의한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를 국가안보 위협 상황으로 인식해 관련 정보 수집·분석을 위해 업무협의를 한 바 있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국정원은 구체적인 업무 협의 대상과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알려진 바엔 국정원은 노트북, 데스크톱 등 증거물을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이송을 도왔다.
국정원은 이에 쿠팡에 단독 조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며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미국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를 위증죄로 고발해 달라고 ‘쿠팡 사태 범부처 TF(태스크포스)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경찰과 함께 ‘쿠팡 사태 범부처 TF’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국정원의 실질적인 관여 범위를 놓고 논란은 이어진다.
국가정보원법 제5조는 국정원이 직무 수행을 위해 필요할 경우 국가기관이나 관계 기관·단체에 사실 조회나 자료 제출 등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령은 ‘이 경우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어 협조 요청을 받은 기관이나 기업으로선 특별한 사안이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쿠팡의 자체 발표와 관련해 법무법인 지향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을 대리해 김범석 미국 쿠팡inc 의장과 해럴드 로저스 쿠팡 대표 등 최고경영진을 상대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증거인멸,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