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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 '3대 재벌 탄생지 지수 승산을 가다'- '터줏대감' 허 씨 가문의 생가와 본가(3-1)

정기홍 기자 승인 2022.03.21 04:51 | 최종 수정 2022.04.18 15:19 의견 0

※ 더경남뉴스의 창간 기획 '지수 승산을 가다'는 지난 3번째 글에서 '승산마을의 유래와 변천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코너에서는 '터줏대감 허 씨 가문''허 씨 사돈인 구 씨 가문'을 짚어봅니다.

두 가문의 자료가 많아 5개 파트로 나눠 ▲허 씨의 생가와 본가(3-1) ▲구 씨의 생가와 본가(3-2) ▲허 씨의 가문(3-3) ▲허만정과 그 후손들(3-4) ▲구 씨의 가문(3-5) ▲구인회와 그 후손들(3-6) ▲두 가문의 공동창업(3-7) 순서로 싣습니다.

승산마을의 이병욱 전 이장(79)이 동행하며 마을과 두 가문에 얽힌 사연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 연재 순서

◆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1. 들어가는 글

2. 승산마을의 산세와 지세

3. 승산마을의 유래와 변천사

4. '승산 터줏대감' GS의 허 씨-'허 씨의 사돈' LG의 구 씨 가문

- '마을 터줏대감' 허 씨 가문의 생가

- '허 씨의 사돈' LG의 구 씨 가문의 생가(예정 글)

마을안내 입간판. 먼저 위치도를 숙지하면 마을을 이해하기가 쉽다. 정창현 기자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 있는 한옥들은 대부분 우람한 대문과 큰 집채를 갖추고 있다. 모두가 허 씨 가문과 구 씨 가문의 한옥 고택들이다.

마을이 번창했던 조선 후기에는 150여채의 개별 한옥과 저잣거리 등이 있었으나 옛 자취는 없어지고 지금은 50여채만 자리하고 있다.

6·25 때 폭격으로 파괴되고,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졌다. 연세 지긋한 주민들은 6·25 때 많은 고택들이 무너지면서 깨진 기와가 쓸려간 흔적이 흔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한옥들은 작은 집의 대지가 500평(1650㎡) 정도이고 대체로 1200~1300평 규모다. 120년을 넘긴 고택도 있다. 어느 한옥도 빠짐이 없이 자태가 정갈해 보였다.

고택들을 이어주는 담장길은 고즈넉했지만 잘 정돈돼 깔끔했다. 정창현 기자

하지만 일반인은 한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입구마다 세워둔 안내판만 읽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평소에도 잘 개방을 하지 않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감염 우려가 먼길을 물어가며 온 길손들의 방문을 막아버렸다. 방문객에겐 큰 아쉬움이다.

이 전 마을이장은 "오래 전에는 개방했지만 문짝이며 엽전궤를 훔쳐가는 등 생가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문을 잠가 놓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택 방문의 제맛은 찬찬히 음미하며 둘러보는 맛이다. 오래된 나무결 켜켜이 묻어나오는 옛 내음(냄새)은 '옛것에서 배워 새것을 알게 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주는 것 아닌가 한다.

취재반은 생가 안내판이 간단하게 기술돼 '궁금증 허기'를 느끼게 했다. 방문객에게 서비스는 했는데, 공급자 위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한옥의 연역,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 등 조금 더 세세히 소개한 안내판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 허 씨 가문의 생가

마을에는 자신이 산 당대에 만석꾼이 된 '지신(止愼)' 허준(許駿·1844~1932년) 선생의 생가에서부터 후대의 허 씨들의 생가가 많다. 허준 선생은 허만종-허만정-허만옥 등의 아들을 두었다. 이들과 이들의 아들들의 생가도 있다.

허준 선생 당시에는 허 씨 가문의 부의 세가 진주는 물론 인근 의령, 함안, 합천 등 경상우도의 마을들에 강하게 미칠 때였다.

허만정(許萬正·1897~1952년) 선생은 사돈지간인 구인회 선생이 지금의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와 금성사를 창업하자 거액의 사업 자금을 대줬다.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돼 사실상 GS그룹의 창업주(시주)로 불린다. GS의 초대 회장은 허창수 현 명예회장이다.

지신정 허준 선생의 생가 대문. 지신고가라고 쓰여진 이 집이 지금의 GS그룹의 모태가 된 허준 선생이 살던 곳이다. 정창현 기자

승산마을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승산을 만석꾼 마을로 전국에 알린 허준 선생이 생활했던 고택이다. 현재 마을에는 허준 선생과 그의 아들 3형제도 나고 자란 '생가'와 거처하면서 학문에 정진한 '지신정' 등 2개의 고택이 남아 있다.

허준 선생 생가의 대문에는 방문객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한자 문구가 걸려 있다.

'지신고가(止愼故家)'다. 한자를 잘 모르는 한글세대는 물론 방문객들은 '지신의 옛날 집'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친다. '지신고가(止愼古家)'가 아닌 '지신고가(止愼故家)'로, 연유할 고(故)자다. '지신' 허준 선생으로부터 연유한 집이란 뜻이다.

어느 대에서 써서 걸었는지는 몰라도 '만석꾼'과 '지신(止愼·그침과 삼감)'의 정신을 후대에서 잇는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승산마을의 산 중턱엔 만석꾼을 이룬 허준 선생을 모신 사당인 '지신정(止愼亭)'이 있다. 살아생전 별장의 역할을 했다.

승산마을 뒷산에 자리한 지신정. 허준 선생이 학문을 하던 곳이다. 진주시 제공

지신정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원도문(遠到門)이 있다. '멀리 돌아서 다다른다'는 의미다. 마을의 이 전 이장은 "달도문(達到門)으로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원도문은 tvN의 드라마 철인왕후의 배경이 된 정자다. 철종과 중전(신혜선 분)이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궐밖에서 만나는데 철종이 말을 타고 도착한 곳이다.

지신정으로 들어가는 원도문(遠到門). 멀리 돌아서 도착한다는 뜻이다. 정창현 기자

'지신정'으로 들어서는 왼쪽에 세워진 '기신독곡(基愼獨谷)'이 멈출 줄 알고 스스로 행동을 삼가야 하는 계곡의 의미라면, 원도문은 만년의 허준 선생이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길을 돌아서 도달한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허준 선생을 기리는 재실 앞의 연당. 해마다 봄이면 연꽃이 만발한다. 정창현 기자

승산마을의 첫 '만석꾼'인 허만정 선생의 생가는 구인회(具仁會·LG 창업주) 선생의 처가(14세 때 허을수 여사와 결혼)인 허만식 생가 바로 옆에 있다.

허만정 생가 입구. 정창현 기자

전통적인 ‘ㄷ’자형 한옥으로 '나대지 않은' 소박한 격조를 지녔다. 허만정과 허만식은 6촌지간으로, 두 집은 바깥 대문을 통하지 않고 오갈 수 있게 문을 터놓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만정 선생의 동생이자 만석꾼인 허만옥 선생의 생가도 승산마을에 있다.

허창수(許昌秀) GS 명예회장(현 전경련 회장)의 부친 허준구(許準九·허만정의 셋째아들) 고 LG전선 명예회장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LG 공동 창업주인 효주 허만정의 동생인 허만옥의 생가

허 씨 가문의 한옥으로는 ▲고 허정구(許鼎九·허남정의 맏아들) 삼양통상 회장(삼성물산 초대회장) ▲사돈인 구인회 LG 창업주에게 사업자금을 대준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 ▲허준구의 아들인 허창수 GS 명예회장 ▲알토전기 허승효 회장의 생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한옥의 기품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알토 허승효 회장의 생가 입구. 정창현 기자
알토 허승효 회장의 생가. 정창현 기자

구인회 LG 창업주의 처남 허선구(許善九) 고가도 마을의 가운데 있다. 1914년 건립돼 안채와 사랑채 모두 3량인 근대 한옥이다. 경남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돼 관리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남부 부농주택의 배치 특성을 보이는 주거로서 안채, 사랑채 모두 3량가로 구성한 근대기의 특성들이 주거에 잘 반영되어 있는 예를 가진 좋은 자료이므로 문화재자료로 지정했다'고 적시해 놓았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처남 허선구의 고가. 문화재청 홈페이지 캡처

승산마을에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머물던 매형 허순구의 집이 있다는 것이 특별히 와닿았다.

이병철의 둘째 누이댁. 집안에 우물이 있는데 어린 이병철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정창현 기자

이 삼성 창업주는 승산마을에 지수초등학교(지수공립보통학교·1921년 개교)가 생기자 11살 때 둘째 누이(이분시) 집에서 지나며 구인회 LG 창업주와 함께 3학년 1학기(6개월)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LG 구인회 창업주, 효성 조홍제 창업주와 같은 시기에 동문수학을 했다고 하는데 조홍제의 효성 측은 부인했다. 이 부분은 예정돼 있는 지수초교에 관한 글에서 정리한다.

또다른 골목을 들어서면 허구연 방송 야구 해설위원의 생가도 나온다. 그는 경상도의 억양이 뭍어나는 구수한 해설은 감칠맛을 준다는 평을 듣는다.

'축구의 고장' 진주는 야구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데, 이 마을에서 당대의 유명한 야구해설가가 나왔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해질 독자들이 있을 터다.

허 해설위원은 이곳에서 어릴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경남고와 고려대에서 야구했다. 학력은 당시 서울대 법대와 쌍벽이던 고려대 법대다. 법대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하던 체육특기생으로 등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함께 두 가문의 종가와 재실(齋室)도 있다. 김해 허 씨의 대종중 제각(제사 모시는 집)인 허연정(許蓮亭), 승산마을 허 씨 가문의 종가, 허 씨 종중 재실인 연산재(蓮山齋)도 있다.

김해 허 씨의 대종중 제각인 허연정 입구. 김해 허씨 연당 허동립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정창현 기자
위 사진 오른쪽 안내판 내용. 정창현 기자
허 씨 종중 재실인 연산재. 정창현 기자
허 씨 가문 재실인 연산재 대문 위에 쓰인 첨앙문. 정창현 기자

승산마을 허 씨 가문의 시조격인 연당 허동립 장군(1601~1662년)을 추모하는 재실(齋室)인 '연정(蓮亭)'이 있다. 그는 강직하고 지략과용맹을 두루 갖췄다고 한다. 그에게 '관서오호장'이란 별칭이 붙는데 현종이 그가 사망했을 때 제문에 '나라를 구한 관서의 5명의 장'이란 뜻으로 이렇게 썼다.

연정이란 이름은 그의 호가 연당(蓮塘)이고 정자 앞에 작은 연꽃 연못을 만들면서 지었다고 한다. 배향립(配享立) 형태의 고택이다. 배향은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 사당, 서원에 모신다'는 뜻이다.

허 장군은 조선 중기에 총용사를 지냈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병마사로 제수돼 전공을 세웠다.

연정 고택
다시 지은 연정. 정창현 기자


이 밖에 허 씨 가문의 관계자가 부산을 오가며 사는 운봉정사도 있다.

※ 다음은 허 씨 사돈지간인 'LG 구 씨의 생가'의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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