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봄이 왔습니다. 흔히 봄의 전령사를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봄꽃으로만 말하지만 실제 봄을 맞는 '진국'은 봄나물입니다. 봄나물은 봄의 꽃이 나목(裸木)에서 봉오리를 내밀기 전에 척박한 땅, 양지바른 곳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싹을 틔웁니다.
나물은 다들 없이 살 때 밥상머리에서 "풀만 있냐"고 반찬 투정을 하던, 조금은 애절한 추억이 묻어나는 음식입니다. 봄나물은 인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요. 겨우내 속에 머금었던 영양분이 잎으로 올라오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봄나물을 찾아 '들마실'을 떠나봅니다.
첫번째 봄나물로 쑥을 택했습니다. 봄맞이 나물을 냉이와 달래로 말하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기자의 눈에는 쑥을 더 일찍 본 듯합니다.
쑥은 이맘 때면 겨우내 말라있던 풀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나물이지요. 바구니와 작은 칼만 들고 양지바른 밭에서 앉아서 캔 경험이 있는 분은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올 겁니다.
쑥을 이야기 하면 쑥백설기·쑥시루떡 등 쑥떡과 쑥버무리, 한약에서 활용하는 뜸 정도가 떠오릅니다.
▶ 특성-강한 생명력
쑥은 오랫 동안 인류의 식용 및 약용식물로 사랑을 받아온 식물입니다. 미네랄, 비타민 등 양질의 영양 성분도 많아 마늘, 당근과 함께 3대 성인병 예방 식물로 꼽히지요.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는 짐승에서 사람이 될 수 있는 신령한 식자재로 등장합니다. 6000년 전의 이집트에서는 쑥의 추출물을 이용해 치료제와 방향제로 쓰기도 했다고 전해지고요.
쑥은 엉거시(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물입니다. 여러 해를 살기에 뿌리는 겨우내 언 땅 속의 한기를 견뎌야 합니다. 들판이나 길가, 밭두렁, 논두렁, 과수원 등에서 너무 흔하게 봅니다.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봄부터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가며 마디마다 작은 뿌리를 내리고 새순을 밀어올립니다. '서리를 뚫고 나오는 게 쑥'이라는 말도 이런 연유에선가 싶네요.
생명력이 무척 강합니다. 번식력이 세다는 뜻입니다. 한국전쟁 1·4후퇴 때(겨울철) 포탄이 억수같이 쏟아진 땅에 봄이 오니 쑥이 가장 먼저 돋더라는 경험담도 전해집니다. 2차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에서도 쑥이 가장 먼저 돋아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병해충을 없앤다고 밭과 논두렁을 태운 자리에는 불과 한달만에 연한 쑥이 지척에 올라온 걸 볼 수 있습니다. '쑥대밭이 된다'는 말도 쑥의 뿌리가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일부라도 남아 있으면 1~2년새 밭이 온통 쑥으로 뒤덮힌다는 뜻입니다.
▶ 명칭-쑥이 나물?
쑥을 한자로는 애엽(艾葉)이라고 쓰는데, 한의학에서는 약쑥의 잎을 지칭합니다. 애(艾)자가 쑥 애, 약쑥애입니다. 창쑥, 약쑥으로도 부릅니다.
보통 쑥이라고만 말하지, 쑥나물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향이 강해 나물로 무쳐먹지 않고 삶고 쪄서 떡을 해 먹거나 밀가루 등과 버무려 먹기 때문입니다. 겉절이식처럼 날것으로 무쳐먹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쑥은 나물에 속합니다.
나물의 사전적인 뜻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을 삶거나 볶고, 날것으로 양념해 무친 음식'이기도 하고 '풀이나 나뭇잎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참고로 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는 '쑥맥'은 쑥과 관련이 없고, '숙맥'을 강하게 발음한 결과물입니다.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이고 콩(菽·콩 숙)과 보리(麥·보리 맥)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 음식-용도는?
쑥만큼 식용과 약용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나물도 드뭅니다.
어린잎은 식용으로, 다 자란 잎은 뜸쑥으로, 줄기(엽병)는 약용으로 이용됩니다. 쑥잎은 앞 표면이 푸르고 뒷면은 젖색의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습니다. 지천에 나 있는 하찮은 것이라며 평소 눈여겨보지를 않아 모르는 분도 많습니다.
식용으로는 봄철이 끝나기 전에 부드러운 순을 뜯어 떡으로 많이 해먹지요. 쑥 특유의 향이 특별한 맛을 줍니다.
쑥의 이 같은 향과 맛은 시네올(cineol)이란 정유(精油;essential oil)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네올은 무색 액체인데 향긋하고 시원해 폐질환 치료제로 쓰이고 살균·살충력이 강해 몸 안에서 발생한 염증을 줄입니다. 위액 분비도 촉진해 소화기능을 개선하는 등 보호합니다.
옛날에는 쑥떡을 쑥개떡이라 부르며, 못생긴 것에 비유하는 개떡 정도로 천시를 받았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해먹는 것쯤으로 여겼지요. 쑥이 너무 흔해서 그런 듯합니다.
개떡은 보릿겨 등을 반죽해 아무렇게나 반대기(평평하고 둥글넓적하게 만든 것)를 만들어 찐 떡입니다.
요즘엔 어떻습니까? 쫀득쫀득한 식감에다 쑥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면서 떡 중에 상떡으로 대우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쑥떡의 색깔은 먹음직스럽게 보입니다. 여기에다 쑥 특유의 향기가 식용을 돋웁니다. 노란 콩고물이 묻혀 나오는 쑥떡 또한 별미이지요.
쑥시루떡(쑥설기)과 쑥인절미도 있는데 요즘엔 그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쑥떡의 사촌쯤 되는 쑥버무리는 옛날엔 요긴한 간식이었습니다. 떡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남 지방에선 '쑥조래기' '쑥털털이'라고도 하지요.
기자도 어릴 때 어머니가 해서 주시는 걸 애써 도외시했는데, 쑥버무리가 떡의 산성을 중화시키고 영양도 보충해준다는 걸 이번에 기사를 쓰면서 알았습니다.
쑥이 더 자라면 자반으로도 만들고, 말려서 부각으로도 먹습니다. 쑥튀김도 있습니다.
최근 한 방송에서 전남 구례의 난동마을 아낙네들이 쑥부쟁이로 자반을 만들어 숯불에 구운 뒤 싸서 등에 지고 지리산으로 봄나물을 캐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쑥의 쌉싸름한 맛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음식이 있습니다. 도다리쑥국입니다.
경남 통영지방에서 이 때 물 오른 봄도다리(가재미라고 함)를 잡아오면, 해풍을 맞으면서 자란 쑥을 캐 넣고 국을 끓인 음식입니다.
쑥이 들어가 향긋한 향이 버무러져 봄철 미각을 돋웁니다. 입소문으로 전국적인 봄철 음식이 돼 찾는 이가 엄청 많습니다.
요즘은 레시피가 다양해져 별미로 쑥밥도 해먹습니다. 장아찌로도, 전으로도 부쳐서 먹고 국수에도 넣습니다. 베트남 쌀국수에 넣는 향신료를 본 딴 것이 아닌가 싶네요.
잎 뒤에 난 흰 털은 음식이 아닌 도장약인 인주를 만드는데 쓴다고 합니다. 의외네요.
▶ 건강-영양분은?
쑥은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쳤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그 효능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쑥보다 약효가 강한 개똥쑥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쑥은 단백질, 칼슘 등 무기질과 비타민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로틴 성분이 있는 비타민 A가 많아 80g만 먹어도 하루에 필요로 하는 양을 다 채워줍니다.
비타민 A는 우리 몸에 세균이 침입하면 저항력이 약해지는데 이를 막아줍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에도 좋겠군요. 시력 저하와 야맹증 예방 및 재생으로 눈도 보호해줍니다.
비타민B2(일명 리보폴라빈)는 세포 재생을 원활하게 해 암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감기 예방에 좋은 비타민 C도 많습니다.
식이섬유도 8.6g이나 들어 있어 유해물질 배설을 돕고 장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이어 한의학에서의 쑥 효능을 알아봅니다. 쑥은 맛이 쓰고 매우며, 성질은 따뜻합니다.
약재로 쓸 때는 지금보다 한참 후인 단옷날(음력 5월5일) 전후에 채취해 말린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연한 잎을 말려서 찐 다음 즙을 만들어 마시면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시키고, 해독과 구충 작용도 한답니다. 혈압을 내리고 염증을 없애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꽃이 피기 전에 말린 쑥은 성질이 따뜻해 위장·간장·신장 기능을 강화하고 출혈을 멎게 하며 부인병에도 효과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잎은 속이 냉해 생긴 복통과 요통, 토사, 출혈의 치료에 씁니다. 월경불순 등 부인병을 다스리는 약재로도 이용됩니다. 가려움증에도 좋다는데, 한여름 모기를 쫒는다고 마당에 피울 때 쑥을 베와서 넣는 것이 이 때문인가 싶네요.
뜸을 뜨는 데도 이용되는데 그 효능이 놀랍습니다. 뜸을 뜨면 백혈구 수가 평상시보다 2~3배 늘어나 면역물질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지요.
책에서 살펴보니 쑥에는 수분이 81.4%, 탄수화물 10.6g, 단백질 5.2g, 칼슘 93mg, 인 55mg, 철이 10.9mg 들어있습니다. 비타민 A, 비타민 B2, 비타민 C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천연 종합 비타민제'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 보관 및 조리 방법
쑥을 보관할 때는 뿌리 등에 묻은 흙을 제거하고 신문지나 뚜껑 있는 용기에 담아 냉장보관하면 고유의 향과 영양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쑥은 독한 맛이 있어 삶아서 하룻밤 정도 물에 담갔다가 3번 이상 흐르는 물에 씻어 보관하면 고유의 푸른색을 유지하고 쓴맛도 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보관하려면 데친 뒤 햇볕에 충분히 말려서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다 두고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지요.
다만 도시 주변이나 공장 근처에서 자란 것은 매연, 중금속 등에 오염이 됐을 가능성이 있어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쑥튀김은 기름의 온도를 조금 낮게 해 천천히 튀기는 것이 좋답니다.
■ 참고 자료
◆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한 쑥의 4가지 효능을 소개봅니다.
▶ 피로를 회복시킨다
몸을 움추렸던 겨울과 달리 봄에는 신체의 활동량이 늘어나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겨울에 부족했던 이들 영양소를 충분히 먹지 못하면 식욕 부진에다 피로감을 동반하는 춘곤증이 나타난다.
쑥은 비타민B 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먹으면 피로를 풀 수 있다. 비타민B 군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대사에 필요하지만 체내의 에너지 대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타민B1은 피로를 유발하는 젖산을 제거하고, 비타민B2는 눈의 피로를 플어주는 역할을 한다.
▶면역력을 높인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인 봄철에는 우리 몸은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평소보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면역세포가 사용할 에너지가 줄어 들어 병에 걸리기 쉽다.
쑥에는 면역력을 높여주는 비타민 C가 많다. 비타민 C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로 체내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면역 기능을 강화해준다.
▶ 여성의 하복부 질환에 좋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쑥을 ‘애엽(艾葉)’이라고 칭하며 "애엽은 맛이 쓰고 성질이 따뜻해 오장의 좋지 않은 기운과 풍습을 다스려 장기 기능을 강화한다"고 소개한다.
따라서 아랫배가 차 자주 발생하는 생리통, 산후복통 등으로 고생하는 기혼여성이 쑥을 먹으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고 노폐물도 잘 배출시킨다.
▶ 소화 기능을 개선시킨다
쑥은 소화 기능을 개선하는데 무척 좋다. 쑥에 많이 함유된 ‘시네올’ 때문이다.
시네올은 쑥을 비롯한 월계수잎, 로즈메리이 특유의 향을 내는데 관여하는 휘발성 기름(정유)이다.
살균력이 강해 장 안에 있는 유해균을 없애준다. 위액 분비도 촉진시켜 위 건강을 증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