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도 헷갈리는 갱상도 말] 새실과 세실, 그리고 사설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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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15:30 | 최종 수정 2022.09.0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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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지방에서 '새실'이란 말을 자주 듣고 씁니다.
기자도 어릴 때 학교에 갔다 와서 옴마(엄마)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일러 말하면 "일 하는데 거칠린다(걸린다). 새실 좀 고마(그만) 하고, 저리 가라"는 핀잔을 자주 받았습니다.
새실은 어떤 뜻일까요?
표준어인 '사설(辭說)'의 사투리입니다. 말씀 사(辭)에 말씀 설(說), 즉 '늘어 놓는 말이나 이야기' 또는 '잔소리나 푸념을 길게 늘어놓음 또는 그 잔소리와 푸념'의 뜻입니다. 잡담을 말하지요.
이 말고도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 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이란 뜻도 있습니다.
전라 지방에선 '새설'이라고도 하는데 어문학자들은 새설을 사설의 모음역행동화, 즉 뒷모음의 영향으로 앞의 모음이 변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참고로 진주 지방의 사투리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참 투박하고 억셉니다. 인근인 마산의 말과 비교해도 억양이 좀 센 편입니다. 마산은 큰 공단이 일찍 들어와서 말투에서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투박한 진주 말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입니다.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한 토지에는 가히 서부경남 사투리가 천지이지요. 토지에서 등장하는 사투리들을 이해 하지 못해 영어로 번역한 소설 한편을 읽는다는 푸념도 나왔다는 뒷말도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전국에서 그 지역의 옛말이 가장 변형 없이 많이 남은 곳이 진주라고 합니다. 전라 억양이 진한 목포나 광주도 아니고, 가장 보수적인 고장이라는 경북 안동도 아니고요.
진주 사람들이 고집이 세 외부의 문화에 동화를 잘 못 하거나 안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진주만의 토속 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에나'나 '하모'가 이런 유입니다.
가욋말이지만 진주 사람들은 기업이든 조직에 한번 들어가면 잘 옮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출세한 사람이 많습니다. 신의가 강하다고 하고요. 진주인들은 이를 '진주 정신'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영향이라나···.
박경리 작가가 진주 사람이란 걸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충무(지금의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고등여학교(진주여고)를 나왔지요. 당시엔 진주가 전국에서 내노라 하던 곳이었기에 전국의 인재들이 몰렸지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소설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기까지 1세기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변천 속에서 계층과 이념, 욕망을 다양하게 소유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려냅니다.
박경리 작가는 지난 2008년 폐암으로 타계하기 전인 6월에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