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순경 사건' 40년만에 62명 사망자 기리는 '의령 4·26 추모공원' 만든다
31일?유족 포함 28명 위원 회의 참석해 '역사적 첫발'
'의령 4·26 추모공원'으로 공원 명칭 확정
군, 국비 7억 확보...사업비 15억으로 내년 착공 목표
90세 노모 "그날 몸에 총이 세 번 지나간 날, 한 풀어"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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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1 11:55 | 최종 수정 2022.11.0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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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그날(우 순경 총기 난사로 62명 사망) 남편을 잃었습니다. 제 몸에 총이 세 발 지나갔습니다. 당시 대통령님이 오셨습니다. '대통령님 부모 잃은 이 많은 고아들 좀 거둬주십시오'라고 펑펑 울었습니다. 오늘 한이 풀리는 날입니다. 군수님 고맙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2시 경남 의령군청 회의실에서 열린 '궁류사건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사업 추진위원회' 첫 회의에 배병순 어르신(90)은 40년 만에 처음 꺼내 본 말이라며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당시 남편과 함께 아들을 잃었던 노모는 말을 이으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배 어르신은 "억장 무너지는 40년을 지나 오늘까지 왔다. 군수님이 나서 공간도 마련해주고 제를 지내 준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이라며 "영감도 하늘나라에서 흐뭇하게 볼 수 있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배 어르신의 바람처럼 의령에 '우순경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원이 생긴다. 공원 명칭도 '의령 426 추모공원'으로 확정됐다.
의령군은 이날 유족대표 10명을 포함한 지역대표 25명의 위원이 참석한 '역사적인' 첫 회의를 개최했다.
오태완 군수가 지난해 12월 당시 김부겸 총리와의 면담에서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인데 그런 경찰이 벌인 만행인 만큼 국가가 책임이 있다. 그래서 국비로 이들의 넋을 위로해야 한다"는 건의가 도화선이 돼 추진위원회 구성과 추모공원 건립 확정 단계까지 왔다.
의령군은 올해 5월 행정안전부로부터 7억 원의 특별교부세가 확정돼 내려왔으며 도비와 군비를 합쳐 총사업비 15억 원으로 추모공원을 지을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별한 일에 특별한 사람'이 위원장을 해야 한다는 유족 뜻에 따라 오 군수가 만장일치로 추진위원장에 추대됐다. 사건 당시 의령군 행정계장으로 사고 수습을 맡았던 하만용 노인대학 학장과 유족 대표인 류영환 씨가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상정된 안건 중 '공원 명칭의 건'에 대해서는 격론이 오갔다. 유족 중 일부는 "'궁류사건'이라는 말은 입에도 올리기 싫다. 지난 세월 궁류에 산다는 이유로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며 추모공원 명칭에 '궁류'라는 지명을 넣지말 것을 요청했다.
'치유'와 '추모' 중 어느 단어가 공원 명칭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우선 추모의 공간으로 먼저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위원들은 계속 공원을 꾸미고 발전시켜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공원 위치는 두세 곳의 유력 후보지를 정했고, 법적 검토와 주민 의견을 거쳐 확정할 뜻을 밝혔다.
오태완 군수는 "'의령 하면 우순경'이란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았다. 이제는 떨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유족들의 살아있는 증언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역사적 사명감으로 반드시 추모공원 사업을 제대로 완수하겠다"는 고 밝혔다.
의령군은 내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른 시일에 위령비 디자인 공모를 하고, 군 관리계획 결정 및 보상계획을 구체화한다는 구상이다.
우순경사건은 지난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30분쯤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순경 우범곤이 마을 주민들에게 총과 수류탄을 난사해 주민 62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친 사건이다. 우 순경은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되며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이후 보도 통제가 되면서 추모행사도 열리지 못했다.
우 순경의 범행 계기는 황당했다.
매곡마을에서 전 모(여·당시 25세) 씨와 동거를 하던 우 순경이 이날 야간근무를 앞두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전 씨가 가슴에 붙은 파리를 잡으려고 손바닥으로 우 순경의 가슴을 쳤는데 놀라 깨 크게 다투었다.
이후 야간근무를 위해 지서로 간 우 순경이 홧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우 순경이 쏜 총에 맞은 동거녀 전 씨는 이 내용을 진술한 뒤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