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가 경남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배수지 가동 중지 논란의 핵심 키로 지목되는 배수시설 안의 '작은 펌프'를 떼 간 것으로 확인됐다. 농어촌공사는 수리 및 교체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작은 펌프'는 이곳 배수 시설 반지하에 있는 대형 펌프(2대)의 침수를 늦추거나 막기 위해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바깥으로 퍼 내는 역할을 한다.

북마성 주민들은 '작은 펌프'가 오래 전부터 가동되지 않아 대형 펌프 가동 중단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농어촌공사는 당시 '배수기'가 가동됐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문제의 '작은 펌프'. 농어촌공사가 수리를 이유로 펌프와 모터를 떼 갔다. 북마성마을 주민들은 녹이 많이 슨 점을 들어 오래 전부터 방치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작은 펌프' 아래 구멍 부위. 볼트는 빠져 있고 녹이 많이 슬어 있어 오래 전부터 방치된 것으로 짐작된다. 카메라로 확대 촬영했다.

▶ '작은 펌프' 떼 간 이유 놓고 이견

25일 북마성마을 주민들과 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 더경남뉴스 취재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수리를 이유로 배수 시설 내에 있던 배수용 작은 펌프(모터 포함)를 떼 내 가져갔다.

북마성마을 주민들은 "농어촌공사의 이 행위는 지난 19일 집중 호우 때 대형 펌프의 침수를 막기 위해 물을 퍼내야 할 '작은 펌프'가 가동되지 않은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작은 펌프' 가동이 안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 증거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더경남뉴스는 지난 20일 오전 현장을 찾아 '작은 펌프'에 물빠짐 구멍 역할을 하는 잠금 볼트가 빠져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 사진을 확대 촬영해 단독 보도했다.

이날 한 업체의 정비사가 '작은 펌프'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이 때 떼 간 것으로 짐작된다. 마을 주민들이 확인한 때는 23일이었다.

취재 당시 볼트를 끼우는 곳과 그 주변에 녹이 많이 슬어 볼트를 분리해 놓은 지가 꽤 오래돼 보였다.

모터가 붙어 있는 이 '작은 펌프'는 펌프 안에 있는 인펠러(프로펠러)를 돌리기 위해 물을 넣어야 한다. 다만 추운 겨울이면 얼지 않게 물을 빼놓아야 한다. 따라서 이 볼트는 잠갔다가 풀어놓았다 한다.

북마성마을의 한 주민은 "수 년간 침수될만한 큰비가 오지 않아 '작은 펌프'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 몇 년은 저 상태로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주장이 맞다면, 북마성 들판 침수는 농어촌공사의 가동 중단 당시 판단도 중요 변수이지만 평소의 시설 관리 문제(방치)가 더 부각될 수 있다.

평소 농어촌공사가 '작은 펌프' 등 제반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현장 관리를 하는 계약직 근무자도 이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앞서 농어촌공사는 19일 집중 호우로 19~20일 침수 피해를 입자 20일 정비 점검을 한다며 대형 펌프 2개에 동력을 전달하는 모터(2개)를 떼 내 가져갔다. 모터는 오는 28일 다시 설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펌프는 모터가 돌리는 단순 기계이지만, 모터는 전기로 돌려야 하기에 침수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농어촌공사 직원에 따르면 대형 모터가 가동 중 침수되면 정비에 6개월 정도 걸리지만 사전에 전기를 차단한 뒤 침수된 모터는 빠른 시간에 수리가 가능하다.

▶ 배수 시설 내 '작은 펌프' 몇 개?

북마성마을의 복수 인사는 배수 시설 안의 배수용으로 용량이 크지 않은 '작은 펌프' 한 개만 있다고 밝혔다.

이 배수 시설에서 감시원(계약직)으로 수년 간 근무했던 북마성 주민과 업체의 정비사도 기자에게 "대형 펌프 침수 방지 배수용 '작은 펌프'는 한 개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도 "'작은 펌프'가 두 개 더 설치돼 있지만 이는 2대의 대형 펌프를 가동시키기 위해 물을 펌프로 넣어주는 역할만 할 뿐, 배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농어촌공사는 기자의 확인에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배수 펌프는 가동되고 있었다"고만 했다.

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 담당 직원들이 관내 여러 곳에서 발생한 침수로 현장에 나가 있어 이에 대한 더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 다른 배수 시설은?

대형 펌프가 설치된 배수 시설 내의 물빠짐과 관련, 작은 구멍 하나가 바닥에 나 있다. 평상시에는 내부 청소를 할 때 사용한 물이 빠져나가는 하수용 구멍으로 활용된다.

대형 펌프 아래 흰색 통 왼쪽 십자가처럼 보이는 곳이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다. 평소엔 청소물을 빼내는 구멍이다. 이번 폭우 때처럼 침수로 물이 역류하면 구멍으로 물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헀던 주민은 이 구멍과 관련해 "바깥이 침수되면 물이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데 구멍이 작아 빠른 속도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침수 수위가 1시간에 10cm 정도 오르는데 이 정도면 '작은 펌프'를 작동시키면 침수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구멍으로 물이 역류해 들어오면 헝겊 등으로 구멍을 막고 '작은 펌프'로 물을 퍼내면 대형 펌프 침수로 인한 가동 중단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무할 당시 이런 경우가 있었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실제 19일 오후 4시 전후 집중 호우가 그쳐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런 이유로 '작은 펌프'의 가동 여부는 이번 침수 사고 논란에서 핵심 열쇠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가동 중지 판단서도 이견

대형 펌프 가동 중지 시간(19일 오후 3시)을 두고서도 양측은 이견을 드러넀다.

주민들은 중단 시간이 빨랐다는 반면 농어촌공사는 최대한 늦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작은 펌프' 가동 여부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만일 19일 '작은 펌프'를 전혀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면 오후 3시 대형 펌프 가동을 중지시킨 게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즉, '작은 모터'를 돌려 물을 빼 낼 수 있었다면 대형 펌프의 모터를 중단시킬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주민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19일 오후 3시 대형 펌프 가동을 중단한 이후 오후 4시쯤 침수 수위는 28cm 정도로 대형 펌프는 침수되지 않고 있었다.

이어 20일 새벽까지 86cm 정도로 물이 차 대형 펌프는 절반 정도 침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작은 펌프'가 가동됐다면 1시간에 10cm 정도 차오르는 물을 충분히 밖으로 빼낼 수 있고, 하수용 바닥 구멍마저 막았다면 더 느리게 물이 들어와 침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란 결론을 낼 수 있다.

▶ 북마성 들판 오래 침수돼

북마성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북마성 침수 들판은 인근 다른 침수 들판보다 하루 정도 늦게 물이 빠졌다.

농어촌공사가 정비 점검을 이유로 대형 배수기의 모터를 펌프에서 분리해 가져가 가동이 중단돼 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대형 펌프가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 직원들은 24일 마성들에 나와 피해 규모를 점검하고 갔지만 주민들과는 논의 자리를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정문 굳게 닫아 주민 출입 통제

북마성마을 주민들은 농어촌공사에서 '작은 펌프'를 떼 갔다는 사실을 알고 24일 현장 사진을 남기기 위해 배수장을 방문했으나 23일 오전까지도 열려 있던 정문이 굳게 잠겨있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이왕에 녹이 엄청 슬어 있어 가동이 불가능하다면 정비를 해야 하겠지만 현장 증거를 사전에 없애버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작은 펌프' 철수에 의구심을 가졌다.

다만 '작은 펌프' 관련 사진 자료는 많다고 밝혔다.


■ 아래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수장(배수시설) 안에 있던 펌프 관련 사진을 비교한 것이다.

농어촌공사가 19일 오후 3시 침수 우려로 가동을 중지시킨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배수장 내부 모습. 20일 오전 상황이며 밤새 물이 찼다가 빠진 상태다. 두 개의 대형 펌프가 있고 왼쪽엔 모터를 떼 간 바닥 흔적이 보인다. 1층 난간에서 기계실 지하 1층을 내려다보며 찍었다.

물을 빼내는 배수용인 '작은 펌프' 위치. 업체 정비사가 20일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빨간색으로 둥글게 표시한 곳이 '작은 펌프'에 들어 있는 물을 빼내는 구멍이다. 겨울철에는 얼 우려가 있어 볼트를 풀어 빼놓는다. 오른쪽 진초록색 통은 윤활유 통으로 침수됐을 때 떠 있다가 넘어져 있는 상태다.

위 사진을 확대했다. 모터 안의 물을 빼 내는 아래 부분 구멍(붉은 동그라미 안)과 침수된 바닥 물을 빨아올리는 푸른색 부분

'작은 펌프'의 아래쪽 볼트가 풀어져 없어졌다. 펌프에 물이 고인 상태에서 추운 겨울에 방치하면 고장의 원인이 되기에 겨울엔 풀어서 내부의 물을 제거한다. 하지만 녹이 가득 슬어 있어 이 펌프를 가동한 지는 꽤 오래돼 보였다. 확대 촬영했다.

'작은 펌프'는 작은 관으로 위와 연결(빨간 표시)돼 있어 침수 물이 바깥으로 빠진다.

위에서 언급한 왼쪽 구석(중간 계기판에 가려 보이지 않음)의 '작은 펌프' 말고 또다른 '작은 펌프'로 보이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20일 기계수리를 위해 온 정비사는 이 펌프는 배수와 관련이 없는 대형 펌프를 가동하기 전 물을 공급하는 '작은 펌프'라고 했다. 이상 정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