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끝난 울산 재·보궐선거에서 교육감은 더불어민주당 성향의 후보가, 울산 남구 기초의원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울산교육감 선거에서 천창수 후보가 61.94%, 김주홍 후보가 38.05%를 얻었다. 울산 남구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최덕종 후보가 50.60%를 얻어 신상현 국민의힘 후보(49.39%)를 꺾고 당선됐다. 특히 남구는 서울의 강남격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다. 사실상 국민의힘의 참패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셈법이 복잡해졌다.
울산 지역의 선거를 알려면 다른 영남 지역과 다른 '특별한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울산은 블루칼라(제조업 종사자)가 많다.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업종인 자동차와 조선, 철강, 화학 등의 제조업이 많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울산은 노조(민노총과 한노총)의 본거지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깔려 있다. 진보좌파의 표가 20~30%대는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 주민들은 부울경 지역의 특성과 비슷하게 보수우파 성향이다. 이른바 노동자(진보좌파) 대 주민(보수우파)로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부울경에서는 진보좌파 진영에서 광역단체장(시장과 도지사)과 기초단체장(시장과 군수), 지방의원(광역시의원과 시군의원)이 더러 당선된다.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치 이념층이 있지만 부산과 울산, 창원에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주의의 문제인데, 호남 지역인들이 벌이를 위해 이곳으로 많이 이동한 것도 이유다.
부산엔 기본적으로 '진보좌파 표가 30%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공단 지역인 울산, 창원도 호남 출신 사람이 많다. 울산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화학 대기업들이 있는 곳이다. 창원은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에다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이들 지역엔 지난 70년대 벌어 먹기 위해 전국에서 산업 인력이 모여들었다. 1세대에 이은 2세대는 현지인으로 착근됐지만 정치 이념은 많이 바뀌었다고 보긴 쉽지 않다.
이래서 선거철마다 이들 지역에서 진보좌파 출마자가 의외로 많이 당선된다. 노동자층과 지역(호남)의 영향을 제법 받는다. 창원은 가까운 진주와 비교해도 표의 성향이 많이 다르다. 진주는 대규모 공단이 없다.
먼저 울산시교육감 선거를 분석해보자.
교육감은 정당에서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향은 확연히 드러난다. 여야에서 보이지 않게 선거 운동을 지원한다. 사실상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여야 대리전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좌파 성향의 천창수 후보(61.94%)가 보수우파 성향의 김주홍 후보(38.05%)를 무려 23.89%포인트 가까이 이겼다. 엄청난 표차다.
선거 표심 분석에는 대체로 ▲인물 ▲지역의 이념 지형 ▲선거 당시 돌발 상황 등을 변수로 본다.
이번 울산교육감 선거는 진보좌파 후보의 부인인 노옥희 전 교육감이 지난해 12월 갑자기 쓰러져 사망해 남편이 이어 출마했다.
동정표가 큰 변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얼마나 진보좌파가 주장하는 교육틀이 절실했으면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출마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편으로는 보수우파에서 보이지 않는 진보좌파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기초의원이다.
민주당 최 후보는 50.60%를, 국민의힘 신 후보는 49.39%를 얻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접전이다. 하지만 속을 파보면 국민의힘으로선 가슴이 뜨끔해질 법하다.
울산 남구는 서울의 강남격으로 부자들이 산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바로 옆 지역구다. 그런데 예상밖의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힘으로선 기초의원 선거였다고 애써 자위하며 넘길 상황이 아니다.
또한 전체적인 정치 변수는 ▲문재인 정권의 5년 실정(탈원전 정책, 최저임금제, 소득주도성장)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대일 외교, 근로시간 개편 혼선)을 들 수 있다.
문 전 대통령 것은 묵은 것이고 윤 대통령 것은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은 달리 볼 게 많다.
문 전 대통령 실정은 탈원전 정책을 빼면 모두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모든 정권이 손을 못 댄 대일 관계를 이참에 해결 짓자는 것이다. 근로시간 개편도 획일적인 52시간 융통성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대통령실 홍보팀 포함)은 홍보에서 완패했다.
문제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만나 합의한 내용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를 실행하면 당연히 국민 정서상 반대가 많게 돼 있다. 문재인 정권은 임기내내 이 사안을 미루고 미뤘다. 민주당 등 진보좌파는 이 틈을 비집고 정치적 총공세에 나섰다. 야당의 전략에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으로 놀아났다.
울산의 노동자 중에서도 보수이거나 노동층에서 이런 정치 분위기에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다고 분석할 수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대표에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유력 주자들을 무리하게 주저앉히는 등으로 지지자는 물론 국민들의 비난을 샀다. 당연히 당선 컨벤션 효과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새 대표를 맞았는데도 되레 당 지지율은 떨어졌다. 결국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에서조차 지고 말았다.
선거 당시의 국민의힘 중진 의원과 당직자의 설화도 표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국민의힘의 울산 성적표는 상징하는 게 많다.
국민의 지지를 되돌리려는 통렬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년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최근 뽑힌 원내대표 등 당 대표 체제를 보면 새로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쳇말로 '구닥다리 아저씨' 냄새가 풀풀 난다. 당내에서도 "혁신과 역동성이 실종됐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리 기초의원 선거이지만 울산 남구에서 보수 후보가 1:1 상황에서 패했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에서 고령층 투표가 많아 보통 유리한데도 대선이나 지선 때보다 10% 가까이 득표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그는 “PK에서 이런 심상치 않은 상황이면 수도권에서는 서울 강남도 안심 못 한다는 이야기”라며 “지난 대선 기준으로 울산 남구가 (보수우파표가 많았던) 송파(56.76%)나 용산(56.44%), 성남 분당(55.00%)보다 득표가 많았던 곳이다. 수도권 나머지 지역구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당의 노선을 조속히 다시 정상화 해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치른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이 8%에 그쳐 지난 대선 때 득표율에서 무려 반토막이 났다. 반면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39.07%(1만 7382표)를 얻어 32.11%(1만 4288표)를 얻은 민주당 출신 무소속 임정엽 후보를 이겼다.
무엇보다 강 후보 당선은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도화선이 돼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으로 당이 없어진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선 표심 분위기가 내년 4월 총선 지형에 어떻게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내년 총선은 접전 지역이 많아 '이념적 중도표'가 당락을 결정 짓는 경우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민주당에 일방으로 밀어준 지난 총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란 말이다. 당시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기로, 민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됐었다. 거꾸로 국민의힘은 총선 공천 파동을 겪게 된다면 표심은 급랭할 것이다. 이미 당이 김기현 대표 체제가 될 때까지 과정을 보면 결코 기우가 아닐 수 있다. '친윤 일색' 공천이 수년 전 총선서 공천 파동 여파로 참패했던 데자뷔(기시감·이전에 본 것)로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