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 살만한 요즘은 '건강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건강 상식과 식품은 범람하고, TV에선 의사 등 전문가들이 자기 말대로 안 하면 곧 큰병에 걸릴 듯 엄포를 놓습니다. 이즈음 옛 선인들의 건강 지혜를 찾아봄직합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상식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두 번째로 신맛입니다.
간 기능이 약한 사람은 신맛을 좋아합니다. 달리 간 기능이 약해지면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는 말입니다. 음식으로 먹은 신맛은 간으로 들어가 '해독'을 돕고 근육을 이완시켜 줍니다.
조선의 명의인 허준 선생이 지은 한의학 서적인 '동의보감'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산미(酸味), 풀이하면 실 산(酸)-맛 미(味)입니다. 이른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시큼한 맛'이라고도 하는데 식욕, 즉 음식을 맛을 당기게 만듭니다. 다만 신맛은 딱히 중요한 영양 성분은 아닙니다. 신맛에 관해 알아봅니다.
한방에서는 신맛이 있는 음식은 간과 담(담낭, 쓸개)을 보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가 간의 근처에 있는 장기이네요.
따라서 간과 담이 허약하면 신맛의 음식을 좋아하고, 거꾸로 간과 담의 기능이 강하면 신맛이 나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은 대체로 신맛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평소 기가 약해 화를 버럭내거나 할 때 더러 큰 탈이 나는 편이지요. 실제 성격이 느긋한 사람보다 성정이 부글부글 잘 끓는 사람이 초고추장 등 신것을 자주 찾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임신부가 짜증과 화를 잘 낸다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임신을 하면 신맛이 당긴다고 합니다. 임신 중엔 감정이 예민해져 신경질을 자주 내고, 이로 인해 간 기능이 안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화를 많이 내면 간이 나빠진다고 합니다.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장기로, 신맛의 음식이 임산부의 간 기능을 유지시키거나 강화시켜 몸에 들어온 음식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려는 것이지요.
따라서 임산부가 먹는 신맛은 에너지를 흡수돼 태아의 발육 촉진에 도움을 줍니다.
또 감기로 고생할 때도 신맛의 음식(레몬, 오렌지 등)을 먹으면 감기 기운을 다스려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간은 바이러스를 통해 발생한 감기가 몸에서 시작되면 해독작용을 늘리고 몸의 상태를 회복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이러한 간의 해독을 돕는 맛이자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신맛입니다.
신맛은 침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피로를 회복시킵니다. 박카스와 같은 피로회복제에 신맛의 구연산을 타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지만 신맛은 주로 충치를 발생시키는 주범입니다.
이가 썩는 이유는 신맛의 원인인 산 때문인데 산의 양이온인 H3O+(옥소늄 이온)가 치아를 부식시킵니다. 또 단당류와 이당류가 치아에 해로운 것은 세균 등 미생물이 이를 분해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젖산 때문인데 젖산도 산의 일종이기에 치아를 부식시킵니다.
우리는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고 말하지요. 단맛 자체는 충치와 무관하다고 합니다. 단맛 성분의 하나인 자일리톨이 오히려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의외로 알지 못합니다. 자일리톨껌은 자주 씹어야 할 껌입니다.
신맛은 청량감에도 관련돼 있다고 하네요. 사이다에 신 레몬향을 첨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이다, 콜라 등 탄산음료가 산이어서 마찬가지로 치아를 부식시킵니다.
한편 신맛은 체액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해 땀을 많이 흘렸을 때 몸이 허약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을 줄여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네요.
신맛은 또 설사나 유정(遺精·정액이 저절로 나오는 조류)과 음허(체액 부족) 증상을 해소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에게는 대하(帶下·여성 생식기 분비물) 대처에 활용됩니다.
어느 음식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많이 먹으면 탈이 납니다. 신맛의 음식을 과하게 먹으면 폐를 손상시킬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참고사항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신맛을 즐긴다고 합니다. 척추동물의 조상인 수중생물에게는 물 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맛은 쓴맛, 단맛, 짠멋, 매운맛 등과 달리 신경이 조건반사를 하게 하는 맛입니다. 다른 맛들은 생각해도 반응이 잘 오지 않지만 신맛은 상상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음식에 신맛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식욕도 돋워줍니다. 김밥이나 초밥에는 조미양념으로 넣고, 중국집 만두나 양파, 단무지 간장엔 식초를 칩니다. 또한 고기의 기름 맛을 입에서 가시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디저트에도 신맛을 내는 것이 많다네요. 오렌지, 레몬과 같은 귤속 식물들의 과일에는 신맛이 납니다. 대체로 단맛과 섞여있지요. '새콤달콤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지만 조리할 때의 식초는 짠맛을 돋워주는 역할도 합니다. 조리를 할 때 식초와 소금을 함께 사용하면 맛을 더 잘 낼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신맛을 견디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인에게 적당한 새콤한 맛이 한국인에겐 엄청 센 신맛으로 느껴지기 쉽다고 합니다.
커피 업계에서는 신맛이 들어가면 고급 커피를 분류합니다. 모든 커피가 어느 정도 신맛을 지니지만 과일 맛에 가까운 높은 단맛과 신맛의 커피일수록 고평가를 받는 편입니다.
반면 상한 음식에 신맛을 느낄 수 있어 음식물이 상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식품에서 번식하는 세균이 신맛의 산성 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상한 우유를 영어로 'sour milk'라고도 합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는 문구를 사용했고, 서양의학의 성자인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친 병은 약으로도 고치기 어렵다. 음식을 약으로 알고 약은 음식에서 구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아다시피 신맛은 왕성한 식욕을 당기게 합니다. 또 신맛이 간장에 좋다고 과하게 먹으면 어딘가에 탈이 나겠지요.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나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병이 됩니다. 물론 모자라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떤 음식이나 먹을 때는 몸 안의 균형을 깨지 않으면서 개인의 체질적인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건강한 식도락입니다. 오장장육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기능을 할 때 비로소 건강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