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 살만한 요즘은 '건강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건강 상식과 식품은 범람하고, TV에선 의사 등 전문가들이 자기 말대로 안 하면 곧 큰병에 걸릴 듯 엄포를 놓습니다. 이즈음 옛 선인들의 건강 지혜를 찾아봄직합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상식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한 사람이 평생을 먹는 음식량은 무려 27t이 된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는 1t짜리 트럭 27대분입니다. 적은 건지 많은 건지 분간은 잘 안 됩니다. 몇 살을 기준으로 하는 지 등의 변수도 있겠지요.
다만 평생을 입에 달고 사는 게 음식이니 음식만큼 '좋은 약'이 없고, 잘못된 식생활보다 '나쁜 독'이 없다는 말은 귀로 쏙 들어옵니다.
예부터 좋은 음식은 맛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음식의 온도차가 심하지 않고, 최대한 오미와 향을 조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잘 지키지 않으면 '천한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통상적으로 기본적인 맛을 5개로 구분해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그리고 매운맛이라고 하고 감칠맛이라고도 합니다.
"심장(심혈관)이 약한 사람은 쓴맛이 나는 음식을 먹어라"
쓴맛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을 잘 내립니다.
우리는 흥분을 하거나 충격적인 일을 접했을 때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봅니다. 흥분을 잘 하는 사람은 평소 쓴맛의 음식을 챙겨먹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네요.
쓴맛은 심장(심혈관)의 안정과 회복을 도와주고 습기를 말리는 효과가 있으며, 살균작용과 이뇨작용을 돕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쓴맛의 음식은 몸안의 염증을 억제하고 몸에서 발생하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줍니다.
쓴맛이 많은 음식은 수수, 씀바귀, 고들빼기, 더덕, 쑥, 영지, 상추, 커피, 귤(껍질 포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 음식 외에도 쓴맛의 음식은 많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술을 끊고 싶을 때 쓴맛 식품을 먹으면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스트레스는 화를 유발하고 심장의 열을 올립니다. 쓴맛은 스트레스로 올라간 심장의 열을 내리는데 가장 필요한 맛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평소에 쓴맛의 음식을 먹어 심장의 열을 내려주면 술을 찾는 경향이 줄게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몸에 열이 적은 사람은 쓴맛의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약은 쓰다"거나 "쓴 것은 약 된다"는 말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서 "쓴맛이 심장에 좋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몸이 허했을 때 지어 달여먹는 탕약도 씁니다.
■맛에 관한 참고용 자료
앞으로 연재하는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먼저 짧게 소개합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오행(五行)사상(우주 만물을 이루는 금·수·목·화·토 등 5개 원소)에 따라 음식의 맛을 크게 5가지로 구분하는데, 각각의 맛은 오장육부를 보해줍니다.
오장(五臟)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이고 육부(六腑)는 대장, 소장, 쓸개, 위, 삼초(三焦·횡격막 아래에서 배꼽까지의 부위)·방광입니다.
장(臟)은 내부가 충실한 기관, 부(腑)는 반대로 빈 기관을 가리킵니다.
동의보감에서 언급하는 오미(五味)란 신맛(酸味·산미), 쓴맛(苦味·고미), 단맛(甘味·감미), 매운맛(辛味·신미), 짠맛(鹹味·함미)을 말합니다. 음식에서뿐 아니라 한방에서도 약재들을 맛으로 구별하고 각 맛의 효능을 분류해놓았습니다.
쓴맛은 심장의 기능을 도와 피를 충실하게 해주며, 단맛은 비위(지라와 위) 기능을 도와 살을 찌게 합니다. 신맛은 간의 기능을 도와 근육을 튼튼히 만들어 힘을 내게 하며, 매운맛은 폐 기능을 도와 지구력을 강화시킵니다. 이어 짠맛은 신장 기능과 신경 계통을 도와 뼈를 탄탄하게 해 성장 발육을 돕습니다.
즉 신맛은 간으로, 매운맛은 폐로, 쓴맛은 심(심장)으로, 짠맛은 신(신장)으로, 단맛은 비(비장)로 들어가 오장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지요.
다만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고 같은 사람도 나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입맛이 달라지기도 하는 건은 당연합니다.
다만 모든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오장육부가 건강해지겠지요.
우리 몸은 스스로 오미(五味)의 조절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같이 우리 몸은 오미를 다 필요하지만 어느 맛이나 지나치면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지나친 편식을 경계한 것이지요.
동의보감에서는 ▲짠것을 '많이' 먹으면 혈맥이 잘 통하지 못하고 얼굴 색이 변하며 ▲쓴것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털이 빠지며 ▲매운것을 '많이' 먹으면 근육이 당기고 손톱이 마르며 ▲신것을 '많이' 먹으면 살이 두꺼워지고 주름이 잡히며 입술이 말려 올라가고 ▲단것을 '많이' 먹으면 뼈가 쑤시며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