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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마디]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해봤어?'(2)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5.01 04:35 | 최종 수정 2023.05.01 20:58 의견 0

감동적인 말, 감탄의 말, 훈계의 말, 타이르는 말 등 좋거나 의미가 깊게 담긴 말이 많습니다. 이를 명언(名言)이라거나 금언(金言), 잠언(箴言), 경구(警句)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작은 암자 스님의 '선문답'에 무릎을 치고, 윗사람의 지청구에 고개 숙이지요. 더경남뉴스가 우리의 '아재' '아지매'들이 툭 던지는 말을 찾아나섭니다. 편집자 주

봄을 맞아 왕성하게 자란 소나무의 순. 정기홍 기자

옛날로 치면 이맘 때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 배를 곯던 보릿고개입니다. 세한(歲寒) 내 아끼고 아껴서 먹던 뒤주의 쌀은 거들나고 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리던 때입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 즉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시절이었지요. 밥 해먹을 곡식이 없어 먹던 것들인데, 어르신들은 이를 '험한 음식'이라고 하더만요.

연한 풀은 따 데쳐먹고, 캔 뿌리는 양념에 무쳐 먹었습니다. 이 뿐입니까? 나무 껍질을 벗겨 씹어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고, "꼬르륵" 하는 배를 움켜지고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에 샘물을 퍼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지게를 졌습니다.

"무신 개 뼉다구 같은 소리냐고요?". 듣고 들었던 우리 앞 세대의 처절했던 삶의 이야기입니다. 귀 따갑게 들었든 레퍼토리였지요.

한편으론 중년 세대에겐 보릿고개가 생각나면 '새마을운동'이 어느샌가 연결됩니다. 밥을 굶지 않게 해준 고마운 정부 주도의 운동이었지요.

소나무 껍질을 벗긴 모습. 다음 카페 캡처

그렇습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한끼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배를 채울 먹을거리가 없어 두레박 물을 퍼마시던 때가 있습니다.

밀과 메밀을 빻아 찐 '개떡'을 먹던 시절보다 한 두 발 더 앞선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배고파서 삶아 먹는 소나무 껍질은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지요.

소나무 껍질을 많이 먹을 땐 뒷구멍이 헐었다고 합니다. 소나무의 진액으로 단단해져 큰걸 볼 때 나오지 않아 꼬챙이로 후벼파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허겁지겁 먹을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겠지요.

원로 만화가 이두호 씨가 그린 만화 '객주'에서 '소나무 껍질 먹고 똥을 못 눌 정도로 아파하느니 그냥 굶어죽겠다고 울부짖는 아녀자가 나올 지경'이란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심심풀이로 소나무 껍질을 먹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거칠고 질긴 겉껍질을 벗겨내고 얇은 속껍질을 먹습니다. 이 속껍질을 양잿물 등으로 불리고 삶은 뒤 두들겨서 껍질 조직을 연하게 만들고서 씹어먹었다고 합니다. 기자도 산에 나무하러 갔을 때 궁금해서 가끔 낫으로 벗겨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배를 채울만한 영양분은 있었겠지만 소나무의 조직은 질긴 섬유질이 제대로 소화 될 리 만무합니다. 소나무엔 회분, 조단백질, 조지방, 비타민 A 함량이 높다고 하네요.

먹고 나면 배가 더부룩했겠고 거친 섬유질 껍질은 위와 장에서 소화가 되지 않아 항문까지 내려오고, 이어 수분이 빠지면서 단단해져 항문을 막게 되었겠지요.

서설이 길었지만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에는 이런 연유가 담겼습니다. 당시 시절의 마음 아린 이야기입니다. 깔끄러워 못 먹겠다는 '개떡'은 비할 바가 아닙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똥구멍'과 '가난'이 이렇게 연결돼 그렇듯한 추억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냈습니다. 아픔의 세대에 옷깃이라도 여미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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