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54세입니다.
가정이 없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아 독신입니다.
자녀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 했습니다.
중국집에 취직해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 배달하는 배달원입니다.
돈은 한달에 70만원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재산이 없어 겨우 한 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잡니다.
이 분을 계절로 말하면 봄일가요? 여름일가요? 가을일가요?
겨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입니다.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의 이름은 김우수 씨입니다.
지난 2011년 9월 23일 서울 강남에 있는 변두리의 한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우동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해 병원에서 실려갔습니다.
그는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습니다.
나경원 등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석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가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만~10만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습니다.
이는 2006년부터 쉬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0년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는데도 할머니와 함께 사는 민지 양(16·여·가명) 후원만큼은 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일곱 살 때 버려진 뒤, 열두 살 때 고아원을 뛰쳐나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서의 기부는 신앙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창문도 나 있지 않은 고시원의 쪽방에서 생활하던 그는 후원한 아동들이 보내오는 사진과 편지를 삶의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또 어린이재단 명의로 종신보험 4000만원짜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게 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2009년 9월 이후 한 달 10여만 원인 보험료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보험금은 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김우수 씨의 유족이 없어 빈소를 차리지 못해 어린이재단이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는 소식에 한 장례업체가 장례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인 배우 최불암 씨가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했습니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해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말했습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말했습니다.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습니다.
어린이재단은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3일간 “김 씨의 뜻을 이어받아 후원하겠다”는 신규 후원 신청이 800여 건 들어왔다고 밝혔다.
수없이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인생의 겨울에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고 나니 '아름다운 마침'이 됐습니다.
김우수 씨는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