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이 초여름 절기에 맞춰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키다리같이 키운 몸체가 헛헛해서 허리마다, 손마디마다 예쁜 연분홍 색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꽃이 예쁜데 '화려함'보다 '우아함과 화사함'이 더 와닿습니다.
하얀 나비들이 접시꽃에 꼬여서 연예질이라도 하는 모습이라면 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꽃입니다. 꽃말이 '열렬한 연애와 사랑'이라니 해본 말입니다.
경남 진주시 진성면 구천마을 초입길에서 활짝 핀 접시꽃.
이상 정창현 기자
꽃의 색상은 붉은색, 연한 홍색, 흰색 등 여러가지입니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꽃잎은 5개가 나선상으로 붙습니다. 꽃잎은 홑꽃과 겹꽃이 있지만 홑꽃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키는 1.5~2m까지 크게 자라고 길다란 꽃대에 교차로 크며 겹꽃을 풍성하게 피웁니다. 겹접시꽃의 꽃말은 '열렬한 연애', '열렬한 사랑'입니다. 꽃가루가 많아 벌과 곤충이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멀리서 보면 무궁화꽃과 비슷합니다. 한 번 심으면 그 자리에서 저절로 번식해 아름다운 꽃을 선물합니다. 눈호강을 다하고 나니 문뜩 요즘 담장을 치장 중인 능소화도 생각이 납니다.
접시꽃은 줄기과 꽃, 잎, 뿌리 모두 한약재로 쓴다고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내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옆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겠습니다.
※도종환 씨가 먼저 간 아내를 기리며 쓴 시라지요. 꽃말인 '열렬한 사람'을 시상(詩想)에 덧댔겠습니다. 도종환 씨는 이제 여의도 정치에 물이 많이 들어 시인으로서의 순수성은 다 빠져 볼품은 없어졌습니다. 각자 택해 가는 인생길에 지청구를 할까마는 시정(詩情)의 조각을 찾던 그의 이미지는 이제 너무 멀어져버렸지요. 그의 시풍(詩風)을 좋아하던 독자들로선 서운함이 많이 들겠습니다. 시인의 이름은 잠시 잊고서 읊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