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복(三伏)의 첫 복날인 초복입니다. 보통 양력 7월 중순~8월 중순에 들고 삼복(초복·중복·말복)은 24절기에 속하지 않는 잡절(雜節)입니다. 잡절이란 24절기가 아닌 잡다한 절기로, 속절(俗節)이라고도 합니다.
한해 중 가장 더운 때여서 몸 보신과 관련한 음식 풍습이 많습니다.
이 때는 햇볕이 일년 중 가장 좋아 농작물도, 잡풀도 빨리 자라서 논밭 김매기 등 할 일이 많아집니다. 몸도 무더위에 지쳐 있지요. 따라서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 허한 몸을 보해줘야 합니다.
◇복날 보신탕
복날 음식의 기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처음 나옵니다.
조선 순조 때의 홍석모(洪錫謨)가 쓴 세시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 삼복에 개장 먹는 풍속과 관련, '사기에 진(秦)나라의 덕공(德公) 2년(기원전 676년)에 첫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안의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다스렸다. 개 잡는 일이 곧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이 삼복의 가장 좋은 음식이 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1000만 반려견 시대에 개고기 말을 꺼내기가 마뜩찮지만, 한동안 복날의 대표 음식은 삼계탕과 개고기(보신탕)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고기가 식재료로 취급된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되며, 문헌상으로 개장국이 본격 등장한 때는 조선 중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 조리법을 적은 책들이 나오는데, 동국세시기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구장(狗醬)이라 한다. 개장국이 기력을 보충하기 좋아 음식으로 먹었고 삼복에 개장국을 먹는 것이 유행'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저잣거리에 개장을 전문으로 파는 목로주점(木壚酒店·대폿집)도 생겼다고 합니다. (농삿일을 해야 하는) 평민들이 개고기를 자주 먹었고 푸줏간에는 개고기를 볼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개고기 음식 풍습은 프랑스인 가톨릭 선교사인 클로드 샤를 달레가 쓴 조선천주교회사(1874년)에서도 언급되는데 '조선에서 개가 푸주의 고기로 쓰이며 가장 훌륭한 음식의 하나'라고 서술했습니다.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복달임'이란 말이 있지요. 초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계곡이나 정자나무 아래서 먹었고 이를 '복달임 한다'고 했답니다. 개장국은 특히 복날에 먹어야 보신이 되고, 질병도 쫓고, 더위를 잊게 된다고 믿었다네요.
개장국은 보신탕을 지칭하지만, 통상적인 고깃국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소고기를 넣어 끓이면 육개장이 되고,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된다는 말이지요.
보신탕 이야기를 더 해봅니다.
보신탕은 사철탕, 영양탕, 보양탕, 구탕(狗湯)으로도 불립니다. 시쳇말로 멍멍탕이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구탕에서의 구(狗·개 구)는 주로 식용견이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고, 견(犬·개 견)은 반려견 등에서처럼 긍정적으로 사용합니다.
요즘 경찰을 '견찰'로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쓰임의 경우가 다르지요.
보신탕이 사철탕, 영양탕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시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개고기를 혐오하는 국제동물단체 등 해외 여론을 의식해 1983년 도로변과 도심에서 보신탕을 팔지 못하게 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들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보다 30년 전인 1954년에도 정부에서 개장국이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인 음식이라며 판매를 금지한 적이 있었답니다. 이 때 개라는 명칭을 숨기기 위해 보신탕이란 이름이 생겨났고 왕왕탕, 구탕이란 이름으로도 팔렸다고 합니다. 이후 1960년대 들어와 다시 대중화 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7월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이 시행 됐고, 개고깃집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잔인한 방법이 아니면 개 도살이 가능해 보신탕을 불법으로 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보신탕을 단고기국이라고 합니다. 사망한 김정일이 단고기를 무척 좋아해 외국 손님에게 내는 공식 음식이었다네요. 북한에는 다양한 단고기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아 복날의 최고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기 수원으로 도읍(화성)을 옮기려 했던 조선의 정조도 보신탕을 즐겨먹었다고 전합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개고기가 (연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온(溫·더울 온)하게 하고, 양도(陽道·음양에서 양의 작용)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개장국의 주재료로 황구(黃狗·누렁이)가 으뜸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예부터 복날 보양식은 주로 고기류를 끓여 원기(단백질)를 보충했습니다. 이를 이열치열 음식이라고 말의 구색을 맞추지만 음식이 귀했던 시절 구워 먹는 것보다 탕으로 끓여먹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장국과 함께 전골, 찜으로도 먹습니다.
왜 개고기였을까? 소는 농삿일에 꼭 필요했고, 돼지는 잔칫날에나 잡는 귀한 가축이었지요. 서민들이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을 할 수 있는 만만한 것이 개나 닭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개와 닭은 평민 집에서 많이 기르던 가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이 포개지고 쌓여서 보신탕과 삼계탕이 복날의 대표음식으로 자리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보신탕 자리 꿰찬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에 찹쌀과 인삼, 대추, 밤, 황기 등을 넣어 고와서 먹는 삼복 음식입니다. 삼계(蔘鷄)란 이름처럼 인삼이 들어가지 않으면 삼계탕이 아닙니다. 보통 영계와 6년근 인삼을 넣어야 제맛이 나고 영양 보충이 된다고 합니다.
삼계탕의 이전 이름인 닭백숙은 삼국시대 때부터 복날에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참 후인 일제강점기에 부잣집에서 인삼가루를 넣어 먹은 후 삼계탕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1950년대에는 계삼탕이란 이름을 단 음식점들이 생겨났고, 1960년대 냉장고가 나오면서 가루가 아니라도 보관이 가능한 인삼 뿌리를 이용했다고 하네요.
최근엔 개가 최고의 반려동물로 자리하면서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면서 닭고기가 그 자리를 꿰찼습니다. 이른바 직장인들이 복날 점심 때면 꼭 찾아 먹는 것이 삼계탕입니다.
크기가 작아 영계탕이라고도 하는데, 자꾸 더 작아지고 가격은 더 비싸집니다.
요즘 음식점에서 먹는 삼계탕은 대체로 35일 기른 어린 닭과 3~4년근을 넣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1~2년근을 넣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삼계탕 특유의 제맛이 날 리도, 보신이 제대로 될 리도 없을 듯합니다.
몸 보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이 바쁜 세상에 남아 있는 풍습으로 봐야겠네요. 요즘 복날에는 삼계탕 말고도 찜닭, 불닭, 닭도리탕, 치킨으로도 두루 찾습니다.
◇보신탕-삼계탕만 보신 음식 아냐
지금은 잊혀져 있지만 소고기를 넣는 육개장도 고급 보양 음식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보신탕에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합니다. 당시 소고기가 들어간 육개장은 양반들이 주로 먹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흑염소탕이 보신탕의 자리를 대신해가는 분위기입니다.
개고기 음식점들이 비판 여론을 의식해 흑염소고기집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고기의 맛도 개고기와 비슷하게 연한데, 값은 더 비싼 편입니다. 흑염소탕도 들깨 양념과 들깻잎, 마늘 등이 아우러진 보신탕과 같이 특유의 맛을 내지요.
이 외 보양식으로는 장어구이, 민어, 용봉탕, 전복죽 등이 있습니다.
복날에 팥죽을 먹기도 하는데 이는 팥의 붉은콩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에서 더위를 귀신과 동일시 해 이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복날 팥죽은 고려 말의 일부 문집에서 '삼복 풍속에 개장 먹는 일이 없고 팥죽을 먹는다'고 적고 있어, 개고기보다 훨씬 앞서 복날 음식으로 애용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기를 먹기 힘들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옛날에는 증편(蒸편·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더운 방에서 부풀린 뒤 찐 떡), 주악(웃기떡·찹쌀가루와 대추, 꿀을 반죽해 깨나 팥을 넣어 송편처럼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 백설기를 여름 별식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요즘 복날 음식은 특정 음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선보입니다. 오래된 가게인 노포(老鋪) 보신탕집이 하나씩 사라진 그 자리에 복날 퓨전음식점이 들어서고 있지요.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의 보신탕 전문식당에서는 개고기를 쓰지 않고 같은 개과와 개속에 속하는 코요테 고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한 요즘은 복날이라고 굳이 보양식을 찾지도 않습니다. 평소에 단백질 등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어 기력을 보충한답시고 뜨거운 음식을 땀 뻘뻘 흘리면서 먹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되려 냉면과 같은 시원한 음식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복날의 야사(野史·민간에서 전해지는 역사)
속담에 '복날 개 맞듯이'가 있습니다. 과거 개를 도살할 때 두들겨패서 잡는 잘못된 관행에 빗대 그만큼 많이 두들겨 맞는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섬칫 미간이 좁아지는 광경이지만 오래 전에는 시골에서 그렇게 잡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고 합니다.
때린 만큼 육질이 쫀득해진다고 생각했다는데 이는 개가 스트레스와 자극을 받아 고기가 단단해지거나 질겨져 그렇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을 도축할 때도 비슷합니다. 요즘은 도축 방법이 바뀌어 이런 경우는 없어졌습니다. 동물도 '웰 다이닝(well dying)'을 해야 고기맛이 좋다는 말입니다.
재미삼아 하는 말도 있습니다. 복날에서의 복(伏·엎드릴 복)자를 보면 개 견(犬)자 옆에 사람이 서 있는 모양입니다.
달리 복자를 '사람과 개도 무더위에 지쳐 엎드릴 정도로 더운 날'로 해석합니다.
또 '사람(人)이 개(犬)를 잡아먹는 모양'이란 해석도 내놓습니다. 달리 사냥꾼이 사냥개를 데리고 엎드려 숨어서 사냥감을 노리는 뜻이라는데 사냥감은 무엇일까요? 복날의 고기로 여기던 개와 닭이 아닌 또다른 고깃감일까요? 얼른 와닿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김립)이 파자(破字)놀이로 세상사를 풍자하고 조롱한 시구들이 생각나는 해석들이지요.
옛날 못 먹던 시절, 더운 이날 만큼은 기력을 보충해 한여름 농삿일에 대비하자며 만든 것이 복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