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4대강 사업으로 만든 금강·영산강의 5개 보(洑)를 해체하거나 상시개방 한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20일 ‘금강·영산강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관련 감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8월 환경부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훈령에 따라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조사평가단)'을 설치했고, 조사평가단 내 전문위원회와 기획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전문위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기획위는 전문위 내부에서 선정된 민간 전문가 8명과 환경부 공무원 7명 등 15명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4대강 보의 처분 방안은 기획위에서 최종 결정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조사평가단 구성은 4대강 사업 반대 시민단체인 '4대강 재자연화 시민위원회(재자연위)'가 좌지우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김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이 이 과정에 깊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재자연위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181개 시민단체가 모여 발족한 단체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조사평가단 팀장에게 "전문위 구성은 재자연위의 추천을 받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 팀장은 자연위 간부에게 전문위에 참여시킬 민간 전문가 후보 169명의 명단을 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재자연위 간부는 ‘4대강 사업을 찬성 또는 방조했다’고 생각되는 41명의 이름 옆에 ‘안 된다’는 의미의 ‘N(NO)’을 적어 환경부로 돌려보냈다.
이들 41명은 모두 전문위 구성에서 제외됐다.
2018년 9월 14일 김 장관에게 보고된 후보 명단에는 재자연위가 반대한 전문가가 3명 포함됐지만 이름 옆에도 ‘N’ 표시가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하루 뒤 재작성된 후보 명단에서는 이들 3명이 빠지고, 재자연위가 반대하지 않은 다른 3명이 대신 채워졌다.
2018년 11월 전문위원으로 최종 선정된 43명에는 재자연위가 반대한 41명은 아무도 선정되지 않았고, 절반 이상인 25명(58.1%)이 재자연위가 추천한 인사들이었다.
전문위는 4개 분과로 됐고 각 분과 위원장은 4대강 반대 인사들로 선출했다.
또 기획위에는 전문위 4개 분과 위원장과 이들 분과 위원장들이 1명씩 고른 전문위원 4명 등 모두 8명이 민간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고른 기획위원도 모두 재자연위 관련 인사들이었다. 결국 기획위 민간 위원 8명 전원이 재자연위가 추천한 인사들로 채워졌다.
기획위는 2018년 12월 첫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가장 먼저 정한 것은 ‘두 달 뒤인 2019년 2월까지 보 처리 방안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이 결정을 서두른 것을 우려한 일부 기획위원들의 의견은 무시됐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 첫 달인 2017년 5월부터 ‘4대강 보의 처리 방안을 2018년 말까지 확정한다’고 반복 발표한 상황이었고, 청와대가 환경부에 이 시간표를 지키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청와대와 협의해 시한을 2019년 2월로 미뤄놓은 상태였고, 기획위에 정부 측 위원으로 참석한 환경부 공무원들은 이때까지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획위는 5개 보의 처리 방안을 일사천리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획위는 5개 보를 해체하면 수질이 개선되고 홍수 조절 능력도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이득이 보 해체 비용보다 크면 보를 해체하고 ▲보 해체로 인한 이득이 비용보다 작으면 보를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이는 처음부터 보를 그대로 둔다는 안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어 기획위는 보 해체 이득을 검증했다.
문제는 보 해체 시 수질이 얼마나 개선될 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보를 설치하기 전에 측정한 수질 자료가 있었지만 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강바닥을 준설하고 강변을 정리해 강물의 흐름이 바뀌어 보를 해체해도 강 수질이 보 설치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해가 갈수록 강으로 유입되는 오염 물질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보 설치 전에 측정한 수질 자료로 보 해체 후의 수질을 예측하면, 보 해체로 인한 수질 개선 정도가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오류가 나올 수 있다.
보를 2017년부터 임시로 개방해놓은 상태에서 측정한 수질 자료로 보 해체 후의 수질을 예측해보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 보를 개방해놓은 기간이 얼마 안 돼, 수질 자료 측정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또 영산강의 승촌보·죽산보는 보를 임시로 개방했더니 오히려 수질이 악화된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기획평가단에선 ‘시간을 두고 수질 측정 자료 등을 더 모아야 한다’, ‘기존 측정 자료를 그대로 사용해선 안 되고 이를 재평가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그러나 기획위는 2개월 내에 결론을 내기 위해 ‘보 설치 전’에 측정한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보 해체 후의 수질을 예측하는 데 썼다. 그 결과,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해체하고, 금강 공주보는 부분 해체하며,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런 결론은 국가물관리위원회에 통보됐고, 2021년 1월 물관리위가 기획위의 결론대로 5개 보 해체·개방을 확정했다.
기획위가 금강 세종보·공주보와 영산강 죽산보 등 3개 보에 대해 해체 결정을 내릴 때 활용한 자료는 2017년까지 측정한 수질 자료였다.
감사원이 그 뒤 2020년까지 3년간 추가로 측정한 자료를 적용해 보 해체 결정이 타당한지를 다시 평가해 봤더니 결론이 뒤집혔다.
공주보·죽산보는 해체하지 않아야 하고 세종보는 해체가 이로운지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감사원 관계자는 “기획위가 틀렸고 감사원의 재평가가 반드시 옳다는 것이 아니라 측정 기간과 방법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2019년에 성급하게 보 해체·개방을 결정해선 안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정부에 “충분한 기초 자료에 근거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가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에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며 사실상 5개 보 해체·개방 결정 재검토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이 감사 결과와 관련해 지난 1월 이미 김 전 장관과 조사평가단 공무원 2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