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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벼 이삭'

정기홍 기자 승인 2023.10.16 13:11 | 최종 수정 2023.10.16 18:41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헷갈리는 낱말과 문구를 찾아 독자와 함께 풀어보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편달과 함께 좋은 사례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수확의 계절에 맞는 '이삭'에 관해 알아봅니다.

이삭은 '벼나 보리 등의 곡식에서 꽃이 피고 꽃대의 끝에 열매가 더부룩하게 많이 열리는 부분' 또는 '곡식이나 과일, 나물 따위를 거둘 때 흘렸거나 빠뜨린 낟알이나 과일, 나물을 이르는 말'입니다. 국어 사전의 풀이 뜻입니다.

비슷한 말은 곡식알이나 낟알, 알갱이가 있고요.

경남 진주시 진성면 구천마을 앞 논에 누렇게 익은 벼 이삭 모습. 사진 중간 갈색은 벼 이삭과 함께 자란 잡초다. 농가에선 이를 '피'라고 한다. 정기홍 기자

이삭을 풀이한 위와 아래 문장의 뜻과 용도는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로 다릅니다.

위의 문장은 '이삭이 고개를 숙인다'에서 보듯 벼논의 벼가 자란 뒤 이삭이 패고, 이 이삭이 알곡을 만들어 누렇게 익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숙인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의 느낌은 풍요로움이지 볼품없이 땅에 떨어진 이삭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 중 이삭이란 말을 쓸 때 땅에 떨어져 있는 벼로 인식합니다. '이삭을 줍다'에서 보듯 온것이 아닌 낱개로 떨어져 있거나 흩어져 있는 것을 이르고 와닿는 느낌도 다소 부정적이지요.

지난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을 추수 때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가 있었지요. 수확을 끝낸 벼논에 볏단을 옮기면서 흘려 논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삭을 주워 오라는 숙제입니다. 고사리손으로 참 많이 주웠습니다.

여기서 '이삭을 줍다'는 긍정보다는 남은 찌실가지(볼품없이 남은 것을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를 주워 오라는 부정의 느낌과 인식이 담겨있습니다.

요즘에는 기계로 수확을 뚝딱 해치우니 '벼 이삭' 단어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어(死語)가 돼가는 느낌이 옵니다.

지갑에 지폐나 동전을 넣고 다닐 땐 거리에서 가끔 돈을 줍는 '횡재'를 경험했지만 카드와 폰 간편결제로 하는 요즘 이런 일이 없어진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도 한 단어를 두고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달리 쓰는데, 한글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으로선 꽤 헷갈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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