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영결식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의 마지막은 자승이 생전에 외친 “부처님 법을!”을 선창하고 참석 사부대중이 “전합시다!”를 3번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영결식이 열린 조계사에는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1만여 명의 스님들과 신자들이 모여 마당을 가득 채웠다. 극락전 앞에 마련된 영단 좌우에는 자승이 마지막까지 강조한 ‘부처님 법 전합시다’와 조계종이 발표한 열반송 중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라는 자승의 친필 문구가 확대돼 걸려 있었다.
영결식에는 종정 성파스님, 총무원장 진우스님 등 조계종 큰스님들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 국회 불자모임 정각회 회장 주호영 의원 등 정계 인사와 불교 신자 등 1만 명(조계종 추산)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5번 종을 울리는 명종(鳴鐘)으로 시작해 삼귀의례, 영결법요, 헌향(獻香)·헌다(獻茶), 행장 소개, 추도입정, 생전 법문,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종정인 성파스님은 준비된 원고 대신 즉석 법문을 내렸다.
성파스님은 “자승스님! 자승스님! 자승스님!”을 3번 외치고 “인생의 세계는 사바세계라고도 하고, 고해(苦海)라고도 한다. 이 사바세계에 자승스님은 많은 교훈을 남기고 갔다고 본다. 사바세계의 육신(肉身)을 버리고 법신(法身)으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파스님은 이어 게송(偈頌·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 한 편을 읊었다.
“복숭아꽃과 오얏나무꽃과 장미꽃의 그 소식을 봄에게 물었는데/ 봄은 자기도 모른다…/ 어떤 소식이냐 이거라/ 이 뭐냐 이거지”라고 말하고 ‘쿵, 쿵, 쿵’ 3번 바닥을 내리치고 법문을 마쳤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영결사에서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며 “가신 이는 홀가분하시겠지만 남아있는 이들의 몫은 더없이 크고 무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진우스님은 이어 “상월결사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며 대화상(大和尙·큰스님)의 수행력과 유훈이 하나로 결집된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는 전법포교의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기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사(弔辭)를 통해 “자승스님은 불교의 화쟁(和諍) 정신으로 포용과 사회 통합의 리더십을 실천한 한국 불교의 큰어르신이었다”며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연대의 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더 따뜻하게 살피고 국민의 삶 구석구석 희망이 스며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스님의 추도사,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과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정도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스님, 대한불교관음종 종정 홍파스님,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김영주 목사 등의 조사와 참석자들의 헌화, 해외 불교계 인사들의 조전(弔電) 소개가 이어졌다.
자승스님의 영정과 법구(法軀·시신)는 스님과 신자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가운데 조계사 대웅전과 고인이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내며 근무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거쳐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마지막으로 낮 12시 50분쯤 다비(茶毘·화장)식을 위해 경기 화성 용주사로 출발했다. 용주사는 자승 스님의 재적(소속) 본사(本寺)이다.
운구 행렬은 오후 1시 45분쯤 용주사에 도착해 대웅보전을 거쳐 인근 다비장으로 옮겨져 오후 2시 42분쯤 다비가 시작됐다. 용주사에도 약 8000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