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 출신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오후 6시 38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35년 경남 함안의 만석꾼 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창업주인 부친도 함안에서 태어나 경남 의령의 삼성 이병철, 경남 진주의 LG 구인회 창업주와 함께 의령 정암(솥바위) 20리(8km) 안에 3대 거부가 탄생한다는 전설로 세간에 오르리고 있다.
효성그룹의 창업은 삼성과 연관이 있다. 고인의 부친인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1948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삼성물산을 세워 운영하다가 1962년 독립해 세웠다. 삼성과 효성 뒷자가 별 성자다.
고인은 일본·미국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사업을 도우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1966년 귀국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 화학공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공학 석사까지 마친 후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앞으로 석유화학 산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나일론 사업을 제안해 그해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이후 주요 섬유 기술을 국산화하며 한국 섬유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효성을 스판덱스 세계 1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 기업이 돼 있다.
1971년엔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화학 기술을 알고 있어 신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그는 1973년 설립한 동양폴리에스터에서 폴리에스터 사업을 성공시킨 뒤 1980년대 후반엔 합성섬유를 넘어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 나프타를 분해해 폴리프로필렌을 만드는 기술은 선발 업체들이 갖고 있었는데, 미국 한 회사가 신기술인 ‘탈수소 공법’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이 기술을 사들였다.
참모들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안 되는 이유 백 가지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중요하다”며 사업을 밀어붙여 큰 성공을 거뒀다.
고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경협) 회장을 맡도 있을 때 “10년 후에는 현재 14개인 포천 500대 기업 숫자가 40개로 늘어나도록 힘을 쏟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집념으로 효성은 1978년 타이어에 들어가는 필수 섬유 소재인 타이어코드 국산화에 성공했고, 2000년엔 미국 하니웰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1992년엔 세계에서 4번째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해 2010년 미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1위가 됐다.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라고 하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를 국내 최초 개발했다.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 회장을 맡아 팀장이나 과장급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현장 정보를 듣고 경영 판단을 했다.
다만 경영권을 놓고 두 아들 사이에 벌어진 ‘형제의 난’으로 그의 경영 철학이 희석되기도 했다.
조 명예회장은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절제 수술을 받았고, 2014년 초엔 전립선암으로 치료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삼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있다. 발인은 4월 2일 오전 7시이며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