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1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입니다. 하지는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고, 올해는 음력으론 5월 16일 중순입니다.
전국에 35도를 오르내리는 때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하짓날 볕이 남다릅니다. 반면 제주엔 장마가 시작돼 어제 200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불볕더위와 장마가 양립하는 중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5시간 반 더 깁니다. 밤 시간은 가장 짭지요.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 때부터 줄기 시작해 가장 짧아집니다. 남반구는 반대이지요.
이 무렵 지구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남중고도(南中高度)가 가장 높습니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시기로 태양은 황도상 가장 북쪽에 있습니다. 이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고 합니다.
정오의 태양이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입니다. 따라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의 열을 가장 많이 받아 쌓이면서 하지 이후 기온이 상승해 더워집니다.
예부터 장마와 가뭄 대비해야 할 시기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폭염도 준비해야 합니다.
고려사(高麗史)에서는 5월 중기인 하지 기간(15일)을 5일씩 끊어 3후(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슴이 뿔을 갈고, 차후(次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侯)에는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적고 있습니다.
반하는 밭에서 자라는 덩이뿌리인데 하지 무렵에 캔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까무릇(꿩이 잘 먹는 무릇), 법반하(法半夏), 소천남성이라고 하며 한약재로 씁니다. 가래, 해수, 천식 등 습담을 치료합니다.
이 무렵이면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고추밭 매기, 마늘 수확·건조, 보리 수확·타작, 모내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수확,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루어집니다.이때는 가뭄이 심하게 들기도 하고, 곧 장마가 닥쳐오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일손이 매우 바쁩니다.
단오(올해는 6월 10일)를 전후로 시작된 모심기가 이 무렵이면 모두 끝납니다.
비닐 못자리 도입 전 남부 지방은 '하지 전 삼일, 후 삼일'이라 해 이 시기를 모심기의 적기로 여겼습니다. 이는 먹고 살기 힘든 초근목피 시절이라 모든 논에 보리를 심었을 것이고, 따라서 요즘 말하는 2모작 모내기를 끝내는 시기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때 본격적인 장마도 시작됩니다. 제주엔 어제 장마가 시작됐고 이번 주 말엔 진주를 비롯한 남부 지방에도 비가 많이 내린답니다.
하짓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네요. 농작물이 자라는데는 물이 필요하고, 물은 곧 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장마철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하지 이전에는 가뭄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데 우리나라는 예부터 3~4년에 한 번씩 한재(旱災)를 당해 조정과 민간에서는 기우제가 성행했습니다. 천수답이 많았던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기우제를 지내는 광경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요.
민간에서는 신성한 지역에 기우제 제물로 바친 동물의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이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는 믿음에 개나 소 등을 잡아 그 피를 바위나 산봉우리에 뿌려 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 속담
-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 하지가 지나면 감자의 싹이 죽어 빨리 캐야 하고, 보리도 말라비틀어져 알이 잘 배지 않는다. 강원 평창에서는 하지에 첫 감자를 캐 조상께 올리는데 이를 ‘감자 천신(薦新)한다’고 한다. 첫 감자를 캐다가 전도 부쳐먹었다.
-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 모내기는 하지 전에 해야 모가 잘 자란다는 뜻이다.
-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 농부들이 논에 물을 대느라 매우 분주해진다는 말이다.
-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 하지 이후에 장마철로 접어들어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