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이바구'라고 합니다. 사투리입니다. 더경남뉴스는 '이바구 민심' 코너를 만들어 취재 중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보고 느낀 점을 쓰는 '기자 수첩'보다 더 적나라 한 코너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특히 저잣거리 민초들의 목소리가 정책을 만드는 공직에 더 따끔하게 와닿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경남 사천시는 24일 경상국립대 교수회가 지난 18일 낸 ‘창원대 사천 우주항공캠퍼스 설립 반대 성명서’의 반박 자료를 냈다. 앞서 우주항공청 개청을 앞둔 지난 5월 20일 진주시장의 진주-사천 통합 발표 제안에 이어 2라운드 논쟁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시는 반박 자료를 통해 "수년 전부터 우주항공 관련 공과대학 유치를 위해 경상국립대에 수차례 유치를 건의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의 주장에 따르면 박동식 사천시장은 지난 2022년 9월 13일 확대간부 회의에서 경상국립대 공과대학 또는 항공 관련 학과, 캠퍼스 유치를 지시했다.
이에 시는 이틀 뒤인 9월 15일 경상국립대 교수와 면담을 했지만 "캠퍼스 설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 날 경상국립대 기획처장 등과 만났지만 "중장기 종합전략 제시와 설립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교수들이 사천으로 안 가려고 하고, 학생 모집이 안된다"는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시는 또 "박 시장이 경상국립대의 글로컬대학 업무 협의 때 권순기 당시 경상국립대 총장에게 (사천에) 우주항공 관련 단과대 설립을 건의했지만 '교수들의 반대와 시스템 문제로 어렵다'는 부정적인 의사만 재확인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경상국립대의 '현실적 어려움'과 '시스템'이란 당시 경상국립대가 진주시 가좌동 본교에 특수대학인 우주항공대 설치를 주요 뼈대로 첫 글로컬대학 선정에 올인한 상태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경상국립대는 글로컬대학에 선정돼 5년간 1000억 원의 거액 지원금을 받는다.
박 시장이 이런 상황임을 간과하고 경상국립대가 받기 어려운 안을 던진 것으로 짐작된다. 경상국립대로서는 학교 미래를 좌우할 우주항공대를 본교에 두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이는 사람이 갖는 보통의 정서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는 박 시장이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려고 하자 바로 인근에 있는 경상국립대 우주항공 단과대를 사천에 유치하려는 욕심과 같은 맥락이고 이치이다.
실제 우주항공대 신설을 앞세워 글로컬대학 선정에 사활을 건 경상국립대 입장에선 부지와 건물도 없는 사천에 우주항공 단과대를 설치해 달라는 박 시장의 요구를 들어줄 여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사천시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이후 시는 지난해 8월과 10월에 충남 서산시에 있는 한서대와 창원에 있는 경남대를 각각 방문해 우주항공 캠퍼스 사천 설립을 건의했지만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박 시장은 우주항공청과 연계해 국립 우주항공공과대 개설을 현안 사업으로 삼고, 22대 총선에서 사천·남해·하동 후보자들에게 공약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와중에 박민원 국립창원대 총장이 지난 3월 20일 사천 우주항공캠퍼스 설립을 제안했고, 박 시장이 창원대를 방문해 사천 우주항공캠퍼스 설립에 합의했다.
두 기관은 4월 26일 창원대 교무회의에서 우주항공공학부 신설을 확정하고, 정원을 15명으로 배정하는 등 사천 우주항공캠퍼스 설립이 급물살을 탔다.
시와 창원대는 지난 6월 17일 사천 우주항공캠퍼스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고, 2025년 3월 사천에 임시 캠퍼스를 개교하기로 했다. 이 캠퍼스는 사천시 용현면 통양리 일원에 2027년 12월 준공 목표이다. 물론 사천 캠퍼스는 교육부의 최종 승인이 나야 한다.
시는 또 경상국립대 교수회가 주장한 과잉·중복 투자와 관련해서도 반박했다.
창원대의 사천 우주항공캠퍼스는 정부의 우주경제 로드맵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의 대학에서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 지역의 기업에 취업시킴으로써 지역에 정주하는 선순환 모델을 정립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 대책이라는 게 시의 주장이다. 하지만 시가 주장하는 '지역의 범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진주와 사천이 인접해 있어 사실상 동일 생활권이기 때문이다.
시는 또 우주항공공과대 설립을 프랑스의 세계적인 우주항공도시인 툴루즈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툴루즈에는 종합대학 4개, 공과대학 10개가 있고 학생 수만 11만 명에 이른다.
이도 그대로 사천시에 접목시키는 게 맞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될 수 있다. 우주항공 강국인 프랑스의 제4위 도시 툴루즈(인구 95만 명)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우주항공 산업을 육성해 왔고 에어버스 등 굴지의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
지향해야 할 목표점은 맞지만 긴 안목에서 준비해야 할 첨단산업 분야를 장밋빛 전망 하나로만 접근해선 시행착오를 크게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주항공산업은 이미 우주항공 선진국이 완전히 장악한 영역으로 친다. 물론 우리가 못 따라잡는다는 선입감을 갖지 않아야 하고 혼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세계 5대 우주 강국을 목표로 정했다. 설령 못 따라잡더라도 바짝 따라붙을 전략도 짜고 추진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는 없다.
시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등의 자료도 언급했다.
시가 인용한 이 자료에 따르면 2023~2027년간 기업체와 연구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우주 관련 인력이 3300명 정도이지만, 인력 공급은 1800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1500명 정도의 인력이 부족하다.
시는 2022년 기준 연구기관 인력의 81%, 기업 인력의 94%가 비(非)우주 관련 학위과정 출신이란 우주기술진흥협회 자료도 덧붙였다.
시는 "글로벌 우주강국 도약을 위한 국가 로드맵의 핵심은 민간주도의 뉴스페이스시대를 맞아 그에 걸맞는 고급인력의 육성이 관건이지만, 현재의 국내 배출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이 자료가 맞다고 해도 지역에서 중복된 시설, 중복된 투자가 이뤄진다면 지역 발전 효율성은 크게 뒤떨어진다. 그것도 규모가 작은 여럿이면 더 그렇다. 이제 막 설립된 경상국립대 우주항공대를 향후 몇 년 뒤 지금의 2~3배로 키우면 어떨까? 경상국립대는 지리적으로도 사천쪽에 보다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충남 서해안의 인접 시군에선 가까운 거리에 비슷한 출렁다리가 수요보다 더 많이 만들어져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전남 고흥에 나로우주센터에 우주과학관이 있는데 사천이나 진주에다 성격이 비슷한 과학관을 짓는 것은 낭비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고 '규모의 경제'를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시 관계자는 “2023년 10월 경상국립대와 업무협약을 하고 글로컬대학 지원을 위해 5년간 50억 원을 지원해 나갈 계획이며, 2024년 하반기부터 사천 GNU 사이언스파크에서 기술경영융합학과 석사과정 20명이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는 우주항공 관련 고급인력 양성과 관련해 경상대와 창원대뿐 아니라 어떠한 대학, 기업, 연구기관과도 협력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시는 “창원대의 사천 우주항공캠퍼스는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출발점으로 2025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시의 우주항공 로드맵에 따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천시의 이 같은 창원대 사천캠퍼스 설립 계획이 교육부의 승인으로 귀결될 지는 미지수다.
출생률이 지속 감소하면서 학령인구도 급감해 중고교는 물론 대학 통합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다가 시·군과 시·도들의 행정통합도 여기저기에서 시도되고 있다.
가까이에서는 경상국립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을 했고, 부산대와 부산교육대도 통합을 결정했다.
4개월째 논란을 빚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전국 대학에 인원을 쪼개서 의대를 승인하는 것보다 지역의 기존 의대 정원을 늘려 '규모의 경제'로 접근해 결정됐다. 중장기적으로 지역의 기존 의대를 서울대급으로 발전시켜 지역인이 자기 지역에서 고급 의료 서비스를 받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행정 부문에서도 대구시와 경북도가 통합을 하기로 의견을 좁혔고, 경남도와 부산시도 행정통합 시동을 다시 걸고 있다.
이런 면에서 사천 우주항공청 설립 후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분란은 대의적으로 지역민보다는 행정 등의 개별 이권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다시 불거진 진주와 사천의 통합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대학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지난달 20일 조규일 진주시장이 두 시의 통합을 전격 발표하자 박동식 사천시장이 지난 23일 성명서를 내고 절차나 명분상 맞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물론 각자의 주장엔 옳은 것도 틀린 것도 뒤섞여있다.
노파심이다. 진주시와 사천시는 들뜬 모습을 보이기 보다 차분히 거시적인 관점으로, 오랫동안 침체돼 있는 서부경남의 발전 방안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폈으면 한다.
지역민에게 동기부여식 슬로건을 내걸거나 장밋빛 중장기 발전 방안을 제시하는 건 결코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너무 동떨어져도 부작용이 생긴다.
사천의 상황과 여건은 프랑스 툴루즈가 우주항공 도시로 출발할 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매우 열악한 편이다. 여건이 보다 나은 진주와 함께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함께 가면 더 먼길을 간다는 옛말이 있다.
툴루즈 모델을 지역 발전의 동기로 삼되, 혼자서 다 한다는 생각에 함몰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서부경남 우주항공 산업은 사천은 물론 이웃 진주와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미 사천과 진주 두 곳엔 대규모 우주항공단지(경남항공국가산단)가 건설되고 있다.
이 말고도 지적해야 할 게 있다.
사천엔 공항이 있지만 육상 교통은 매우 불편하다. 가덕도공항이 건설 중이어서 대규모 공항이 될 수 없다. 반면 진주는 남부내륙철도 등 육상 교통이 관통한다.
진주시의 일방 발표로 논쟁을 불렀지만 무엇보다 두 도시간의 통합은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구 50만 명이 넘으면 기초단체가 경남도나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행정 서비스가 많아진다. 중앙 행정과 지방 행정은 접근 영역이 다르지만 11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의 행정 시스템으로는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엔 부치는 면이 많아질 우려가 크다.
이에 지역민들은 작금의 알력들에 소지역주의와 지자체장들의 소아적인 관점을 걱정한다.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의 큰일들이 뒤틀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최근 진주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두 지자체의 통합 논의는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사천의 사회경제단체도 못 나올 이유는 없다고 본다. 눈을 크게 뜨고 논의의 물꼬를 먼저 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발 소모적인, 단체장 자리 하나를 갖고 싸우는 교각살우의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하겠다. 진주-사천과 오랜 역사적 경쟁 대척점이던 창원-마산은 이제 어엿한 100만 도시로 서부경남을 저 멀리 앞질러가고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란 '소뿔 상처를 고치려다가 도리어 소를 잡는다는 것'을 이르는 사자 고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