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우지 못한 분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1970년대 일이지요. 고등교육을 받은 유학생이 동네에서 부러움 대상이자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는 잣대가 되곤 했던 때입니다. 하지만 얘기 중 '신식 우쭐'은 '일자무식'의 촌로 한마디에 나가떨어집니다. 삶의 켜가 내려앉은 말에 사는 지혜가 오롯이 담겼기 때문이지요. 밭일, 들일 나가며 툭 던지던 우리 '할매·할배'들의 말을 찾아 그 속내를 알아봅니다. 농어촌의 살가움을 찾아 나서는 더경남뉴스의 또다른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시골 어르신들이 더러 말하는 "공을 들여야제"의 의미와 이 말에 담긴 생활의 지혜를 알아봅니다.

'공을 들이다'는 '어떤 일을 이루는데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일을 처리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거나 '두메실댁은 아들들 키우는데 공을 많이 들였지', '공을 들여야 성공하지' 등으로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공'은 무엇일까요?

이를 먼저 알아야 어르신들이 하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이란 성공(成功)이란 단어에서 쓰이는 공(功)을 말합니다.

'공 공(功)'은 '공 훈(勛)', '공 훈(勳)'과 같은 의미이고 허물 죄(罪), 재앙 화(過)와는 반대의 뜻입니다.

따라서 공(功)은 '일을 끝내거나 목적을 이루는데 들인 노력과 수고, 그 결과' 등을 이릅니다. '애를 쓴 정성과 힘'을 뜻합니다.

공은 공로(功勞), 공적(功績), 공훈(功勳)은 물론 업적(業績), 성적(成績), 보람의 뜻과 비슷합니다. 또는 사업(事業)이란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공을 들여야제"에서의 '공'은 공로나 업적과 다릅니다. 여기에서의 공은 여러 뜻 가운데 '결과'의 가치가 아닌 '노력'을 의미합니다.

어르신들의 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고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어르신들로부터 이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따끔한 야단을 맞을 때도, 어르신이 남의 일을 말할 때도 했습니다.

우리 세대보다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님은 물론 할머니·할아버지, 나아가 마을 어르신들이 툭 내뱉던 말이지요.

당연히 학교 교육에서 배운, 신식의 말투는 아닙니다.

배운 이들은 "노력을 해야지. 노력을"이라고 했겠지요.

하지만 '노력'이 들어간 말은 '공'이 들어간 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을 들여야제" 말이 더 와닿습니다. 때묻지 않은 말이고, 거친 인생살이가 곰삭아 담긴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 말은 '캥거루족'이란 좋지 않은 이미지를 풍기는 요즘 젊은 세대에 더 와닿습니다.

캥거루는 새끼를 자랄 때까지 자기 배 아래에 있는 주머니에 넣고 키웁니다.

이런 이유로 캥거루족이란 대학을 졸업해 자립할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와 같이 살거나, 용돈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기대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미 캥거루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새끼. 블로그 위드 애버랜드

요즘은 이 용어가 40대까지 적용된다고 합니다.

70대 이상의 부모는 허리가 꼬부랑해지고 노화로 인한 잔병을 달고 사는데,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생긴 자식은 결혼도 하지 않고 용돈을 달라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족속들이지요. 자신도 나이 들어 가면서도 늙은 부모가 당연히 자기를 보살펴야 하다고 생각하는 공짜 심리와 이기주의가 몸에 밴 이들입니다.

캥거루족이란 말은 프랑스에서 청년 실업이 심각했던 1998년 당시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가 20대의 80%가 부모에게 얹혀 산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알려졌고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신체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눈은 찾고, 발과 손은 움직여 얻고, 입으로는 먹습니다.

멀쩡한 손발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남에게 구걸해 먹는 '비렁뱅이(거지를 낮잡은 말)'와 다름 아닙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세상에 쉬운 게 있는 줄 아나", "움직이지 않은데 벌 수 있지", "일하기 싫으면 굶어야지"

이들 말엔 모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의 성과에 올라타서 살려는 얍삽한 이들이 많은 요즘 세상, "공을 들여야제"란 말이 더 많이 통용됐으면 합니다.

■ 신조어 '캥거루족'이란?

'캥거루'와 '족'이 합쳐진 조어입니다. 자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에게 의존하며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묘사합니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부메랑 세대(키즈)', 일본의 '니트족' 등이 비슷한 뜻입니다.

캥거루족과 비슷하거나 파생된 단어의 뜻을 소개합니다.

▷ 신캥거루족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젊은 세대를 이릅니다. 캥거루족과 유사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 니트(NEET)족

'Not in Education(교육), Employment(취업), Training(훈련)'의 약자입니다. 교육과 취업, 훈련 중 어느 것도 받지 않는 청년들을 말합니다.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

자녀가 독립을 했다가 다시 부모 집에 돌아와 생활하는 경우입니다. 요즘 이런 유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 벌이가 시원찮아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기 때문이겠지요.

▷리터루족(Returoo)

'돌아가다(return)'와 '캥거루(kangaroo)'의 합성어로, 결혼 후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부메랑 키즈와 비슷합니다.

요즘엔 애를 낳은 부부들이 이에 가세한다고 합니다. 애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직장을 가진 젊은 부부들의 방편입니다. 부모의 적적함을 달래줄 수도 있고요. 다만 애 돌보는 게 쉽지 않아 부모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 트윅스터(twixter)

미국에서 중간에 낀 세대(betwixt and between)를 의미하며 사용됩니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젊은이입니다.

▷프리터족(freeter)

정규직이나 고용직이 아닌 프리랜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이를 지칭합니다. 프리(free·자유)란 단어를 활용한,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위의 용어들은 캥거루족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은 채 나태하게 사는 경우이고 '리터루족'은 살기 팍팍해 부모에게 되돌아간 경우, '트윅스터'는 자기가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별도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경우를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