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또 내야 하나"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민생 회복 소비쿠폰' 예산 13조 2000억 원 중 2조 9000억 원을 부담하게 되면서 재원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쿠폰은 소득 수준에 따라 국민 1인당 15만~52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특히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들은 예상치 못한 대규모 지출에 걱정이 태산같다. 소비쿠폰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8대 2(서울은 7대 3) 비율로 부담한다. 이들 지자체는 "빚을 내야 해 허리가 휘어질 정도"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도 '코로나 민생 회복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큰 빚을 냈다. 당시에도 총 14조 3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정부와 지자체가 8대 2 비율로 분담했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 자립도는 43%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재정 자립도는 지자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김천~거제 간 남부내륙철도 노선도. 경남도

소비쿠폰을 포함한 추경안(총 31조 5000억 원)은 지난 6월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경남은 지방비로 1710억 원 부담

경남의 경우 소비쿠폰용 예산으로 1710억 원을 분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도의 인구는 320만 명 정도 된다.

1인당 평균 25만 원을 받는다고 단순 계산하면 8000억 원 정도인데, 지자체가 이 가운데 20%를 부담해 자체 부담액은 1600억 원이 된다. 하지만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더 지급하기로 해, 도는 1710억 원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도는 이미 지난 5월 9461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놓았다. 따라서 추진하려던 기존 사업을 줄여야 한다.

도는 예산을 줄여야 할 사업을 놓고 18개 시군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가장 쉽게 뺄 수 있는 사업은 저소득층 일자리 사업 등으로 꼽힌다. 소비쿠폰 사업과 성격이 비슷하고, 빼내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내년에 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있어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엉뚱하게 유탄을 맞는 사업이 나올 수도 있다.

도는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때 발행한 지방채를 갚고 있어 재원이 빠듯한 상황이다.

지난 2024년부터 오는 2029년까지 매년 1200억~1500억 원씩을 갚아 나가야 한다.

▶부산도 1600억 원, 지방채 발행 검토

부산시의 경우 '소비쿠폰' 예산이 1600억 원정도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시는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아 지방채 발행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의 인구 325만여 명이 1인당 평균 25만 원을 받는다면 8136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에 지방비 20%를 부담하면 시와 16개 구·군이 부담할 비용은 1627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부산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이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공시된 시의 재정자립도(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지표)는 38.38%다. 10% 미만인 구·군은 2곳, 10%대 10곳, 4곳은 40% 미만이다.

또 올해 시 재정자주도(본예산 기준)는 50.59%다. 재정자주도는 전체 세입 중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재원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번 추경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시의 재정자주도는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반면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26만 6000여 명에 이르러 재정 부담이 큰 편이다.

이에 시는 정부 권고로 지방채 발행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현금성 지원은 지방채 발행이 불가능해 국회에 지방재정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시의 지방채는 3조 1413억 원(지난해 말 기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소비 진작도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재정난도 감안한 재정 지출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언론 매체에 "코로나19 때는 사회적거리두기로 사업들이 중단돼 임시로 끌어다 쓸 예산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지역 경기가 최악이라 지자체도 세수(稅收·세금 수익)는 줄고 저소득층이나 노인을 위해 쓸 돈은 불어난 상태"라고 했다.

지자체마다 재정자립도 등 처한 상황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예산 20%를 분담하라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자체별로 재정 능력과 저소득층 비율 등이 다르기 때문에 비용 분담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조만간 성명 등을 통해 국비 비율을 더 늘리라는 입장을 내기로 했다.

또 지방비 매칭(부담)은 지자체의 재정 부담뿐 아니라 절차 위반 소지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SOC 사업 직격탄

무엇보다 이번 추경안 심사에서 SOC 예산은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 국채 발행을 줄이기 위해 사업 진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SOC 사업 관련 예산을 크게 잘라냈기 때문이다.

당정은 '소비쿠폰' 등에 들어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출 부문 구조조정으로 기존 예산 5조3000억 원을 삭감했다.

부산과 경남의 경우 이번 대규모 추경 영향으로 공항·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크게 감액됐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예산은 무려 5000억 원이나 삭감됐다.

정부는 제2차 추경안에 올해 가덕도신공항 건설 예산으로 4416억 원만 최종 반영했다. 기존 예산 9640억 원 대비 54%(5223억 원)가 깎였다.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부산·진해 신항이 인근에 있다. 경남도

서부경남 KTX로 불리는 남부내륙철도의 경우 예산 500억 원이 삭감됐다.

당초 7월 중 실시설계→9월 중 확정 고시→12월 착공 계획이지만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오는 2030년 완공 계획이다.

경북권인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 사업도 1821억 원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