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절기 이야기] 오늘(21일)은 음양 기운 비슷 춘분···"비 오면 올 한해 병 없어져"

더경남뉴스 승인 2022.03.21 05:52 | 최종 수정 2023.03.21 15:57 의견 0

21일은 24절기 중 4번째에 해당하는 춘분(春分)입니다.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驚蟄)과 하늘이 맑아지는 청명(淸明)의 중간에 있습니다.

이날은 '봄을 나눈다'는 춘분의 뜻 풀이처럼, 음과 양의 기운이 비슷하며 낮과 밤의 길이가 12시간으로 같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점은 3월 17일 무렵이라고 하네요. 춘분 이전에 낮의 길이가 길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며칠간 꽃샘추위로 오늘도 서울 0도, 광주 영하 3도, 대구 1도로 쌀쌀합니다. 다만 낮기온은 쑥 올라 기온차가 큽니다.

갓 피어난 산수유. 정창현 기자

▶ 봄맞이 기지개···옛날엔 농사 준비

농촌에서는 춘분을 기점으로 농사 일을 본격 준비합니다. 논밭에 뿌릴 씨앗 종자를 골라 파종 준비를 하고 천수답에는 물꼬도 손질합니다.

옛날 분들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즉, 춘분을 전후해 춘경(春耕·봄갈이)을 하고, 겨우내 눈과 바람에 허물어진 돌담도 고치곤 했습니다.

옛 조상들은 춘분을 '나이떡 먹는 날'이라 하여 가족이 모여 송편과 비슷한 떡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작게 빚고 어른은 크게 빚어 자기 나이만큼 먹었다지요.

'머슴떡'이란 말도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한해 농사 시작 전에 마을의 머슴들에게 일년 농사를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나눠먹어 '머슴떡'이라고 했습니다.

또 집집마다 콩을 볶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콩 볶는 소리에 쥐와 새가 사라져 곡식을 먹지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어서라고 합니다. 꽤 일리가 있는 풍습이네요.

봄의 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양지바른 곳에 돋아난 나물을 캐 데치고 삶아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냉이, 다래 등은 무치거나 국에 넣어 먹으면 입안을 상큼하게 바꿔주는 나물들이지요. 요즘도 인기여서 집 근처의 시장엔 여러 봄나물이 나와있습니다.

▶ 기록 속의 춘분

고려·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춘분날에 얼음을 보관하던 빙실(氷室)에서 얼음을 꺼내기 전에 소사(小祀), 즉 작은 제사로 북방의 신(神)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조선시대 세종때 쓴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의종 때 사한단(司寒壇)에서 맹동(孟冬·음력 10월)과 (겨울의 마지막 시기인) 입춘에 저장한 얼음을 (날씨가 풀리는) 춘분에 꺼낼 때 간단히 돼지 한마리 정도를 올려놓고 제사한다'고 적었습니다. 고려사는 또 관리에게 이날 하루 휴가를 주었다고 전합니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했네요. 세종 때 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계동에 얼음을 저장하고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 제사를 지낸다. 찬실(饌實·음식과 기물), 준뢰(尊罍·술 그릇), 생뢰(牲牢·희생물), 헌관(獻官·제관), 향의(享儀·음식 대접)는 명산대천의 의례와 같으나 다만 폐백이 없다'고 적었고, 대한제국 때 펴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사한단은 동교(東郊·동쪽 근교)의 빙실 북쪽에 있는데 현명씨(玄冥氏)를 제사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춘분을 기점으로 조석 두끼를 먹던 밥을 세끼로 먹기 시작하고, 추분이 되면 다시 두끼로 환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춘분 무렵부터 농사가 시작돼 세끼를 먹어야 고된 농삿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일년농사 예측

춘분의 날씨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흉풍(凶豊), 장마와 가뭄을 점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중기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이날은 어두워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해가 뜰 때 정동(正東)쪽에 푸른 구름의 기운이 있으면 보리에 좋아 보리 풍년이 들고,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한다'고 적었습니다. 병충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춘분의 운기(雲氣), 즉 구름 기운을 보고 청(靑)색이면 충해(蟲害), 적(赤)색이면 가뭄, 흑(黑)색이면 수해, 황(黃)색이면 풍년이 된다며 한해 농사를 예상했습니다.

오늘 전국에 비가 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이지만 증보산림경제에 적힌대로 지난해 초부터 1년 이상을 괴롭히는 코로나가 오늘 종일 내리는 춘분비에 어서어서 씻겨가길 바랍니다.

증보산림경제는 또 '이날 동풍이 불면 보리 풍년이 들어 보리값이 내리고,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貴)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서술해 놓았습니다.

바람도 비와 마찬가지네요. 춘분 무렵 바람이 아주 세게 붑니다. 이 무렵 어촌에서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나가더라도 멀리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 춘분 속담

입춘 무렵의 잦은 기후 변화로 바람 관련 속담이 많습니다.

'이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이월 바람에 검은 쇳불이 오그라진다'는 꽃샘바람을 빚댄 속담입니다. 꽃 필 시기인데 바람이 겨울처럼 매섭고 차다는 뜻입니다. ​꽃샘바람의 유래에는 풍신(風神)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해 바람을 세게 불게 했다는 속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다'처럼 춘분이 지나면 차츰 따뜻해진다는 뜻을 담은 속담도 있네요.

농사 속담으로는 '춘분날 밭을 갈지 않으면 일년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가 있습니다.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애벌갈이)을 부지런히 해야만 한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은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