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진주살이를 한 지 20여일. 오늘(22일)은 버스요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진주 생활 신출내기의 마을버스 타기입니다.
경남 진주시 진성에서 진주 시내로 나설 '마실 채비'를 하고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걷는 게 불편하겠지만 보고 듣고, 배우는 이로운 점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지요.
'더 움직여야 건강해진다'는 평소의 건강관련 생각도 작용했습니다. 구천마을 집에서 교동마을 진성초등학교까지만 걸어가기로 계획을 잡았지요. 멀리 떨어져 살면서 오래 동안 격조(隔阻)해서 '아무러면 어떠한 동네 길 풍경'도 눈에 담고 싶었습니다.
20여분을 걸어 초등학교 앞의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가 오기를 20여분 또 기다렸습니다. 승용차로 갔으면 벌써 진주 시내에 도착을 했을 시간입니다. 도시 생활에서 오래 동안 몸에 밴 총총걸음과 급한 마음을 애써 떨치려고 했기에 괜찮았습니다.
정류장의 버스노선 안내판 사진을 찍는데 때마침 지나던 할매(할머니의 경상 사투리)가 "왜 찍냐"고 지청구 하듯 말을 던집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식당 간판을 찍다가 비슷한 말을 듣고서 움찔했던 경험이 머리를 스칩니다.
할매는 들고 온 쓰레기봉투를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 분리코너에 버리고서 기자 옆의 정류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눈대중으로 60대 후반의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으로 보였고, 말을 나누던 초장(初場)엔 그런 정도의 인식이 들었습니다. '업 그레이드' 등 젊은이가 하는 말을 쓰는 것을 듣고서야 사회 흐름도 아는, 깨어있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살가움에 말 접촉을 더 했습니다.
진주 시내에서 살다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중 근처에 사는 딸의 소개로 20년 정도 지낸다고 했습니다. 어쩐지···. 촌로가 아니었습니다.
마을버스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100원"(할매)
"예~엣? 100원요?"(기자).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 사는 주민들에게만 주는 혜택이겠지요"
"아니라니까. 진주 시내로 가려면 여기서 타고 진성삼거리에서 갈아타면 돼. 갈아타도 그대로 100원이야"
"설마요. 카드에 마을주민이란 표시가 돼 있겠죠. 100원짜리 버스가 어디 있겠어요"
할매는 줄곧 아니랍니다. 할매가 시류를 적당히 알고 있고, 연세도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 해서 믿었습니다.
할매는 정류장에 붙여놓은 버스 운행표를 가리키며 "이건 마을버스 시간표, 저건 이 버스를 타고 진성삼거리서 갈아타는 시간표!".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햐~. 이런 신세계가 있나". 기대가 만땅으로 찼습니다. "역시 오늘 걷기를 잘했다. 예상 못했던 기사 거리도 건졌다"
마을버스가 왔습니다. 정류장에서 기자랑 세명이 탔습니다. 20대 후반 쯤(마스크 때문에 정확하진 않음) 돼 보이는 여성도 탔는데, 두 사람은 아는 사이로 누군가의 따님으로 보였습니다.
차 안에는 종점인 구천마을에서 탄 네분이 있었습니다.
"아니, 오전 11시도 안 됐는데 승객이 많네"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아하, 이 버스가 승용차 운전을 못 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구나"
운전을 하는 기자는 평소 나의 기준으로 "교통이 편리한 세상에 누가 버스를 타고 다닐까"만 생각했었지요. 마을버스의 유용성은 오래 전부터 관심 밖이었습니다.
이처럼 언론의 눈길과 발길에 소외된 사각지대가 많겠지요. 특히 젊은 기자는 현장을 많이 다니지만 마감 시간에 쫒기기 때문에 승용차를 주로 이용합니다.
할매는 면사무소에 일을 보신다고 내렸고, 기자는 한 정거장 더 지나 진성삼거리에서 내렸습니다.
버스를 갈아탔지요. 신용카드를 찍으니 환승 금액은 1350원입니다. 할매의 말은 틀렸습니다. 혹시 일정한 연세 이상의 어르신이나 지역 주민에게만 100원을 받는지가 궁금했지만 이도 아니었습니다.
<이쯤에서 끝내야 하는데 더 잇습니다. 시골 정취가 그렇듯, 등짐 메고서 마실 가면서 시시콜콜한 것들을 등장시켜 쓰려는 코너입니다>
진주시 교통행정과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할매가 말한 100원은 인근 반성까지만 타고 가는 운임이었습니다. 오지마을 어르신들이 장이 서는 반성에서 생활필수품 등을 사려고 오갈 때 타고 다니라고 100원으로 책정한 거지요. 반성터미널을 중심으로 진성, 지수, 사봉 등 진주시 동부지역의 마을을 오가는 8개 노선이 있고, 명칭은 '순환버스'라고 합니다.
기자는 서울 등 많은 도시에서의 기본요금이 1250원이라, 시내버스 기본요금 1250원에서 환승요금 100원을 더해 1350원인 줄 짐작했는데 거꾸로였습니다.
진주는 본래 기본요금이 1450원입니다. 이들 마을 주민에게는 이미 낸 100원을 빼준답니다.
할매를 만나 20여분 말을 주고받으면서 알 게 된 것이 더 있습니다. 세상 좁은 줄 모르고 지낸 걸 질책하는 듯한 섬칫한 말도 듣고, 깨친 것도 있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입에 달고 다니던 동네 이름의 의미도 정확하게 알게 됐습니다.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를 '알담'(경음화로 보통 알땀으로 말함)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하냐고 물었더니 웃담(구천마을)의 아래여서 그렇게 붙였답니다. 전국의 제법 많은 지역에 아랫동네란 의미로 비슷한 이름을 씁니다.
구천마을(옛 이천마을)은 오래 전, 진성 지역의 교통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승용차를 소유하지 못했던 시절에 오직 하나의 교통수단이던 기차가 서는 역이 있었지요. 반면 알땀에는 면사무소와 지소, 초등학교가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이곳은 아래 동네로 불렸습니다. 옛날에 교통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할매는 이 마을의 70세 새마을자도자의 평가도 내놓았습니다. "저 먼다(먼등·멀리 있는 능선이란 뜻) 그 사람, 동네 사람들이 참 싫어했어. 우악밧고, 지 잘난 체 해 사람들을 무시해. 그런데 요새는 많이 성질이 좋아져 사이가 좋아졌다더만". 이어진 할매의 느닷없는 말은 '세상 좁음의 무서움'을 새삼 일깨웠습니다.
할매의 연세가 여든이라고 했습니다. 동네에 칠십대 초반 분들이 있지만 다들 귀(상태)가 좋지 않아 소통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힘이 실린 말투를 듣자니 '청춘 할매'였습니다. "100세 이상 거뜬하게 사시겠다. 건강하게 사시라"고 덕담을 했지만, 실제 오래 건강할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분들은 기사가 길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코너는 이런 세세한 것을 경험하는 코너입니다. 소소롭고 시덥잖은 걸 고주알미주알 써는 공간이지요. 할매에게서 많은 걸 알았고,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쉽게 먹는 나이는 없습니다.
※ 긴 글을 요약을 하면
1. 마을버스(순환버스) 요금 100원의 진실
2. 수십년 그냥 썼던 마을 이름의 유래
3. 사람 평. 역시 좁은 세상
※ 참고로 이 기사는 딱 한달 전 지난 22일 작성된 것입니다. 휴대전화로 작성했던 기사를 까마득히 잊었다가 시기에 구애됨이 없는 내용이어서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