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새마을노래 가사 일부)
나이 중년 이상 분들은 지금도 정확히 흥얼거릴 수 있는 새마을노래의 가사입니다. 아침이면 마을 앰프에서 흘러나오고, 등굣길 학교에서도 날마다 울려퍼져 소위 말해 달달 외워 불렀었지요. 가사와 멜로디가 간단해 따라부르기도 쉬웠습니다.
중년분들은 이처럼 1970~80년대 범국가적으로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을 생생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헐은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 하고, 동네 길도 넓혀 시멘트 포장을 하고, 신작로를 잇는 다리도 놓고, 동네 골목길과 도랑 청소도 하고···. 크고 작은 새마을운동의 조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입니다.
22일이 '새마을의 날'이네요. 지난 2011년 새마을운동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고 운동을 지속 추진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입니다.
그동안 여러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공적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산림녹화'와 함께 새마을운동은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키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산림녹화의 경우 벌거벗어 뛰놀던 놀이터였던 앞산 뒷산이 지금은 몇 발작도 들여놓지 못할 정도의 아름드리 산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국민을 동원했을지언정 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선택은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은 곁가지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여겨지고요.
새마을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봅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1969년 11월에 '농촌근대화촉진법'이 공포됩니다. 다음 해인 1970년 4월 22일 박 대통령은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제창했고요. 새마을운동 조직의 성격은 국민 자발적 운동으로 정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을 기획한 사람은 농업 전문가이자 유대인 전문가인 류태영 박사라고 합니다. 그는 새마을운동 이전에 '재건국민운동'이란 민간 자발적 생활개선운동을 주도했었습니다.
이어 1972년 정부는 시도 단위별로 지역 실정에 맞는 날을 새마을의 날로 정해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새마을의 날에 기념사업 등을 하도록 권장도 했습니다. 1975년에는 새마을운동이 농촌에서 도시와 공장으로 확대된 해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0년 12월 사단법인 새마을운동중앙본부(현 새마을운동중앙회)가 발족되면서 민간단체 주도로 개편됐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 씨가 회장으로 앉아 논란이 많이 됐었습니다. 엄청난 예산과 이권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전경환 씨는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횡령, 탈세, 이권 개입 등으로 죗값을 받았습니다. 이들 부정은 사업을 민간에 넘기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이면 썩는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2002년 7월 23일 UN경제사회이사회에 NGO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뉴새마을운동'을 재개해 기존의 새마을정신인 '근면·자조·협동'에다가 '변화·도전·창조'란 뉴새마을정신이란 옷을 입히게 됩니다.
뉴새마을운동의 중점 사업은 ▲그린코리아운동(녹색실천운동) ▲스마트코리아운동(선진국가운동) ▲해피코리아운동(공동체운동) ▲글로벌코리아운동(세계화운동) 등입니다.
국가기념일이 된 것은 한참 후인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입니다. 새마을운동 운영을 정부 중심으로 통합하기 위해 2011년 5월 30일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을 개정 시행한데 따른 것입니다.
다음은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논란을 살펴봅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 정부가 '자발적 운동'이란 이름을 붙여 시작했지만 강제성을 띤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굶주린 국가 중의 하나였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시의적절 하게 도입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마을 정신인 '근면·자조·협동'은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농번기 외엔 먹고 놀아 근면을,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애쓰자는 자조(自助), 힘을 합치자는 협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께름칙하게 들리지만 이른바 '농촌계몽운동'인 셈이지요. 새마을지도자연수원(지금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는 새마을운동 지도자 교육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군사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 세력을 탄압했던 것과는 그 속내가 다른 것이지요.
예컨대 70년대 당시 80~90년대식의 민주화를 외쳤다면 꼬챙이 같은 주의·주장으로 인해 정책의 추동력은 떨어졌을 우려가 적지 않았겠지요. 해방 이후 봇물처럼 터져나온 좌·우익 간의 충돌은 반면교사로 삼을만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8학년도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새마을운동을 삭제해 큰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듬해 10월 29일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세계는 '새마을운동'이 이룬 기적 같은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소위 '민주화 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일각에서 '유신정부'의 잔재라며 갖은 이유를 들어 깎아내렸지만 유무형의 성과는 상당합니다.
무슨 일이든 발전하고 안정화 됐을 때의 기준으로 보면 '지난 것'들은 모두 부족했고, 잘못 됐고, 정상이 아니었고, 하지 말아야 했고, 없애야 할 대상이지 남겨 놓을만한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시 새마을 운동으로 다 쓰러져가던 전국의 초가집들이 모두 깨끗한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추진 모토는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입니다. 꾸준한 노동력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동시에 공산주의를 격퇴하자는 '멸공정신'을 강조한 것이지요. 박정희 정권 때 만든 예비군의 캐치프레이즈도 '일하면서 싸우자'입니다. 북한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약했던 당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방편이고 노릇이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대들보이자 초석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를 후진국의 성공 사례로서 배우고 원용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요.
새마을운동협의회나 새마을부녀회 등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단체들은 지자체가 못 하는 틈새의 작은 일들을 자발적으로 많이 합니다. 고구마나 감자를 심어 수확한 돈으로 취약계층을 돕는 것 등은 새마을운동 정신을 계승한 좋은 사례들이지요. 지금도 농어촌에는 새마을지도자란 직책이 있어 마을 일을 이장과 상의해 진행합니다.
이런 이유로 새마을운동은 후진국에서의 전후후무한 성공 사례이지 질타의 대상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추진 과정에서 관이 과하게 주도했다든지 등의 문제는 있었지만 곁가지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잘한 건 잘한 겁니다.
세계 빈국들의 정책 중에서 기적과도 같은 성공 사례인 새마을운동과 그 정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내용을 바꾸면서 발전시켜야 할 우리의 귀한 유산임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중국의 중앙군사위 주석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중국어로 번역된 새마을운동 서적을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며 새마을운동을 배우라 지시했었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는 새마을운동 사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연수생들도 상공사례를 접하기 위해 한국을 꾸준히 방문하고 있지요.
2013년 6월 18일에는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이 난중일기와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지요. 사회, 경제, 문화, 환경, 지구촌 등을 아우르는 공동운동과 함께 가정과 지역사회, 지구촌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새마을운동 관련 조직이 운영됩니다.
■ 다음은 새마을운동 관련 보충자료입니다.
<새마을노래>
박정희 작사
홍연택 작곡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4절
우리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후렴
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운동 진행 단계>
- 기반 조성(1971~73): 새마을운동 의식 확산, 기반 구축
- 자조 발전(1974~76): 경제난 해결 주력
- 자립 완성(1977~80): 국력 신장, 농어촌 복지 향상 사업
- 복지 완성(1981~): 제5공화국 이후 민간 주도로 바뀌으나 1988년 5공청문회에서 사업을 민간에 넘기는 과정에서 많은 부정부패 밝혀져 새마을운동 사업 상당히 위축
<새마을운동 내용>
- 초가집 없애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고치기, 서양식 현대화 주택 건설
- 농기계 등 첨단장비 보급
- 기존 흙길을 시멘트 또는 아스팔트 길 포장
- 도시 및 도로 미화 사업
- 새마을지도자 양성, 각종 교육 시행
- 전기 공급 및 전화 보급 사업
- 기타 정신적 교육
<새마을운동 파생 상품 등 유산>
- 새마을운동 명칭은 코레일의 새마을호와 ITX-새마을, 새마을금고 등이 있음. 새마을금고는 금융위원회가 아닌 새마을운동 지휘부격인 행정안전부가 관할함.
-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바라보는 눈이 각별. 서로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주장. 박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와 포항시(북구 기계면 문성리)에는 기념관 세움. 청도군은 정부 기록을 토대로 청도읍 신도리에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을 만들어 새마을운동기념관 건립. 이곳은 경부선 폐역인 신거역 일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 지방의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려고 열차를 타고 내려가던 중 농민들이 관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수해 복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새마을 운동의 발상에 착수했다고 전해짐.
- 설립자가 박정희 대통령인 영남대에는 새마을국제개발학과가 개설돼 있음.
- 새마을 모자/ 농촌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로 자리잡아. 정태춘-박은옥의 '고향집 가세'에 가요에서는 드물게 농촌 고향의 상징으로서 새마을 모자 단어 등장. TV 예능에서도 새마을 모자를 이장의 상징으로 사용. 인기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의 '그까이~꺼 이장' 장동민, 청춘불패의 남희석, 유머 1번지의 '괜찮아유'에서 최양락·김학래가 새마을 모자를 쓰고 나와 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