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는 운동길과 산책길에서 자주 보는 입간판 시를 소개합니다. 대체로 쉬운 시구여서 누구에게나 와닿습니다. 걷다가 잠시 멈추고서 시 한수에 담긴 여유와 그리움, 아쉬움들을 느껴보십시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어른이나 친구에게서 들을 만한, 평범한 시구가 마음 한구석을 잡습니다. 시구로 앉혀 놓으니 기가 막히게 와닿네요. 말의 가락, 즉 리듬인 운율도 참 매끄럽고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는 사색의 동물인 인간은 소외와 외로움을 운명적으로 지닌채 산다는 점을 표적 삼아 감성을 푸짐하게 끌어냅니다. 무엇보다 삶의 음습한 곳을 하나씩은 속깊이 담고 사는 인간 내적 심리를 잘 파고듭니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 빗물을 흘리고, 나무 위의 새도 외로움에 나앉았다며 감정이입을 합니다. 사물들을 외로움이란 시상(詩想) 안으로 무리없이 끌어다놓습니다.
마지막 시구절은 참으로 애리게 때립니다.
'해지는 산의 그림자도 외로움에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린다'고 맺습니다.
해가 지면서 만들어진 마을의 그늘을 외로움으로 그려내고, 고즈넉함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외로움을 깨는 소리에서 비껴 서, 종소리 스스로가 외로워서 울린다고 사고의 전후를 역설적으로 바꿔놓습니다.
쉽고도 멋진 시입니다.
요즘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수선화에게'가 애송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를 글 조각에 접목시켜 써 낸 서정시들입니다.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많은 글에서 인용 되고 있네요.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칠십이 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 가 성장기를 보냈고, 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원이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글을 잘 써 전국 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란 평론이 당선돼 당시 '문예장학금'을 주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네요. 특별장학생이지요.
데뷔는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로 했습니다. 한참 후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소설가로도 등단했습니다.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는 등 슬픔이 담긴 시를 주로 써 문학계에서는 '슬픔의 시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사회의 그늘진 면 등 민중적 서정성을 특징으로 꼽는데, 소외된 사람에게 따스함을 주는 시를 써왔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소신처럼 쉬운 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그려냈습니다.
1976년에는 김명인·김승희·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만들어 쉬운 시를 쓰는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풍으로 그의 시 몇 수는 가수 양희은, 안치환 등에 의해 노래로 창작돼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네요.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시 '부치지 않은 편지' 중)
'이별노래'는 최종혁이 작곡하고 이동원이 불러 알려졌습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 아직 늦지 않으리.…'(시 '이별노래' 중)
1987년 시선집 '새벽편지',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는 20년 이상 판을 거듭하면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임진강에서'는 민요적 운율감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합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시 '임진강에서' 중)
■ 주요 시집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창작과 비평사)
1982년 '서울의 예수'(민음사)
1987년 '새벽편지'(민음사)
1990년 '별들은 따뜻하다'
* 봄길: '별들은 따뜻하다' 시집 안에 실려 있고 중학교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천재교육, 신사고(민)), 중학교 2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비상(김))에 수록됨.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미래사)
19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8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19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2003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열림원)
2004년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7년 '포옹'(창비)
2010년 '밥값'(창비)
2013년 '여행'(창비)
2014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신개정판·열림원)
*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미래엔 발간)에 수록됨.
2015년 '수선화에게'(비채)
2017년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