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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옛 설화를 찾아서] 토끼 꼬임에 넘어가 꼬리 잘려 혼비백산한 호랑이(1)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1.04 14:58 | 최종 수정 2023.01.05 18:15 의견 0

옛글을 읽다가 유래가 궁금해 찾다보면 대체로 설화가 나옵니다. 설화는 사실처럼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전통 농업사회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 많지요. 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신년기획으로 유구하고도 재미난 설화를 찾아나섭니다. 편집자 주

<꼬리 잘린 호랑이(1)>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입니다. 검은 색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연재 첫걸음으로 토끼의 꼬임에 빠져 엄동설한에 꼬리를 물 속에 넣었다가 꼬리가 잘려나간 바보스런 호랑이 설화를 소개합니다.

이 설화는 인도에서 불교의 유입과 관련해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고, 일본의 원숭이와 곰 이야기와 유사해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캡처

□이야기 줄거리

호랑이가 동지섣달(추운 연말) 긴긴 밤 배고픔에 먹잇감을 찾아다니다가 때마침 토끼를 만났습니다.

토끼로서는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한 것이지요. 순간, 토끼가 꾀를 냅니다.

토끼가 은근슬쩍 호랑이에게 가재를 배불리 먹여주겠다고 제안을 하지요. 토끼의 솔깃한 말에 쫄쫄 굶은 호랑이는 토끼와 함께 밤중에 냇가로 내려갑니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가재를 잡으려면 꼬리를 물속에 담가야 한다고 능청스레 떠봅니다. 호랑이는 가재를 포식하려는 생각에 빠져 기꺼이 토끼가 하라는대로 따라하지요.

이어 토끼가 가재를 몰아오는 시늉을 하고, 호랑이는 느긋하게 꼬리를 물속에 넣고선 앉아서 기다립니다.

호랑이가 이제나 저제나 하던 중 날이 밝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로 일하러 나오자 호랑이는 피하려고 황급히 몸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한밤 엄동설한에 물 속의 꼬리가 꽁꽁 얼어붙어 순간 꼬리가 잘려버립니다.

호랑이는 꽁무니에 피를 출출 흘린 채 부리나케 도망칩니다. 토끼는 구사일생을 하지요. 영악한 토끼의 승리입니다

▶유사 변이 이야기

이 설화는 다른 일화와 결합한 것도 많습니다.

호랑이가 토끼에게 속아서 발갛게 단 돌덩어리를 떡으로 알고 입에 넣었다는 일화와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다가 토끼의 꼬임에 빠져 대신 대나무 숲에서 새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다가 토끼가 지른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이 있지요

더불어 호랑이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인간과 인간을 잡아먹으려던 호랑이, 이 호랑이를 구해준 나그네 등 각자의 죗값을 매기는 재판관으로 등장하는 토끼, 그리고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먹으려 하자 할머니에게서 팥죽을 얻어먹은 토끼 등 동물들과 송곳 등 물건들이 힘을 합쳐 호랑이를 물치쳤다는 '호랑이와 팥죽할머니'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이는 왕조시대에 권력의 권위에 억눌려 살던 민초(백성)의 속마음을 연약하고 순박한 토끼를 빌려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호랑이는 위정자나 권세가이지요.

이처럼 설화에는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토끼는 상대를 속이는 영특한 트릭스터로, 상대인 호랑이는 바보 듀프(Dupe·잘 속는 사람)로 설정합니다.

때론 역할을 거꾸로 해놓습니다. 설정 유형의 다양성, 즉 선함을 정형화 하지 않고 약자라도 남을 해하는 경우 악으로 세워 넣는 것이지요.

언제나 해학적 설정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유쾌하게 정화(카타르시스)시켜 줍니다

※올해가 계묘년 토끼의 해라 관련 설화를 소개했습니다. 예부터 전해오는 설화는 세한(歲寒·한겨울 추위)의 함박눈처럼, 또는 동화처럼 포근함을 줍니다

설화는 사실과 같은 허구 이야기입니다. 전래(구전)동화와 비슷합니다. 이 코너는 너무 사납고 영악해져 있는 요즘 세태를 꼬집고, 좀 더 유머 있게 지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니 할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 편하게 읽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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