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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 민심] 쌀 모두 사 준다는데 농업단체는 왜 양곡관리법 반대할까?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3.26 17:57 | 최종 수정 2023.04.05 03:58 의견 0

논에 벼 아닌 다른 작물을 심는 '논타작물재배'와 과잉 생산돼 남는 쌀을 국가가 사 주는 '쌀의무격리'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양곡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해 쌀값 폭락을 막는 것이 골자입니다. 쌀값 안정화로 농가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취지가 무색하게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습니다. 내막을 추적해봅니다.

지난해 가을 햇벼를 수확하는 모습. 의령군 제공

양곡법 개정은 쌀 농사가 많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더불어민주당(169석)이 주도했습니다. 지난 2021년 12월 민주당 서삼석(전남 영암·무안·신안) 의원이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지요.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민의당은 이를 매우 반대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농업인들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품목별 농민 단체들의 의견이 제각각입니다.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33개 주요 단체 중 13개가 반대한다고 하네요.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거대 농민단체는 물론 쌀 생산 농가가 참여한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와 전국쌀생산자협회도 양곡법의 졸속 처리에 우려 입장을 내고 반대에 나섰습니다.

벼 재배 등 종합농으로 구성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고, 이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균형 잡힌 양곡 정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쌀 가격 하락뿐 아니라 밀, 콩 등의 자급률 제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식량안보 강화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습니다.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도 같은날 "농업 생산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요청은 수용하지 않았다"며 양곡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축산농의 단체인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농축업 전체 예산이 한정돼 있어 자칫 지원금 등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산 농가는 쌀만 사 주는 양곡관리법과 상관없지요.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쌀에 재정이 집중된다"며 "사룟값 폭등, 수입축산물 관세 제로화, 가축전염병 발생, 원유(原乳)의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등으로 인해 축산 분야 예산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이번 법 개정은 축산 분야 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협의회는 이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면 정치권의 기계적 셈법이 아닌 현장 농민들의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며, 예산 문제와 함께 쌀 이외 타 품목과의 형평성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농업 문제가 정치권의 이전투구 대상이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지난 1월 6일에는 대한양계협회, 한국육계협회, 한국토종닭협회, 한국육용종계부화협회, 한국오리협회 등 5개 가금단체도 공동성명을 통해 “양곡법이 개정되면 가금을 포함한 축산 등 타 품목의 공익적 가치 훼손과 축산 부문 예산 지원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역시 법 개정의 재고를 요청했습니다.

다음으로 미래 농업분야의 재원 마련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농업 부문의 가용 재원이 한정돼 스마트팜 등 첨단농업 투자가 주춤해질 수 있습니다. 벌써 흙을 뭍이며 짓는 농사가 아니라 수경재배 등 도시인처럼 생활하며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른바 '도시농업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우스는 물론 첨단 농업은 6차산업이라고 불릴 만큼 발전 영역은 무한합니다.

첨단농업 관련단체들은 청년 농업인과 스마트팜 육성, 유통시설 스마트화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수요가 많은데 이런 곳의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들과 반대로 후계농 시군 대표자들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농해수위에서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당연한 일로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전국사과생산자협회도 1월 1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제도만 가지고는 실제로 쌀 가격이 생산비를 보장할 수 없다”며 “농민들은 자동시장격리형태와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 최저가격제를 원하고 있다”고 양곡법 개정을 찬성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또 받아들일 수도 없겠지요. 각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밥그릇 다툼으로도 비치고 있습니다. 다만 '천하지대본'이라는 농업의 나아갈 길에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지는 꼭 판단해야 합니다.

이즈음에서 양곡관리법을 잠시 알아보고 진도를 나가지요.

애초 민주당이 내놓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3% 초과 생산과 5% 가격 하락'시 매입하게 돼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생산량이 3~5% 초과하거나, 가격이 5~8% 하락할 경우' 전량을 수매합니다. 또한 애초 개정안에 있던 문구 '매입해야 한다'는 강제가 아니라 '매입할 수 있다'로 바꿨습니다.

사실상 정부의 재량을 완전히 없애버린 초안에 비해 정부의 재량권을 조금 틔워준 셈이지요.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하는 것도 아니고 무제한 수매하는 것도 아닌, 최악의 상황 때만 적용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금도 쌀이 남아돌아 비축 비용이 어마어마한데 개정안이 쌀 재배를 부추겨 더 많이 생산된다"며 거부 의사를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제공

개별 농업인들도 이 법안을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정부가 과잉 생산될 쌀을 의무적으로 수매하는 것은 그동안 한정 수매를 겪어온 농업인 입장에선 아주 긍정적으로 와닿지요. 특히 2021~2022년엔 쌀 과잉 수확으로 수매를 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쌀 생산량이 선순환적으로 서서히 증가하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모두 매입해주니 많이 심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급과 수요의 측면에서는 쌀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벼 재배 면적이 줄지 않을 우려도 커진다는 말입니다.

2005년 1인당 연간 81㎏을 소비했던 쌀 소비량은 지난해 57㎏으로 30% 급감했습니다.

쌀이 과잉 생산되면 매입비와 보관비가 더 발생합니다. 정부는 "전국의 벼 보관 창고에 있는 벼에다 더 생산한 벼를 보관하면 한해에 총 1조원 이상이 든다"고 본다지요.

국민의힘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농업인이 쌀 생산을 유지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쌀 공급과잉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쌀값은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초과 공급량은 지금의 20만t 수준에서 2030년 60만t 이상으로 늘고, 쌀값은 80㎏당 17만원대 초반으로 지금보다 8% 정도 하락한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농경연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2030년 쌀 수매에 1조 500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량 안보'에도 이 개정안이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쌀을 의무적으로 사 주면 쌀 생산량이 늘어 밀·콩 등 작물 재배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밀 1.1%, 콩 2% 수준이던 자급률을 오는 2027년까지 각각 7.9%, 40%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밀은 4.0%, 콩은 26.4%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민주당 등 반대 쪽에서는 애초 양곡법 개정안보다 정부의 재량권이 확대됐고, 논에서의 쌀 재배면적(양이 아님)이 늘어나면 시장격리수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타작물재배 제도(전략작물직불제와 타작물직불제)를 도입해 논에 콩과 조사료 등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쌀 과잉 생산은 희박하다고 주장합니다.

농업 전문지 기자도 이런 주장을 하더군요. 하지만 이 주장이 맞다면 굳이 개정안에 의무 매입을 적시할 이유가 없겠지요. 쌀 과잉 생산은 애시당초 일어나지 않을테니까요. 현장 농업인들의 말과 꽤 동떨어진,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또한 조사료나 콩 등 타 작물이나 전략 작물을 심고서 수확을 하려면 관련한 대형 농기계가 있어야 합니다. 기존 이양기나 콤바인, 트랙터론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돈을 주고 기기를 더 사야 한다는 말이 되지요. 정부에서 생산된 쌀을 모두 사 주는데 굳이 상대적으로 재배가 까다로운 조사료 등을 선택할 이유는 없는 셈이 됩니다.

실제 현장 농업인들은 "공동방제에다 일정액을 주면 이앙기와 콤바인 대행업체에서 수확까지 해주는데 번거럽고 지원금이 별스럽게 많지도 않은 전작을 할 이유는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더군요. 이 지적은 이미 농촌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농연도 양곡법 개정안 통과 후 성명에서 "쌀농사는 기계화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재배가 쉬운 만큼 판로 부담이 해소되면 타 작물로 유인이 쉽지 않아 수급 조절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며 "쌀 가격 하락뿐 아니라 밀, 콩 등의 자급률 제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식량안보 강화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습니다.

타작물재배 재배는 원칙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시책은 아닙니다. 중장기적인 작물의 다양성을 갖춘다는 측면에서도, 축산 농가의 조사료 공급 측면에서도 긍정입니다.

아무튼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대통령에게로 갑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지금 생산되는 쌀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하느냐와 관계 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주는 식의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수에서 압도적인 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더 강력한 법안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이 건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정치적인 개정을 밀어붙였다는 말도 나옵니다. 일종의 '이미지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지요.

다만 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개정안은 국회에서 재의결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적의원 과반이 출석해 출석한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에 어떤 안을 올려도 통과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국민의힘이 이를 막을 수 있는 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곡법 개정안은 큰 논쟁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한두 해 수매를 몽땅 해준다고 박수를 쳤다가, 이후 쌀값이 지속 떨어지면 성토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한 미래농업에 대한 투자도 축소되어선 안 됩니다. 첨단농업은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전이 만만찮습니다. 이때일수록 농업인들이 차분하게 사안 분석을 하고서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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