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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쌀 의무 매입 법' 거부권 시사…"밑 빠진 독에 세금 붓는 꼴"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강행
윤 "쌀 공급과잉 고착돼 가격 하락 부채질"
양곡법 개정안 위헌 요소 검토 지시
보관비 연 1조 5천억…농민단체도 반대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2.19 19:19 | 최종 수정 2023.02.19 19:40 의견 0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밀어붙이는,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해주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거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3권 분리상 입법부 견제 수단이며, 헌법 53조에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규정돼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附議·토의에 부침)했다. 부의는 본회의에서 안건 심의가 가능한 상태가 됐다는 뜻이다.

19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 중인 쟁점 법안들에 대해 "위헌 요소 또는 민생에 미칠 영향 등이 없는지 살펴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곡법 개정안의 경우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평균 1조원 이상의 재정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 산청군의 가루쌀(분질미) 재배 논. 가루쌀은 기존 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어 밀가루 대체에 적합하고 늦이앙에 가능해 이모작에 유리하다. 산청군 제공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이재명표 1호 민생 법안’인 양곡법 개정안이 쌀값 하락을 막기는커녕 농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되레 쌀 공급이 고착화 돼 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국민의 관심이 많은 민생 법안이 하나의 정치 세력이나 정당에 의해 여야 합의 없이 일방 처리된다면 많은 국민이 실망할 것”이라면서 “(양곡법 개정안은) 밑 빠진 독에 혈세를 퍼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달 30일 민주당 등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의결을 건너뛰고 단독 의결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개정안은 30일 이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해 법안을 상정해야 한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상정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정한다.

현재 과반(169석)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단독으로 법안을 상정시킬 수 있다.

민주당은 쌀값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승남 민주당 의원은 “쌀 과잉 생산을 구조적으로 막는 쌀 생산 조정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쌀값 폭락 시 농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민생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쌀 생산량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해왔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쌀 수요가 줄어 연간 20만t이 만성적인 공급 과잉 상태인데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 하면 생산 과잉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오히려 쌀값이 떨어진다”면서 “20여년간 정책적으로 ‘다수확’에서 ‘품질’로 전환해왔는데 이 방향을 되돌릴 것”이라고 반대했다.

정부가 쌀 의무 매입 방식으로 보상하면 농민들은 품질 좋은 쌀 대신 수확량이 많은 쌀을 택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또 일반벼 재배 대신 밀·콩·가루쌀 등을 심으면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도 유야무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오는 2027년 1조 1872억원, 2030년 1조 4659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전망했다.

또 쌀 공급 과잉이 심해지면 쌀값은 2030년 80㎏에 17만 2000원으로 최근 5년 평균(19만 3000원)보다 10.5% 더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80㎏ 산지 쌀값은 지난 15일 기준으로 18만 5176원이다.

정부는 쌀 보관으로 인한 연평균 1조원 이상의 재정 부담으로 스마트농업, 청년농 육성, 유통 현대화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지는 점도 우려했다.

1조원이면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1㏊(약 3000평)짜리 스마트팜을 300개 이상 지을 수 있는 예산이란 사례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4년제 국공립·사립 농학계 대학 학장들로 구성된 전국농학계대학장협의회는 민주당이 양곡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한 다음날인 2월 1일 "농정 예산의 효율적 사용과 농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곡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쌀 수급 상황과 가격을 고려해 시장격리를 현재와 같이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정부가 시장격리 시점과 매입 가격·물량을 오판하지 않도록 보완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쌀 시장격리 의무화에 들어가는 재정으로 농가소득 안전망 구축과 농업직불금 확대, 후계·청년 농업인 육성, 디지털·스마트 농업 전환 등의 정책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양곡법 개정안은 한정된 농정예산 아래서 풍선효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타 품목 투자 축소로 이어져 품목 간의 갈등과 농업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연합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쌀 생산자의 생존권을 볼모로 삼은 양곡법 논쟁에 깊은 우려와 상실감을 표한다”며 “준비가 안 된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 전업농의 의견을 담아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전국에서 쌀을 재배하는 6만여명의 농업인이 참여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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