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 살만한 요즘은 '건강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건강 상식과 식품은 범람하고, TV에선 의사 등 전문가들이 자기 말대로 안 하면 곧 큰병에 걸릴 듯 엄포를 놓습니다. 이즈음 옛 선인들의 건강 지혜를 찾아봄직합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상식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한방에서 말하는 오미(五味) 가운데 짠맛은 가장 천대를 받습니다. 단맛보다 더 주의해야 하는 맛으로 인식하지요. 밥상머리에서 경구처럼 튀어나오는 말이 "짜게 먹지 마라"입니다.
참으로 아이로니하지요.
실제 모든 음식에는 짠맛을 내는 재료가 들어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이지요. 이게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의 맛은 물론 건강도 지킬 수 없습니다. 참고로 짠맛은 혀의 양끝에서 느끼는데, 나이가 들면 그중 먼저 퇴화하는 맛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짠맛, 즉 소금은 계륵인가요? 필요악인가요?
언젠가 서울 강서구에 있는 허준테마가리를 걷는데 '짠맛은 신장에 좋다'는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니, 짠맛이 신장에 좋다니?"
짠맛의 한자는 함미(鹹味)입니다. 뜻은 짤 함(鹹)입니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짠맛은 5가지의 맛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약방의 감초 맛'이고, 오미 중 신장에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다"고 적시했습니다. 신장, 즉 콩팥을 보하고 기운을 돋워준다지요. 신장이 짠맛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는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다만 적정하게 먹어야 한다는 전제를 깐 제언입니다.
동의보감은 '짠맛이 부족하면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먹어줘야 신장의 활동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뜻이겠지요. 찌개 등 짠 국물, 장아찌 등을 많이 먹는 한국인에게는 얼른 와닿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동의보감은 신맛은 간으로, 매운맛은 폐로, 쓴맛은 심장으로, 짠맛은 신장으로, 단맛은 비장으로 들어가 오장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각기의 맛이 각 장기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겠지요. 증상으로는 ▲짠것을 많이 먹으면 혈맥이 잘 통하지 못하고 색이 변하며 ▲쓴것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털이 빠지며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근육이 당기고 손톱이 마르며 ▲신것을 많이 먹으면 살이 두꺼워지고 주름이 잡히며 입술이 말려 올라가고 ▲단것을 많이 먹으면 뼈가 쑤시며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편식을 경계한 것입니다.
짠맛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짠맛 영향을 그중 많이 받는다는 신장 기능을 우선 살펴봐야 하겠네요.
신장은 대사(代謝·섭취한 음식을 분해해 몸 에너지를 만들고 불필요한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 과정에서 나오는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 오줌으로 내보내는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몸안의 수분과 염분의 양을 조절하고, 체액의 부피와 성분을 일정하게 유지시킵니다. 혈액과 체액의 전해질, 산염기의 균형도 유지시켜주지요.
따라서 신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면 대사 작용을 잘 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의외로 짠맛의 음식은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혈관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소금은 짠맛을 내는 대표적인 재료입니다.
음식 중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적으면 먹어줘야 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를 줍니다. 과하게 먹으면 혈맥(피의 맥)이 잘 통하지 않아 심장병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당한 말입니다.
짠맛이 너무 과하거나 너무 적으면 신장과 방광이 약한 체질의 사람에겐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짠맛이 다른 맛보다 신장에 영향을 더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과해도 탈, 부족해도 탈이 날 수 있으니 잘 맞춰서 먹어라는 말입니다.
신장 내 염분의 농도를 맞춰주려면 물을 양것 마시되 싱거우면 소금을 조금 타서 마시면 좋다는 조언도 있네요.
소금은 천대받이로만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신장 기능이 안 좋은 사람이 저염식(싱거운 음식)을 너무 오래 먹으면 고칼륨 혈증에 의한 호흡 곤란이나 심장 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네요. 기억해 둘 내용입니다.
짠맛의 강도로 신장의 증상을 살피기도 합니다.
평소에 먹던 음식들에서 갑자기 짠맛을 더 강하게 느끼거나 입안에서 유달리 짠맛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한의원이나 병원에 들러 진단을 받아야 한답니다.
주위에선 농담 삼아 "갑자기 '건강 미식가'가 됐냐"고 하지만 좋은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음식의 간은 평소와 같은데 신장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 제기능을 하지 못해 짠맛을 느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몸이 부어있을 때도 평소보다 짠 맛을 쉽게 느낀다고 합니다. 신장이 수분 대사를 통해 일정 수준의 전해질 농도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단맛도 과하면 신장을 해치기 쉽다고 합니다. 외식이 많은 요즘 실정을 감안해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몸은 오미가 다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몸에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장(콩팥)에 좋은 음식
물은 신장 건강을 돕는 최고의 음료입니다.
물은 나트륨, 요소 등 독소(노폐물) 배출을 도와 신장과 요로에서 결석을 만드는 물질들이 쌓일 기회를 줄여 신장결석 발생률을 줄입니다. 하루 8~10잔(2~2.5리터)을 마시면 신장결석 위험을 50% 줄일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빨간 산수유는 시고 떫은 맛이 강해 원기를 돋워주고 신장에도 좋은 대표 식품입니다.
검은깨도 신장 기능을 원활하게 해 이뇨작용과 지방의 대사를 돕고, 팥도 신장의 노폐물을 배출해 신장 기능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소금을 제대로 알자
소금의 본성은 따뜻하고, 맛이 차며, 독이 없다.
몸속의 각종 염증 환자에게 양질의 소금을 조금씩 자주 복용시켰더니 염증의 상태가 개선됐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다. 염증이란 의학적으로 혈관이 팽창돼 있는 상태인데 소금이 진정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위염환자에게도 일반소금이 아닌 양질의 소금을 조금씩 늘려 나중에 다량 복용시켰더니 염증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또 소금을 만성피로 증후군 환자에게 적당량을 투여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중국 당(唐)나라의 단공로(段公路)가 쓴 북호록(北戶錄) 본초(本草)에는 "소금은 뼈를 굳게 하고 독충을 제거시키며 눈을 밝게 하고 기운을 돕는다. 소금은 위에 들어가는데 맛이 짜고 차다. 한기와 열기를 능히 제지시키며 끈질긴 담을 토하게 한다. 심복통(心腹痛·명치 아래와 배가 동시 통증)을 그치게 하며 고주(蠱疰·팔다리가 붓고 몸이 여위며 기침을 하고 배가 커지는 병)와 익창(䘌瘡·입과 잇몸, 항문 따위가 붓고 헒)을 죽이고 치열(治熱)도 빠르게 한다"고 했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도 "소금은 맛을 짜게 하고 따뜻하며 독이 없다. 흉중의 담벽(痰癖·수음(水飮)으로 인해 만들어진 담이 가슴과 옆구리에 고여 발생하는 병)을 토하게 하고 심복(心腹)의 급통(急通)을 그치게 하며 기골(肌骨)을 견고하게 한다"고 적고 있다.
또 "풍사(風邪·설사)를 제거하고, 오물(惡物)을 토하거나 설사하게 하며, 살충(殺蟲)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육부를 조화하고 묵은 음식을 소화시켜 사람을 장건(壯健)하게 한다. 또 오미(五味) 중에 소금을 으뜸으로 치니 온 세상에 어느 곳에서든 있다"고 했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도은거(陶隱居)도 "사람에게는 오미(五味)가 있는데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중 다 빠뜨려도 짠맛만은 절대 빠뜨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소금은 백미(百味)의 어른이다. 이것이 없으면 비(脾·지라)와 위(胃)를 진정하기 어렵고 기혈(氣血)을 도울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독기를 다스리고 중오(中惡·중풍으로 충격으로 손발이 싸늘해지고 어지럽고 심하면 이를 악물고 졸도)와 심통(心通)과 곽란(霍亂·음식이 체해 토하고 설사하는 급성 위장병)과 심복(心腹)의 급통(急通)과 하부(下部)의 익창(입과 잇몸, 항문 따위가 붓고 헒)을 고치고 흉중과 담벽(痰癖·몸 안의 물과 습기가 한곳으로 몰려 만들어진 담이 가슴과 옆구리에 고여 발생하는 병)과 숙식(宿食·소화 되지 않고 위장에 남은 음식물)을 토(吐)하고 오미(五味)를 도우니 많이 먹으면 해갈이 나며 끓여서 창(瘡)의 종독(腫毒·종기의 독한 기운)을 던다"며 "소금은 기(氣)와 혈(血)의 약이요, 모든 약을 만드는 근거가 되는 물건"이라고 덧붙인다.
더불어 "만성변비증의 완화제이며 각혈, 토혈, 사혈의 지혈제이고 생리식염수(生理食鹽水)로서 혈액순환을 유지하고 신체 수분의 손실을 보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