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독설과 막말' 정치 현수막 '펄럭펄럭'···"아이들 본다. 법 개정 빨리 하라"
상대 정당 향한 격한 문구 지천에 걸려 있어
초등학교 바로 앞에도 독한 문구 버젓이 걸어
5년간 연 125만건···처치 곤란, 쓰레기로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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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08:23 | 최종 수정 2023.05.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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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에서 내건 '독한 문구' 현수막을 향한 국민의 짜증이 분노로까지 치닫고 있다. 전국 주요 지점마다 걸려 있는 정치현수막 문구는 상대 정당을 격한 문구로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차마 눈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글들은 한결같이 살벌하다.
옥외광고물법이 4개월 전에 개정돼 어느 곳에서나 수량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게 허용되면서 나타난 살풍경(殺風景·볼품 없이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이다.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자 일부 지자체는 지역구 의원실 등에 정리를 권고하고 나서고 있다.
17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지방 주요 지점엔 어김없이 정치 현수막이 2~4개 정도 걸려 있다. 현수막의 수도 문제이지만 내용이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내용이 비방 일색인 원색 정치문구로 뒤덮여 성인은 물론 어린 학생들의 정서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다.
업무로 경남 진주와 서울을 오가는 서울 강서구 정 모(60대) 씨는 "문구들이 너무 살벌하다. 정치인들의 뇌 구조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불과 어린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초등학교 100m 옆에도 상대 정당을 향한 저주의 문구를 버젓이 걸어놓고 있다"면서 "정치 탐욕에 빠져 어린 학생들은 투명인간으로 보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그는 "진주는 보수색이 강해 독설 정도가 조금 낫지만 서울의 현수막 문구들에는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살기마저 느껴진다"고 개탄했다.
정치 현수막이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증가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김남국·김민철·서영교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 12월에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정당 현수막은 신고나 허가 없이 어느 곳에나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정당 현수막도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은 뒤 지정된 게시대에 설치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지자체의 허가를 받는 홍보 현수막은 자치를 감추고, 시민사회단체의 사회통합이나 계도성 현수막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특히 보행 불편은 물론 음식점 등의 영업을 방해해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행인이 도로가에 걸어둔 정당 현수막에 목이 걸려 다치는 사고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 모 씨는 "10여 일 전 휴일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현수막 줄에 걸려 넘어져 타박상을 입었다"면서 "롤러스케이트와 이륜 전동킥보드 등을 타고 가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다칠 우려가 크다"고 걱정했다.
문제는 정당들의 정쟁이 심화되고 있어 내년 4월 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막말 현수막'이 크게 늘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편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노동 전문가)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선거용' 폐현수막은 1만 3985t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5번의 선거가 치러졌다.
폐현수막은 대체로 2주 정도 게시된 뒤 쓰레기로 수거하는데 지난 5년간 선거용 폐현수막의 약 60%가 재활용 되지 않고 소각됐다. 당연히 소각 때는 온실가스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등이 발생한다. 기후 온난화를 막는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탄소중립을 역행하고 있다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다.
무엇보다 일반 상업용 현수막까지 합치면 폐현수막 쓰레기 규모는 큰 폭으로 늘어난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신고된 현수막은 약 630만건으로 연평균 125만건에 달한다. 현수막 1개 길이를 10m로 가정했을 때 지난 5년간 걸린 현수막을 이으면 지구를 한 바퀴 반을 도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총선이 다가오기 전에 옥외광고물법을 재개정해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참에 정치적 당리당략에 함몰돼 여론에 반하는 비상식적이고 어거지성 법안을 만드는 의원들을 다음 총선에서 표로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대수 의원은 "정치 양극화가 지속 심화되면서 정당 현수막이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지경에까지 왔다"며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로 인한 국민들의 안전 위험을 생각해서라도 현수막 설치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