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 정당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없다. 가로등, 가로수에 거는 정당 현수막도 한꺼번에 2개 이상 못 건다. 또 현수막 끈은 땅에서 2m 이상 이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4일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오는 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도심 곳곳에 무분별하게 걸려 공해 수준인 정당 현수막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다. 주민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
다만 가이드라인 수준이어서 정당의 지역구사무실 등에서 법을 앞세워 지속 걸겠다고 하면 현수막을 관리하는 지자체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당 현수막은 더불어민주당의 서영교·김민철·김남국 의원이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일방 의결하면서 시행됐다. 단지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정당 현수막은 어떤 내용이나 사전 신고·허가, 장소·수량 제한 없이 15일간을 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현수막이 난립되면서 관련 민원이 1만 4000여건이 접수되는 등 민심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법 시행 전 3개월간 제기됐던 6415건을 두 배 넘는다.
도로가에 낮게 설치된 현수막으로 지나던 시민이 걸려 다치거나 가로등이 넘어지는 사고도 8건이 발생했고, 지난 2월 인천에서는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청년이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다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것은 현수막의 내용이다.
정당의 정책과 별 관련이 없는 흑색선전과 원색적인 비방, 인신 공격이 담긴 현수막들도 ‘정당 활동’이라며 거리 곳곳에 내걸렸다. 특히 학교 바로 앞 도로가에도 걸어 정치인들의 도덕적 결여를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다. 협치와 동행이 없는 작금의 정치 상황이 현수막에 고스란히 드러나 어린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도 큰 문제점으로 등장했다.
주민 항의가 빗발치자 정치권은 뒤늦게 자성하고 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4일 정책토론회에서 '우리가 만든 덫에 우리가 걸린 게 아닌가'라고 반성했다.
주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국회는 관련 법 시행 3개월 만에 정당 현수막 규제를 다시 하는 재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정당 현수막 설치 장소·개수·규격 등을 제한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현재 6건이 발의돼 있다.
행안부는 재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현장에서 정당 현수막 관리를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자치단체·선거관리위원회, 47개 중앙 정당의 의견을 들었다.
정당 현수막이 교통약자 등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제한을 둔다.
정당 현수막의 의미도 명확히 했다.
정당이 정당 경비를 써서 정당 이름으로 걸지만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일반 당원의 이름이 함께 표시된 것은 개인 현수막으로 분류했다. 또 현수막에 정당 로고만 표시했거나 시민단체 등 다른 단체·조합이 함께 표시한 것도 정당 현수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현수막은 철거와 함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또 지자체는 정당 또는 현수막 설치 업체에 시정을 요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철거에 나설 수 있다.
또 행안부는 정당 현수막이 현수막 지정 게시대,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 위주로만 설치될 수 있도록 했다.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과 지자체가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행안부의 이번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이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행안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법·시행령 개정이 이뤄지도록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