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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마을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경남 하동 횡천면 애치마을 벽화 만들기사업 2일 준공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7.02 18:57 | 최종 수정 2023.07.21 14:21 의견 0

2일 오전 경남 하동군 횡천면의 오지인 애치마을 골목에선 뜻깊은 벽화 개장식이 열렸다.

애치마을 벽화는 골목 어귀에서부터 좁은 고샅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그려져 우중충 했던 시골 마을 분위기를 단번에 밝고 화사하게 바꿔놓았다.

고샅길 분위기가 물씬한 애치마을 골목길. 음침했던 골목의 벽이 화사하게 바뀌었다.

애치마을은 여느 시골마을처럼 볼품 없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아들 딸들은 도회지로 나가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을 중심으로 40여 가구에 76명의 주민이 산다.

이날 작은 마을에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럴듯한 행사장이 마련됐고 경남도청, 하동군, 하동군의회, 횡천면, 지리산청학농협 등의 관계자들이 축하차 방문했다. 하승철 하동군수와 국립대 경남거점대학인 경상국립대 권순기 총장도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벽화를 그린 이상빈 화백, 경상국립대 벽화 동아리 '해피빌더스' 대표단, 진주 '라빠레뜨' 화실 원장도 자리했다.

황소 벽화. 떨어져서 보면 소가 외양간에서 뛰쳐나오는 듯 사실적으로 그렸다.

하승철 하동군수(왼쪽)와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이 황소 그림에 포즈를 취했다. 권 총장이 황소의 귀를 만지고 있는 가운데 하 군수가 소풀을 주고 있다.

애치마을이 이날 벽화 개장식을 갖기까지에는 사연이 많다.

벽화 그리기 사업의 시작은 지난 3월이었다. 어렵게 구성된 애치마을 벽화 만들기 추진위원회가 벽화 그리기 준비 작업을 주도했다.

지명 애치는 한자로 ‘애치(艾峙)’다. 쑥 애(艾), 산 우뚝할 치(峙)로 풀이하면 ‘쑥고개’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 쑥이 많이 자라 ‘쑥재’, ‘숙재’로 불리었다.

한때 50여 농가에 400여 명이 살았지만 지난 1970년부터 밥 벌이를 위한 이촌향도(移村向都·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함) 현상으로 지금은 작은 마을이 됐다.

현재 마을은 세월 켜를 집집의 담장 위에 얹어오면서 너무 조용한 마을로 변해 있다. 때론 스산하기까지 하다. 젊은 사람이 없어 활기가 없어진 지 오래고 가끔 고향을 찾는 출향인도 쓸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애치마을 전경. ‘애치마을 벽화 만들기 추진위원회’ 제공

지난 1950~1970년대에 이 마을에서 컸던 몇 몇이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현재 마을에 사는 주민과 마을을 떠난 출향인들이 의기투합 했다. 이어 ‘애치마을 벽화 만들기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어느 가을날이었다.

남기조(54) 씨가 추진위원장을 맡고 남기형·정갑임·김형환 씨가 추진위원이 됐다. 이 소식에 이장 남점우 씨도 힘을 보탰다.

벽화 그리기사업을 기획한 남기두(53·진주 거주) 씨는 "고향마을에 들을 때면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는데 마을이 한적하고 쓸쓸해 우리 마을도 지방소멸로 사라지겠다 싶어 지난 2016년 처음 마을 벽화에 관심을 두었다"고 사업 추진 과정을 전했다.

처음 접촉한 곳은 진주여고였다. 이 학교 미술선생과 학생들이 벽화 봉사가 가능하다고 해 곧바로 마을 주민들과 의논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진행할 수 없었다.

이어 지난해 경상국립대에서 벽화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남기조 위원장 등이 경상국립대 관계자를 만나 부탁을 했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이 흔쾌히 허락했다.

위원회는 먼저 마을 안팎으로 소문부터 내기로 방향을 잡았다.

소문이 조금씩 전해지자 출향인들이 하나 둘 기척을 했다. 모두가 고향을 기리는 애틋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십시일반 작은 성금을 보내왔다. 어느 듯 출향인 80여 명이 모은 기금은 1700여만 원이나 됐다. '뭐라도 해 볼 만한' 돈이었다.

위원회는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 먹은 만큼 진행은 쉽지 않았다. 담장에 그림을 그리려면 담장 자체가 온전해야 하는데 오랜 기간에 헐어 보수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추진위는 발품을 팔아 하동군, 횡천면, 지리산청학농협에 도움을 요청했다. 노력의 결실로 하동군에서 2500만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군수, 군의회 의장, 횡천면장, 부면장들의 관심과 배려가 컸다. 하동군이 지원을 결정하게 된 마중물은 출향인들의 기금이었다. 주민이 주도하고 기관이 돕는 사업의 틀이다.

추진위의 남기두 씨는 "위원회를 만든 뒤 1주일에 한 번씩 면사무소를 찾아 설득에 설득을 했다"며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추진위는 이어 직접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섭외해야 했다.

주위 여러 사람에게 수소문을 했고, 경상국립대 벽화 동아리인 해피빌더스와 진주 라빠레뜨 화실, 봉사단체인 진주 하나회가 도와준다고 나섰다. 벽화 전문 화가인 이상빈(81) 화백도 섭외 됐다.

이들은 보수나 수당 등을 마다하고 봉사 활동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했다. 시골 마을 주람들의 애틋한 속마음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드디어 지난 3월, 무너져 있는 담장을 철거하고 보수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일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맡았다. 담장을 세척하고 밑바탕 색을 칠했다.

이 작업이 끝나자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 달간 마을 곳곳에서 동시에 벽화 그리기작업이 진행됐다.

경상국립대 벽화 동아리 '해피빌더스'는 5월 13~14일 이틀간 연인원 80명이 마을에 들러 정성껏 벽화를 그렸다. 이상빈 화백은 큼지막한 벽화 그리기에 매달려 구슬땀을 흘렸다. 라빠레뜨 화실과 하나회 봉사단원들도 벽에다 정성껏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을 주민들은 벽화 그리기 작업 내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점심밥과 새참, 아이스크림 등을 날랐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석도 깨끗이 단장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 가드레일 방호벽도 일곱색깔 무지개 색으로 칠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석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 가드레일 방호벽을 일곱색깔 무지개 색으로 칠했다

일이 이쯤 되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떤 주민과 출향인은 장미 넝쿨을 내놓았고 어떤 이는 배롱나무, 왕버드나무, 느티나무를 기증했다. 모두가 고향 마을을 사랑하고, 바깥에서 고향 추억을 그리던 이들이다.

말하자면 농사가 주였던 예전의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을 함)과 두레(힘든 노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 노동 풍습)의 힘이다. 잊고 있던 1950~1970년대의 풍습이 애치마을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벽화마을은 이렇게 탄생했다.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실행해 멋지게 마무리를 지었다.

음침한 회색에서 색깔을 바꾼 애치마을 담벼락은 정성껏 채운 그림들로 아름답고 여유롭게 빛을 내고 있다.

해바라기나 석류, 코스모스, 목련 그림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황소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그림도 있고, 동화나 만화 속 캐릭터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즐기던 딱지치기, 말 타기 놀이, 팽이치기 놀이도 그림으로 재현됐다. 옆집 담벼락 안에 달려 있는 단감을 따 먹던 아슬아슬한 장면도 볼 수 있고 함께 뛰놀던 강아지, 하늘을 날던 두루미도 그림으로 반긴다. 큰 담벼락엔 실물과 같은 산수화가 그려져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마을 주민들로선 신선하고 신기하고, 놀랍고도 반가운 그림들이다. 표정이 없던 마을 어르신들의 얼굴도 밝고 즐거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참에 마을 입구 수로 벽을 이용해 ‘애치벽화마을’을 알리는 이정표도 만들고, 벽화 그리기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도 세웠다.

마을 공동우물가에 세운 ‘추억의 애치마을’ 기념비석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향심을 높이기 위하여 추억 어린 벽화마을로 꾸미는 데 뜻을 모았다”라고 썼다. 도움을 준 이들의 모든 이름을 새겼다. 개인 이름도 있고, 계모임도 있다.

위원회는 이 사업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작은 '백서'도 발간했다. 마을의 내력과 추진위원들의 인사말, 출향인들의 인사말, 도움을 준 분들의 축사, 마을벽화 사진, 찬조금 출연 명단 등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다.

애치마을 벽화 준공식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상 정창현 기자

이날 준공식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남기조 추진위원장, 남점우 애치마을 이장, 박천수 애치마을 노인회장, 김순덕 애치마을 부녀회장 등 마을 사람들은 이날 먼길을 온 손님들을 정성스럽게 맞았다. 참석자들은 행사 후에는 벽화마을을 직접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도 자신이 자랐던 고향마을 어귀를 생각했을 것이다.

애치마을은 이제 공허해 스산했던 마을 분위기를 접고, 마을 변신에 참여한 이들의 열정을 담아 출향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그 상징적 첫 날이 오는 9월 말 추석명절이 아닐까 한다.

남기두 씨는 "마을을 이렇게 가꿔놓으면 출향한 사람들이 귀촌이나 귀농을 하고픈 생각이 더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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