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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경남뉴스 기자들이 푸는 미주알고주알] '폐지 줍는 어르신 현장 보고서'/ "한 달에 16만 원 벌지. 그래도 계속 주워야제"

복지부 '어르신 폐지 수집' 첫 실태조사
평균 76세로 하루 5.4시간 폐지 주워
최대 애로는 ‘폐지 단가 하락’
폐지 줍는 어르신 89% “계속 줍겠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1.27 14:40 | 최종 수정 2024.01.28 21:29 의견 0

미주알고주알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미주알은 '창자의 끝 항문'을 뜻하는데, 미주알고주알은 '미주알'에 '고주알'을 합친 말입니다. 어문학계는 고주알이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로 해석합니다. 창자 밑구멍의 끝인 미주알은 '눈으로 보기 어려워 숨은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말하거나 캐묻는 것'을 뜻합니다. 더경남뉴스 기자들이 숨은 기삿거리를 찾아 '사랑방 이야기식'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폐지 수집과 관련해 누구에게나 와닿는 장면(경험)이 몇 개는 있을 겁니다. 대략 리어카(손수레)와 등 굽은 어르신, 하굣길에 학생들이 리어카를 밀어주는 모습들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생각을 멈추면 '폐지 줍기=어르신'이란 단순 등식에서 끝납니다. 고물상 주인이 건네는 단돈 몇 천 원을 손에 꼭 쥐고 돌아서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합니다. 생각의 공통 분모는 "왜?"로 시작해 "왜 저렇게 해야 하는가"로 이어질 겁니다. 성 같이 쌓은 폐지 값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 때문입니다.

젊은 직장인이 오르막길에서 어르신이 끄는 리어카를 밀어주는 모습. 트위터 '들플' 제공

전남 광양시가 23일 영세 폐지수집인에게 안전 장비 등을 지원한다고 했군요. 시비 2000만 원을 들여 폐지 판매단가를 보전해주고 수집 장비와 안전 장비도 지급한다고 합니다.

지원 대상은 차량이 아닌 손수레 등을 이용해 폐지를 줍는 65세 이상 시민, 장애인, 저소득층(차상위계층,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입니다.

보전하는 폐지 판매단가는 시에서 정한 기준액과 실제 판매액을 비교해 기준액보다 판매액이 낮을 때 그 차액만큼입니다. 도로가에서의 수거 환경이 위험하고 폐지 단가도 하락 중이어서하고 합니다.

광양시에 따르면 최근 폐지 단가는 1kg당 125원에서 75원까지 무려 50원이나 떨어져 수집 어르신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폐지를 활용하는 곳이 줄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폐지 수거로 '돈'이 안 되니 덜 줍게 되고, 따라서 주거지 근처의 미관도 좋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책은 괜찮아보입니다. 길가에 버려져 쌓인 쓰레기를 환경미화원이 치우려면 인력을 더 써야 하고 결국은 예산이 더 들게 되겠지요. 지나는 주민들이 느끼는 짜증 등 무형의 불편을 감안하면 예산을 더 책정해도 될 듯합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분해해 냄새를 없애고 거름으로 만드는 미생물이 있지요. 비견하긴 죄송스럽지만 어르신들의 폐지 수거는 묵묵히 우리 사회의 지저분한 것을 치우는 고마운 것입니다. 비록 생계용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내놓은 지난해 '폐지 수집 노인(어르신) 실태조사'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폐지 수집 어르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였다네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습니다.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파는 어르신은 전국에 4만여 명이 계십니다. 평균 연세는 76세이고 폐지 수집으로 한 달에 16만 원 정도를 번답니다. 이 중 75세 이상은 57.8%입니다. 요즘 나이야 70대 중후반은 대체로 큰 어려움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폐지를 줍는 어르신 중 홀로 사는 분이 36.4%이라는 대목에선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이어 가구원이 평균 1.7명이라고 하니 한달 생활비가 기초생활연금 등을 보태 백만 원 남짓 할 겁니다. 최소한의 생활비가 되겠지요.

학업은 중학교 졸업 이하가 85.1%였고, 남성이 57.7%로 여성보다 많았습니다.

중요한 건 폐지수집 여건, 즉 생활상입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하루 5.4시간, 일주일 평균 6일을 도로가와 골목길을 돌면서 폐지를 손수레에 담습니다. 수입은 한 달에 고작 15만 9000원이니 이를 시간당 수입으로 따지면 1226원으로 최저임금(올해 기준 9620원)의 13%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이 사회가 왜 이래야 하는가"라는 근본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폐지수집 어르신들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74만 2000원이었고, 가구 소득은 113만 500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기자가 위에서 어림잡은 것과 비슷합니다.

3년 전인 2020년 노인(어르신)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전체 노인의 개인소득(129만 8000원)과 가구소득(252만 2000원)보다 크게 낮습니다.

더 살펴봅니다.

폐지 수집을 왜 하시냐고 물었더니 '생계비 때문'이란 답이 54.8%로 가장 많았습니다. 열 분 중 여섯 분이 하루 하루의 생활을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는 '용돈이 필요해서' 29.3%, ‘건강 관리’ 9.1% 순이었습니다. 이 대목으로만 보면 권장해도 될 정도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챙기는 정도의 일은 자꾸 권장해야 겠지요.

폐지 수집을 시작한 동기는 '타 직종 구직 곤란'(38.9%), '현금 선호'(29.7%), '자유로운 활동'(16.1%) 순으로 답했습니다.

애로 사항은 '폐지 납품 단가 하락'이 81.6%로 가장 많았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지난해부터 폐지 1㎏당 단가는 74원으로 지속 떨어져 왔다고 합니다.

이어 '폐지수집 경쟁 심화' 51%, '날씨' 23% 순이었다.

경쟁이 심해진다는 것은 어르신들의 생활이 더 극한 쪽으로 다가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이 약해지면 추위와 무더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최근 폭염과 한파가 더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의 88.8%는 앞으로도 폐지 수집을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25%는 다른 일자리가 제공되면 중단하겠다고 말해 폐지 수집의 이유가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다는 것도 증명합니다.

폐지 줍기를 중단한다면 그 이유로 72.5%가 ‘건강상의 문제’라고 답해 가장 큰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또한 폐지 수집 어르신 중 39.5%는 ‘우울 증상’을 갖고 있다고 답해 폐지 줍기가 생업과 강하게 연계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체 어르신의 우울증이 13.5%니 2.9배나 많습니다.

참고로 요즘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유무 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 집에서 TV 리모컨만 들고 있는 것보단 마실을 다니는 게 치매 예방 등에 훨씬 낫다고 합니다. 정부가 치매 예방과 치료에 쏟아붓는 예산을 고려하면 엉뚱한 분석만은 아닙니다. 고령화로 앞으로 국가가 국민을 돌봐주는 공적 역할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됩니다.

어느 가정에선 나이 든 부모님이 젊은이들이 아이돌 가수를 쫓아다니듯, 비싼 티켓을 사서 트로트 가수를 쫓아다니는 걸 두고 언쟁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이 방송에서 한 중년 여성은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도 지킨다"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의 '운동'과는 전혀 다르지만 일면 수긍은 갑니다.

한편 폐지 수집 어르신의 93.2%는 기초연금을 받았고 24.9%는 공적연금, 12.7%는 기초생활보장제를 수급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된 소득원을 따져 보니 기초연금 49.9%, 폐지 수집 15%로 이 두개가 수입의 65%였습니다.

여담으로 글을 맺습니다.

서너 해 전에 시내 대로 갓길에서 바람이 불어도 날아갈 듯한 할머니께서 손수레에 한 가득 폐지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고 "밀어드린다"고 하고선 몇 백m를 간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호의도 말 없이 그냥 하면 절대 안 되는 세상입니다. 싫어하기도 하고 혹여 불상사가 나면 고스란히 뒤집어씁니다.

약간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 가면서 지나는 청년에게 같이 밀어달라고 했지요. 어르신은 연신 고마워했고, 청년과는 일을 끝내고 골목길을 걸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길가에서 '특정 종교'를 포교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지내는 생활 이야기를 하던 중 아주 단촐한 생활을 한다기에, 또한 자꾸 말을 걸기에 커피 한잔 사줄 겸 커피점에 들어갔습니다. 들어서기 전엔 절대 종교 이야기 안 하기를 약속했는데 이들이 그렇습니까? 몇 마디 듣다가 짜증을 내면서 일어나 나왔지요.

언짢기는 기자나 그 학생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요즘도 폐지 줍는 어르신을 보든가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보면 항시 떠오릅니다.

좋지 않은 경험은 문득 문득 사고(생각)를 지배합니다.

달리 폐지를 '돈의 무게'로만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폐지 줍기는 무리하지 않으면 건강을 지켜주는, 정확히 근력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보다 탐욕스런 동물인 인간의 속성은 '돈'과 '권력'을 좋아합니다. 한 평생 이를 쫓다가 늙어가고 죽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원한 2인자'로 불리던 김종필 씨가 노년에 "정치를 해보니 허업(虛業·허무한 일)을 쌓는 것이더라"는 유명한 말을 했지요. 돈과 권력도, 더 나아가 인생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경상도 사람이 발음하면 '권력'과 비슷하게 들리는 '근력'을 강조해봅니다.

나이가 들면 몸에선 근력이 최고의 권력 역할을 합니다. 폐지 줍는 게 운동이라면 나날이 줄어가는 근육을 유지시키거나 줄어들지 않게 만드는 큰 역할을 하겠지요. '나이가 들수록 많이 걷고 더 움직이라'고 채근(採根·따져 독촉)하는 게 이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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